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2022-03-04 오후 2:55:26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전 세계적인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그리스 아테네의 거리에 푸틴 얼굴에 붉은색 X자를 친 사진이 내걸렸다. photo 뉴시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미국 등 서방 측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급격히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가중되고 경제가 파탄 위기에 처하게 될 경우 푸틴의 몰락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미국 등 서방 측이 지난 2월 27일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전자결제망(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시키자 러시아가 그동안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로 모아둔 6000억달러 상당의 외화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러시아의 증권이나 국채에 투자했던 1000억달러 수준의 외국 자본도 탈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증권시장은 지난 2월 27일 급락을 견디지 못하고 휴장했다. 러시아의 루블화는 가치가 추락하고 있으며, 은행 금리는 20%를 넘어섰다. 러시아 정부는 달러 등 외화 인출을 이미 금지한 상태다. 러시아 국민들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마다 장사진을 치고 있다. 러시아의 슈퍼마켓에서는 이미 주요 식료품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요즘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금융위기 상황은 30년 전 소련의 붕괴를 초래했던 경제난과 흡사하다. 소련 말기에도 러시아에서는 경제위기가 지속되었다. 식량위기가 지속되어 공산당이 공급하는 국영상점에 빵 등 식료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국영 약국이나 병원에는 붕대조차 공급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파도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병원들마다 굶어죽은 노인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당시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루블화로는 아무것도 구입할 수 없었고 오직 달러화로만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대학 교수의 월급은 20달러 수준이었다. 당시 소련인들은 미국 달러를 벌기 위해 투잡, 스리잡을 예사로 뛰었다.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소련 붕괴 직후 택시운전사를 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역시 미국 달러화를 벌기 위함이었다. 러시아의 젊은 여성들은 달러화를 벌기 위하여 몸을 팔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은 마피아의 행동대원이 되기 일쑤였다. 도둑과 강도로 돌변하는 청년들도 부지기수였다.
푸틴은 집권 이후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정상화하여 러시아 경제에 경화를 공급해 루블화를 안정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2018년 월드컵축구대회를 차례로 개최하여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였다. 그래도 러시아 국민들은 루블화를 월급으로 받으면 즉각 은행으로 달려가서 미국 달러로 교환해 보관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은행에서 미국 달러화를 내주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30년 전 끔찍했던 경제난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러사아인들은 세상이 어려워질 때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Who is guilty?), 둘째 무엇을 해야 하나?(What is to be done?)’이다. 앞으로 경제난이 가중될 경우 러시아인들이 누구의 잘못 때문이라고 판단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 등 서구는 이미 ‘푸틴이 유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면침공이 국제 안보협력질서에 대한 위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0년 전 살인적 경제난 떠올리는 러시아인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국제 안보질서를 유지하는 큰 틀은 국가 간의 국경선을 현 수준대로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1991년 12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소련 국기가 영원히 내려진 직후 당시 미국 정부의 하워드 베이커 국무장관이 국제적 합의를 바탕으로 공표하며 확정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국은 상호 간에 주권을 존중하고 안보와 경제협력을 이루어나갔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을 비롯해 조지아, 카자흐스탄 등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 각국의 독립에 대해서도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푸틴은 러시아인 보호를 명분으로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하여 4일 만에 남오세티야를 사실상 차지했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름반도(크림반도)를 합병하였고 돈바스지역도 점거하였다. 올해 2월에는 돈바스지역에 세워진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시크공화국을 승인하고 급기야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심지어 푸틴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에 방해가 되는 나라에는 핵공격을 가하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다.
푸틴의 불법 침공과 핵무기 공격 위협은 명백히 국제 안보질서를 붕괴하는 행위이다. 심지어 푸틴 정권 인사들은 발트 3국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폴란드 등 동유럽의 구 공산권 국가들에 대해서도 ‘고아국가’라는 표현을 쓰며 러시아에 보호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이어 구소련에 속했던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들까지도 침공해 핵무기로 위협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이던 독일의 좌파정권이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중단하고 국방비 증액을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푸틴이 러시아의 핵단추에 손을 올리고 있는 한 세계가 안심하기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쉽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3월 2일 현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 공격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 당초 푸틴의 계획은 신속하게 키이우를 점령하여 젤렌스키 정권을 붕괴하고 친러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고 보인다.
지난 2월 24일 침공 직후 러시아의 군사전문가인 알렉세이 레온코프는 국영미디어인 ‘논쟁과 사실’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이 지시한 이른바 ‘특수한 군사작전’과 관련, “러시아 남부의 공항들이 3월 2일까지 폐쇄되었다. 이때까지가 작전의 최대기한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상원 정보위 소속의 마코 루비오 의원도 정보당국자들의 말을 인용, “러시아의 키이우 점령 계획은 개전 초 12시간 동안 제공권을 장악하고, 36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군통신망을 무력화한 뒤 키이우를 포위하고, 이후 48시간 내에 젤렌스키 대통령을 제거하고 72시간 내에 친러 괴뢰정부를 세우는 시나리오였다”고 주장했다. 루비오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전쟁은 168시간, 즉 7일 만에 종료되어야 한다. 앞서 레온코프가 말한 3월 2일까지의 기한도 7일이다.
어그러진 푸틴의 ‘7일 전쟁’ 구상
하지만 러시아군은 3월 2일 현재 여전히 키이우 주변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고전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C급 군대를 전장에 보내고 A급과 B급 군대는 자신이 피신한 모스크바 벙커 주변에 배치했다는 농담이 돌고 있다. 푸틴이 분노하여 측근들을 질책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군대를 당장 철수시키기도 어렵다. 우크라이나가 막대한 전쟁보상을 청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1991년 사담 후세인의 침공에 대한 보상금으로 최근까지 주변국에 510억달러를 지급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영구지배하지 못하게 되면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래저래 조급해진 푸틴은 키이우 점령을 위해 무차별 학살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1일 러시아군이 민간지역에 집속탄과 진공폭탄을 투하한 것도 푸틴의 분노와 조급증 탓으로 보인다.
서구 언론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푸틴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일치된 전망을 하고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지난 2월 26일 미국 MSNBC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역사적인 잘못”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전문가인 피오나 힐은 푸틴이 스스로 “러시아 역사의 주역”임을 자신하며 침공한 것 같지만, 그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주변의 아첨꾼들” 때문에 올바른 정보를 토대로 행동한 것 같지 않다고 분석했다. MSNBC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될수록 푸틴은 개인적인 영광과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 나타난 독재자들의 말로가 보여주듯이 푸틴도 이제부터 몰락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전문가인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피터 포메란체프 선임연구원은 지난 2월 25일 미국의 주간지 ‘타임’ 기고문에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그 자신에게 다가오는 “필연적인 몰락”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피를 수혈하여 회춘하려 드는 욕심 많은 노인처럼, 죽음을 앞둔 노인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여 정치적 연명을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70세의 독재자 푸틴은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한다고 포메란체프는 주장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러시아에서는 관리들이 푸틴을 만나려면 사전에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수일간 격리되어야 한다. 또 푸틴이 보톡스를 과도하게 시술하여 안면이 왁스처럼 보이는 것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수십 년간 무한 권력을 휘두르며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투옥한 독재자 푸틴은 흐르는 세월과도 싸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며 “두려운 미래를 과거로 대체하려 든다”고 분석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도 이미 민주주의의 맛을 본 이 나라를 19세기로 되돌리려는 욕망으로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아무 계획이 없으며, 다만 자신이 젊었던 소련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 2014년 우크라이나 민주화혁명 이후 제정된 모든 법률을 폐지하려 든다는 설명이다.
보톡스 과도 시술, 세월과 싸우는 독재자
푸틴은 1999년 12월 중병에 시달리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처음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한 후 헌법 개정을 통해 2018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푸틴은 2024년, 2030년에 6년 임기의 대통령에 다시 도전하여 2036년까지 대통령직에 머무를 수 있다. 지난 2020년부터 미국의 ‘폴리티코’ 등은 푸틴이 2024년 이전에 후계자를 지명하고 하야할 것이라는 전망도 했지만, 푸틴은 2020년 6월 ‘후계자를 지명할 순간이 있겠지만 선택은 국민이 한다’는 취지의 원칙론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6월에는 “후계자 논쟁은 정치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푸틴에게는 정적이 없다.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던 자유민주주의자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암살당했다. 그와 협력했던 푸틴 정권의 첫 총리인 보리스 카시야노프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푸틴 비판자였던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2013년 출국했다. 푸틴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반정부시위를 주도하던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해 독극물 공격을 받아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올해 2월 귀국하자마자 2년6월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상태다. 러시아인들에게는 푸틴의 후계자 경쟁이 큰 의미가 없다. 후계자들은 대부분 푸틴의 이너서클에서 나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현재 푸틴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인물은 미하일 미슈스틴(55) 총리, 세르게이 소뱌닌(64) 모스크바 시장, 세르게이 쇼이구(66) 국방장관 등 3명이다.
미슈스틴은 2020년 1월 총리에 임명되면서 푸틴의 후계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징세 체계를 디지털화한 것으로 알려진 미슈스틴은 푸틴의 집권기반인 군, 보안기관 인사들과 관리들을 연결해준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총리는 집권세력 내부에서는 질시를, 일반시민들로부터는 원성을 사는 자리이다.
소뱌닌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모스크바시의 예산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다. 소뱌닌은 모스크바를 현대적인 유럽 도시로 만들기 위한 대규모 재개발 정책을 주도했으며 부패척결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소뱌닌은 유능하다는 평가를 토대로 2013년 시장 선거에서 알렉세이 나발니에 승리했다. 소뱌닌은 푸틴의 첫 번째 테크노크라트이며 오랜 충성을 보였기 때문에 푸틴의 후계자 리스트에서 상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후계자들은 누구?
쇼이구 국방장관은 푸틴만큼이나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그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비상사태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다양한 자연재난에 대처해 인기를 끌었다. 2012년 국방장관이 된 후에는 러시아군의 현대화 작업을 감독하였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합병과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쇼이구는 푸틴의 친구이기도 하다. 여름휴가 때에는 투바에서 함께 웃통을 벗고 낚시나 보트를 타며 즐기는 광경이 TV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푸틴의 후계자로 가장 자주 지목된다. 그러나 푸틴보다 세 살밖에 어리지 않은 점과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점 등이 약점으로 꼽힌다.
안드레이 벨루소프(62) 부총리 역시 푸틴의 후계자로 자주 지목되는 인물이다. 소련 시절 저명한 경제학자의 아들인 그는 2013년 푸틴의 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국영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 이사회장, 경제개발장관 등을 역임했다.
군 출신으로는 푸틴의 경호부대를 지휘하고 군정보국(GRU) 실무책임자를 지낸 알렉세이 듀민(50) 국방차관도 후계자로 지목된다. 그는 2014년 크름반도 합병 당시 결정적 역할을 하여 다음해 국방차관이 되었으며 러시아의 영웅 칭호도 받았다.
이들 푸틴의 후계자들이 과연 역사의 무대로 올라올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와 세계 여론과 맞서 싸우는 독재자의 운명이 이들의 앞날을 좌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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