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전 다 뒤집고 가라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3.02 08:58 수정 2022.03.02 10:03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공약이 딱 그렇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갑자기 자신이 건설 중단 또는 준공 지연시킨 원전들을 빨리 가동시킬 수 있게 점검을 서둘러달라고 지시했다. 탈원전을 뒤집고 '원전 유턴'을 선언한 것이다.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에너지 대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값비싼 신재생에너지의 비중만 늘려서는 대응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공약 자체가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비과학적 믿음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뒤집는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한국 원전은 세계 최고로 안전하다" "한국 원전은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나. 늦었지만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고집으로 해당 공기업과 민간 기업들에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안기고, 인력과 기술 등 세계 최고 원전 생태계를 망가뜨린 것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상북도에서만 탈원전 공약으로 23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런저런 피해액을 합하면 나라 전체적으로 입은 피해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정치도 나온다. 적법한 정책 시행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불법이 있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규제와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약속 역시 마찬가지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오기에 기반한 반(反) 시장적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 지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후 방향을 틀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5년전 촛불시위와 같은 상황이 없었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금은 잊혀진 구호가 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공약 역시 일찍 포기한 게 나라를 위해서나, 현 정부를 위해 잘한 일이다. 일자리 참사, 가계소득·분배 악화 같은 부작용을 갖가지 통계 분식으로 틀어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오늘로 딱 69일 남았다.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정책의 부작용과 오류를 인정하고 정책을 많이 뒤집었지만 아직 남은 게 많다. 예컨대 일자리만 내쫓고,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대중 굴종외교, 대미·대일 갈등외교 같은 것들 말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과 취임사 내용, 국정운영 로드맵을 통틀어 지킨 것은 딱 하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실제 그렇다. 정부도 백서를 만들고 있겠지만, 정치로부터 독립된 권력기관 개혁부터, 민주·인권 회복, 일자리 창출, 미래성장동력 확충, 저출산·고령화 대응, 주거문제 해소, 국익우선 협력외교, 재난 예방 등 핵심 공약과 정책들에 대해 할 말이 궁할 것이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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