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이도 사는법] 선거소송과 ‘지연된 정의’
지난달 28일 서울행정법원은 한 시민단체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각하’ 결정했습니다. 각하란 소송 자체가 부적법해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끝내는 절차입니다.
이 단체는 선관위가 이번 대선에서 코로나 19 에 확진돼 자가격리중인 사람들에게 거소투표를 허용한 방침 등이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구체적으로 QR코드가 표기된 사전투표용지 발급을 금지하고 임시사무소를 설치해서는 안 되며 중국인을 개표사무원으로 위촉해 선거개표 업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본안 소송과 함께 임시 처분인 집행정지 신청을 냈습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이들 조치로 부정선거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본안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했습니다. 공직선거법이 대통령 선거에 대한 불복방법으로 선거소송(222조)과 당선소송(223조) 두 가지만 정하고 있고, 이들 소송이 선거일 혹은 당선일로부터 일정 기간(30일) 내에 대법원을 전속 관할로 해서만 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소송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이처럼 불복 방법을 한정한 취지를 고려할 때 선거기관의 개개의 행위를 대상으로 한 소송은 허용될 없고, 이 소송에 부수한 집행정지 신청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설령 선거 전 선거관리기관의 개별적 위법행위가 있다고 해도 이에 대해서는 선거 종료 후 선거소송으로만 시정을 구할 수 있다”며 같은 내용의 대법원 판례도 제시했습니다.
공직선거법 222조(선거소송), 223조(당선소송)는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에 있어 선거 및 당선의 효력을 다투는 방법을 각각 정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와는 달리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는 대법원에서 단심제로 다뤄집니다. 이처럼 관할 및 제소기간을 한정한 이유는 선거 결과에 대한 법적 다툼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직선거법 225조는 ‘소(訴)가 제기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규정까지 두고 있습니다. 임기의 상당 부분을 채우거나 임기가 지난 후 선거소송 결론이 나면 소송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제 21대 국회의원 총선 직후 선거무효소송이 120건이나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그로부터 7개월이 넘는 2020년 7월 기준으로 단 1건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소송을 낸 사람들 중 일부도 사전투표용지 QR코드 사용을 문제삼았습니다. 공직선거법 151조 6항은 사전투표 용지에 바코드 형태로 일렬번호를 인쇄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바코드가 아닌 QR코드는 위법하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최종 결론을 아직까지 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작년 6월 말 사전투표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며 선거무효 소송을 낸 민경욱 전 의원 사건에서 “사전투표지의 QR코드를 검증한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추가 쟁점에 대한 심리가 필요하다”며 선고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 미래통합당 후보들이 선거 직전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낸 선거무효 소송에 대해서는 작년 8월, 경실련 등이 위성정당이 참여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가 무효라며 낸 소송에 대한 기각 판결은 지난 1월 각각 기각 결론이 나왔지만 사전투표 용지를 문제삼는 사건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21대 총선의 경우 오는 4월이면 임기(4년)의 절반을 채우게 됩니다.
서울행정법원이 각하한 ‘집행정지’와 대법원의 선거소송 상황을 함께 보면 ‘도돌이표’ 같은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법에 정해진 대로 선거 후 대법원에 소송을 내면 결과를 기약할 수 없고, 대안으로 다른 방식의 소송을 내면 ‘각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선거에 대한 소송은 법원에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공직선거법 225조는 ‘다른 소송에 우선해서’ 선거소송을 처리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입법자가 법원에 대해 ‘사건이 많다’는 핑계를 대지 말라고 만든 조항으로 보입니다. 선거소송이야말로 ‘지연된 정의’ 의 부작용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영역이니 만큼 법원의 조속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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