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대법원장이 ‘사법부 위기’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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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대법관이 지난달 23일 대장동 녹취록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녹취록에 자신이 ‘그분’으로 언급된 의혹에 대해 조 대법관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현직 대법관이 기자회견을 하는 것 자체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조 대법관의 기자회견은 ‘사법부 위기’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대장동 사건에서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이 터지면서 국민이 대법원 재판의 공정성까지 의심하게 됐다. 조 대법관이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원칙을 깨고 기자회견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경위는 사법부 위기를 더욱 심각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
조 대법관 기자회견의 직접적 계기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국에 생중계되는 방송 토론에서 “대장동 ‘그분’은 조재연 대법관”이라며 실명을 공개한 것이다. 대선 후보가 현직 대법관을 이런 식으로 거명한 것은 사상 초유다. 민주당도 가담했다. 송영길 대표는 “법원행정처와 조 대법관은 국민 앞에 공식 입장을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했고, 김남국 의원은 “수사를 통해 해당 내용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즉각 탄핵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현직 대법관도 의혹이 있다면 본인이 해명하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대법원 자체 조사나 수사 기관을 통해 진상을 밝혀야 마땅하다. 그런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부패 범죄라는 대장동 사건에 현직 대법관이 관련됐다고 주장하려면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법부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와 민주당이 조 대법관을 대장동 ‘그분’으로 몰아가려 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조 대법관이 “엄중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하자 이 후보와 민주당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김명수 대법원은 위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법관과 재판 관련 의혹이 잇달아 나오면서 국민의 신뢰를 받기 힘든 지경이다. 그런데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손을 놓고 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김 대법원장이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조 대법관 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됐다. 한 기자가 “의혹이 자꾸 불거지는 이유가 재판 거래 때문인데 대법원 내부 논의가 있는가”라고 묻자, 조 대법관은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따로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사법부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인데도 대법원장이 못 본 체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여당이 조 대법관을 대장동 ‘그분’으로 지목한 것에 대해서도 모든 대응을 조 대법관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 조 대법관은 “기자회견을 대법원장과 논의한 게 없다”고 했다. 그의 기자회견에 대법원은 공보관 한 명만 보내 진행을 맡겼을 뿐 다른 관계자는 전혀 참석시키지 않았다. 대법원장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조 대법관은 “침묵하면 사법부 불신에 부채질을 더 하는 격”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사에서 “사법부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용기나 사명감과 더불어 국민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자신의 말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정권 불법을 심판하는 판사들을 겁주려고 여당이 추진한 ‘억지 탄핵’에 후배 판사를 희생양으로 바치고 ‘정권 편들기 재판’과 ‘코드 인사’로 법원을 망쳤다. 사법부 독립을 위한 방파제가 돼야 할 대법원장이 사법부 위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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