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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좌절할 때마다, 그래도 두려움 내려놓고 해봅시다”

 

“좌절할 때마다, 그래도 두려움 내려놓고 해봅시다”

서울대 교육학과 강민영씨, 학위수여식서 졸업생 대표로 연설
선천성 중증 시각장애 극복하고 행정고시 교육행정직 수석 합격
“남들이 ‘불가능’ 말해도 계속 도전”

입력 2022.02.26 03:00
25일 비대면으로 진행된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인 교육학과 강민영씨가 ‘점자 정보 단말기’에 손을 올려 점자를 읽으며 연설을 하고 있다. /서울대 유튜브

25일 비대면으로 진행된 서울대 76회 전기 학위수여식에 졸업생 대표로 학사모를 쓴 교육학과 강민영(27)씨가 화면에 등장했다. 준비한 원고를 점자로 나타내주는 ‘점자 정보 단말기’에 손을 올린 채, 점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차분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졸업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작년 11월 5급 행정고시 교육행정 직렬에 수석(首席)으로 합격했다. 중증 시각장애인이 5급 행시에 합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레버 선천성 흑암시증(LCA)이란 선천성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이날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배움의 과정은 늘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책을 좋아했던 그는 “점자를 공부하면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점자를 익혔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시각장애인이 공부를 하려 해도 읽을 수 있는 책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는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도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얻을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에 늘 배움에 목말라 하며 학교 생활을 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자신처럼 남다른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는 교육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대 교육학과에 진학한 이유였다.

배움의 전당이란 대학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요즘은 각종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수업이 워낙 많은데, 시각장애인도 들을 수 있는 과목을 따로 찾아야 했다. 또 수업에 필요한 교재나 자료를 점자 등 자기가 공부할 수 있는 형태로 일일이 바꿔야 했다. 그는 아예 수강신청 한 달 전부터 미리 수업 자료를 받고, 서울대 장애학생지원센터,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의 도움을 받아 점자나 오디오 파일로 변환했다. 강씨는 “되돌아보면 순탄하게 보냈던 학기가 한 번도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강씨의 지도교수였던 김동일 서울대 교수는 “늘 철저하게 준비해 A학점을 받는 학생이었고, 졸업학점도 학과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중 한 명”이라며 “그룹 활동에선 리더십을 발휘하며 비장애인 학생들에게도 존경과 인정을 받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동기인 임진형(26)씨도 “발표나 영어 실력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뛰어난 친구”라고 했다.

교육 분야 공무원으로 일하겠다는 꿈을 위해 지난 2019년 5급 행정고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주변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른 진로를 생각해보라”며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1차 시험에 연거푸 탈락했을 때는 계속 도전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강씨는 “좌절의 순간마다 제가 내린 답은 ‘그래도 계속해보자’였다”고 했다.

3번의 도전 끝에 강씨는 지난해 5급 행시 교육행정 직렬에 수석 합격했다. 그는 인터뷰는 고사했지만 이날 졸업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졸업생 여러분! 졸업 이후 우리가 마주할 세상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나이, 성별, 장애 등의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은 내려놓고 과감하게 도전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가 준비한 원고의 마지막은 부모님께 전하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늘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 저는 괜찮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