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자녀 교육의 핵심은 이거더라" [백성호의 한줄명상]
입력 2022.02.16 05:00
업데이트 2022.02.16 10:27
백성호의 현문우답
구독“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라.”
#풍경1
김형석 교수는 올해 한국 나이로 103세입니다.
가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건강하신 모습에 놀랐습니다.
지팡이도 짚지 않더군요.
인터뷰 내내 편안하면서도
꼿꼿한 자세로 질문을 척척 받아내는 모습은
“아, 이분이 정말 실력자구나”라는 탄성을
제 안으로 자아내게 합니다.
김형석 교수는 올해 한국 나이로 103세다. 그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100년의 눈'으로 건네는 삶의 지혜가 놀랍다. 김상선 기자
저는 교수님과 인터뷰하는 시간이 참 즐겁습니다.
왜냐고요?
그 시간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10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간 현자(賢者)와 마주하는 느낌은, 음…뭐랄까요.
마치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삶의 답안지와 마주하는 기분입니다.
교수님이 내놓는 답은 늘 간결합니다.
그런데 그 간결함 속에는
정제되고 응축된 엑기스가 담겨 있습니다.
삶에 대한 지혜의 엑기스 말입니다.
김형석 교수가 최근 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제목이 『김형석의 인생문답』입니다.
누구나 마주치는 인생의 31가지 물음에 대한
교수님의 답을 기록한 책입니다.
31가지 물음 중에서
제 눈길을 끈 물음은 ‘교육’이었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자녀 교육을 할 때 우리는 아이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풍경2
다들 고민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이쪽을 따라가자니 저걸 놓치는 것 같고,
저쪽을 따라가자니 이걸 놓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나만 정보에서 소외돼 있는 건 아닌가,
우리 아이만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결국 많은 사람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게 그나마 불안감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따라가면서도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니면 틀린 지 말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6남매를 키웠습니다.
궁금하더군요.
교수님은 자녀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무엇이었을까.
김형석 교수가 인천시 영종도 을왕리 집무실에서 사용한 원고지와 만연필. 김상선 기자
우리가 이 물음을 던지기 전에
교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물음을 하나 던졌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요?”
저만 그런 걸까요.
대다수 부모가 이 물음 앞에서 ‘멈칫’하지 않을까요.
나 자신에게 정식으로 물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잖아,
혹은 부모의 자식 사랑 그건 본능이잖아.
이 정도의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정작 제대로 물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물어보면 어떨까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요?
아마도 다들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요.
“자식의 행복”이라고 말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장 자크 루소의 교육 철학에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루소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그런데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 행복에 어떡하면 닿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충의 목표를 설정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결혼 등입니다.
일종의 보험입니다.
그걸 갖추면 ‘자식의 행복’에 근접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면서 말입니다.
막상 주위를 돌아보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결혼을 성취했는데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이들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그런 목표를 좇는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저는 김형석 교수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정말 자식의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 걸까요?
#풍경3
김형석 교수는 6남매를 키웠습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교수님은 어땠을까요.
교수님의 답은 이랬습니다.
김형석교수는 "상대방의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상대방의 자유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김형석 교수가 꺼낸 자녀 교육의 핵심 키워드는
다름 아닌 ‘자유’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의 밧줄’이라는 유행가에는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
정작 꽁꽁 묶인 사람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답하진 않겠지요.
김형석 교수는 "자유는 결국 선택할 자유다.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게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김형석 교수는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습니다.
“당신의 아이를 사랑한다고 할 때 무엇을 사랑합니까.
아이의 성적입니까, 아니면 아이의 재능입니까.
아이의 무엇을 사랑하는 겁니까?”
이제는 우리 차례가 아닐까요.
이 물음에 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지금도 늦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풍경4
교수님은 자녀 교육의 핵심 키워드가
“자유”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유’란 어찌 보면 추상적 개념입니다.
그럼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자유’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우리가 실생활에서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 물음에 교수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유는 다름 아닌 ‘선택’입니다.
‘이걸 해! 저걸 해!’ 가 아니라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어.
너는 어떤 걸 선택할래?’라고
아이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게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김형석 교수는 "부모가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 때 아이의 자아가 생겨난다. 자아의 중심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듣고 보니 비단 어린아이에게만 해당하는
삶의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된 뒤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 작동하는
소중한 삶의 지혜입니다.
그렇게 선택의 기회를 줄 때
아이에게 근육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삶을 헤쳐나갈 힘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만약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의 자아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중심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헤쳐가는 삶.
자녀에게 그걸 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선택의 기회’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게 자유라고 했습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쉽고,
어찌 보면 참 어렵습니다.
아이의 선택이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고,
선택할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일.
교수님은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자녀 교육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아이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풍경5
김형석 교수와 인터뷰를 할 때였습니다.
마주 앉은 교수님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렇게 빗댔습니다.
저는 이 비유가 두고두고 잊히지 않습니다.
“자식이 아주 어릴 때는 보호해줘야 합니다.
조금 더 자라면 유치원에 다닙니다.
그럼 부모와 자식이 손잡고 같이 갑니다.
스승과 제자가 같이 다니듯이 말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사춘기까지 그렇게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다음에는 어떻게 다녀야 할까요.
“사춘기 다음에는 아이를 앞세우고
부모가 뒤에 갑니다.
선택은 네가 해라.
자유는 선택의 기회를 갖는 거니까.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니까.
이러면서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앞에서 아이 손을 잡고 갑니다.
유치원부터는 부모와 아이가 손을 잡고 나란히 갑니다.
사춘기 때도 그렇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달라집니다.
자녀를 앞에 세우고 부모는 뒤에서 갑니다.
김형석 교수는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 광경을
생각하면 할수록
지혜로운 부모,
행복한 아이가 보입니다.
우리가 이걸 놓치지 않는다면
세월이 상당히 흐른 뒤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가
꽤 좋지 않을까요.
서로 행복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요.
〈'백성호의 한줄명상'은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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