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현금부자 “5년 뒤 10억 오를 아파트, 그래도 못 사겠다” 왜? [왕개미연구소]
“평소에는 잘 나오지 않는 전망 좋은 동(棟)의 로열층이라서 놓치기 싫은데···”
통장에 현금 15억원을 갖고 있는 자산가 A씨. 용산구 이촌동의 50평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1주택자다. 최근 그는 평소에 눈여겨 봤던 거주지 근처 52평 아파트가 28억원에 나왔다는 말을 부동산에서 듣고, 추가 매수를 고민하고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시대에 현금을 너무 많이 보유하는 것도 손해 같아서 마음이 급하던 차였다.
A씨의 주택 추가 매수는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20일 NH투자증권 WM사업부의 정보현 연구위원이 52평 아파트 매매 득실을 따져 봤다.
일단 A씨가 28억원짜리 용산 아파트를 살 때 내야 하는 취득세는 2억5200만원(조정지역 2주택 중과 8%)이다. 그리고 2주택자가 되기 때문에 A씨는 연말에 종합부동산세로 약 7494만원(21년 공시가격 기준, 100% 공정가비율)을 내야 한다. 참고로 1주택자인 지금 A씨가 내는 종부세는 159만원 정도다.
5년간 종부세로 7500만원씩 내다가 A씨 예상대로 2027년 1월에 38억원에 판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양도 차익은 10억원. 현행 기준대로라면, 2주택자인 A씨는 시세차익 10억에 대한 양도소득세로 6억4136만원(20% 중과, 지방세 포함)을 내야 한다.
A씨가 추가 주택 구입과 보유를 위해 쓴 돈을 단순 계산해 보면, 취득세+종부세+양도세로만 약 12억6800만원이 나갔다. 집을 한 채 사고 다시 팔아서 10억원은 벌 수 있겠다고 예상했지만, 5년 동안 각종 부대 비용으로 12억6800만원을 썼으니 결국 마이너스 장사다. 중개 수수료와 재산세, 인테리어 같은 비용을 더한다면 손해가 더 커진다.
정 연구위원은 “A씨와 같은 현금 동원력이 있는 큰손들도 (비용 부담 때문에) 다주택자가 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면서 “각종 세금 등으로 거래할 때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사기도 팔기도 어려워진 것이 작금의 주택 시장 현실”이라고 말했다.
A씨의 사례를 듣고 나면, 최근 서울 아파트 거래가 뚝 끊긴 현상도 이해가 간다. 2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작년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980건에 그쳤다. 작년 1월(5796건)과 비교하면 83%나 감소했다. 올 1월도 사정은 비슷하다. 18일까지라고 해도 1월 거래량은 129건에 그쳐 한겨울이다.
정 연구위원은 “통상 거래량과 가격은 정비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최근 서울 아파트는 거래 절벽 속에서도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거래 절벽과 수요 감소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집값 장기 하락 초입이다, 아직은 아니다 등 해석이 분분한데, 대선 이후에 확실한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은 대세 하락기의 전조라고 예단하기 어렵고, 세제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 굵직굵직한 변수에 따라 시장 반응이 달라질 것이란 설명이다.
그런데 A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시중에 현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구매 수요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지난 18~19일 진행된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에 114조원이라는 뭉칫돈이 몰렸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정 연구위원은 정부 규제 때문에 억눌린 아파트 구매 수요가 비(非)아파트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비아파트란, 단독, 다가구, 다세대, 오피스텔, 생활형 숙박시설, 도시형 생활주택 등을 말한다.
이미 숫자로도 이런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체 거래(9만4908건) 중 아파트는 3만9099건이었는데, 다세대 주택이 4만2061건을 기록해 아파트 거래 건수를 추월했다. 최근 규제가 덜한 오피스텔 신규 분양에서 높은 경쟁률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2015년과 비교해도 비아파트 선호 현상은 뚜렷하다(표 참고). 지난 2015년 아파트 거래 비중은 59%에 달했는데 2021년에는 41.2%로 감소했다. 그 대신 다세대 주택 비중이 크게 늘었음을 알 수 있다(24.5%→44.3%).
향후 국내 부동산 시장은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DSR 도입) 등 두 가지 변수 때문에 상승세가 다소 둔화될 것이라고 정 연구위원은 예상했다. 그는 “주택 거래량이 감소한 현재 상황은 대선 전까지는 지속되고, 2분기(4~6월)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신규 부동산 자산을 취득한다면, 세제와 금리 환경 변수를 감안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 시장 전체 하락은 어렵다고 보지만 상품별 옥석은 가려질 것”이라며 “중저가 주택은 직접적인 대출 규제 영향이 불가피하지만, 이미 2년 넘게 대출이 어려운 초고가 주택은 다른 사이클로 움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령 초고가 아파트의 경우엔 현금이 충분한 큰손들이 사기 때문에 대출 규제는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3월 대선 전까지는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 눈치 싸움이 계속되다가 대선 이후 규제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면 강북 재개발과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투자 심리가 회복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주택 대신 똘똘한 중대형 한 채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초고가 시장과 기타 지역의 양극화는 더욱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한편, 정 연구위원의 분석을 다 듣고 난 A씨는 결국 추가 주택 구매를 포기했다고 한다. 대선 이후에 주택 관련 세제가 완화된다고는 하지만, 1주택자 위주로 흘러가지, 다주택자를 위한 절세 혜택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A씨는 추가로 대출을 더 받아서 통빌딩을 매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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