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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탈원전이 빚은 ‘전기료 쇼크’… 中企 “올 영업익 3분의 1 사라질 판”

탈원전이 빚은 ‘전기료 쇼크’… 中企 “올 영업익 3분의 1 사라질 판”

[탈원전 5년, 무너진 60년 원전사업] [下] 날아드는 ‘탈원전 청구서’

입력 2022.01.12 04:15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의 한 금형 업체 직원이 사출 기계가 생산한 코로나 진단 키트용 플라스틱 케이스를 수거하고 있다. 이 업체는 인력난으로 생산 공정을 대부분 자동화했지만 전기 요금 인상으로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 회사 대표 정모씨는 “올 10월까지 전기 요금이 10% 이상 오르는데 막막하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달 28일 찾은 경기 부천시의 한 금형 업체. 코로나 진단 키트용 플라스틱 케이스를 생산하는 사출기 30대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출기마다 제작이 완료된 플라스틱 케이스가 한 번에 30개씩 쏟아져 나왔다. 이 회사 정모 대표는 “인력 구하기가 어려워 큰돈 들여 자동화했더니 이젠 전기 요금 때문에 죽을 맛”이라며 “작년 4분기 전기 요금이 kWh(킬로와트시)당 3원 오른 데다 겨울 할증까지 겹치는 바람에 한 달 전기 요금으로 1000만원을 더 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전력이 올해 4월 이후 전기 요금을 10.6% 올리기로 하면서 앞날은 더 캄캄하다. 두 자릿수 인상은 1981년 이후 40여 년 만이다. 정 대표는 “원가 15% 정도가 전기 요금인데... 이젠 정말 남는 게 없다”고 했다. 탈(脫)원전 5년 청구서가 전기료 폭탄으로 기업·가정 등 소비자에게 돌아오고 있다.

◇탈원전 밀어붙이며 전기 요금 눌러

전기 요금이 사실상 영업이익을 좌우하는 주물·열처리와 같은 뿌리 산업 기업들은 전기 요금 인상 소식에 크게 낙담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주물 업체 사장은 “지난 11월 한 달 전기 요금은 1억원 가까이 나왔다”며 “전기 요금이 지금보다 10% 이상 오르면 매달 1000만원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 한 해 영업이익 3억원 중 3분의 1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상오 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법 시행 등으로 가뜩이나 힘든 중소기업에 전기 요금 인상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했다.

전기 요금 충격은 중소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연간 1조원 정도를 전기 요금으로 쓰는 현대제철은 1000억원 이상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비싼 전기 요금 탓에 데이터 센터 등 해외 투자와 시설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우리 산업 성장에 저렴한 전기 요금이 이바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는 원전(原電)을 활용해 전기 생산 비용을 낮추면서 인상 요인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 시장 망가뜨린 탈원전 5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며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원전 축소, 재생에너지·LNG(액화천연가스) 이용 확대는 발전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5년 내내 전기 요금을 억눌러왔다. 최근 1년 사이 예상치 못한 국제 유가 등 연료비 폭등이 겹치면서 한전이 수조원 적자를 보자 뒤늦게 요금 인상에 나선 것이다. 한 공기업 고위 간부는 “시장 논리를 무시한 탈원전 5년이 전력 시장을 망가뜨려 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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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밀어붙이면 2050년 전기요금은

정부는 여전히 전기 요금 인상은 탈원전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전 이용률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평균 84.2%인데 탈원전 5년(2017~2021년) 동안에는 71.5%로 떨어졌다. 탈원전 5년 동안 발전량에서 원전 비율은 26.4%로 2010~2016년(평균 30%)보다 낮아졌다. 반면 LNG 발전 비율은 21.6%에서 26.2%, 재생에너지는 3%에서 6.8%로 증가했다. 값싼 원전 비율을 줄이고, 비싼 재생에너지·LNG발전을 확대해 전기 요금 인상 빌미를 만들었으면서도 지금껏 전기 요금 인상은 연료비 급등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탈원전 청구서 지금부터 시작

탄소 중립,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피하다. 이에 따른 전기 요금 상승도 소비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대안으로 원전을 확대하는 세계 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원전까지 축소하면서 전기 요금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원자력학회 에너지믹스특별위원회와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가 지난해 7월 발표한 ‘2050년 에너지믹스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50%까지 늘리고 원전 13기를 새로 건설해 원전 발전 비율을 34% 정도로 유지하면 발전 비용은 41조~49조원 증가하고, 1인당 전기 요금은 50~61% 오른다. 반면 재생에너지 비율을 80%로 늘리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경우 73조~96조원이 추가돼 전기 요금 인상률은 91~123%로 뛴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막대한 비용 수반으로 대폭적인 전기 요금 인상을 가져온다”며 “전력 시스템 비용과 탄소 배출량 측면에서 원전 확대가 합리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