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의 모습이 담긴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굴이란 단어마저 쓸쓸하게 들린다. 껍데기째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그냥 돌덩어리인데 과연 이런 게 음식이란 걸 알아내고 처음 입에 집어넣은 용감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한참 흐물거리다가 입안에 들어가면 탱글탱글해지고 비릿하면서도 짠 내가 코를 찌르다가 삼키려고 하면 달곰해지는 맛, 굴.
굴을 통영 사람들은 꿀이라고 부른다. 센 발음으로 굴을 말하는 것과 실제로 달콤한 꿀처럼 귀하고 맛있다는 중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십여년 전 통영에 굴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작업장에서 계속 꿀이란 단어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나도 굴 껍데기를 꿀단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껍데기를 까고 속살이 나오면 휙 바닥을 긁어 살만 툭 떨어뜨리는데, 이걸 꿀 떨어진다고도 한다. 말이 만들어내는 맛은 이렇게 먹지 않아도 먹은 듯 전달되기도 한다.굴은 겨울이 제철이다. 서양에선 알파벳 아르(R)가 들어가지 않은 달, 즉 5·6·7·8월에는 굴을 먹지 않는다. 실제로 이 시기는 산란기이면서 독성을 품어 먹으면 위험해진다. 하지만 요즘은 사시사철 싱싱하고 커다란 굴이 나온다. 일명 삼배체굴. 굴 유전자는 짝수일 때만 산란이 가능하다. 유전자 수를 홀수로 만들어놓으면 알을 밸 수가 없어지니 산란기 맹독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제철 굴 맛을 못 따라가는 완전 다른 종류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칼바람이 부는 어떤 겨울날, 따뜻한 방구석에 앉아 식구들이랑 오손도손 초고추장 팍팍 찍어가며 우걱우걱 입속에 집어넣는 겨울 굴. 자고로 굴 온도도 창밖의 칼바람처럼 시려야 그것이 굴이지!굴은 씻어 먹는다. 껍데기가 있는 석화든 속 알맹이만 있는 알굴이든 흐르는 물에 씻은 뒤 물기를 쫙 빼내야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한동안 굴을 쌀뜨물에 흔들어 씻는 게 유행이었으나 이미 향기로운 겨울 굴은 흐르는 수돗물이면 충분하다.잘 씻은 굴에 사과를 곁들여보자. 사과를 가늘게 채 썰어서 고춧가루, 다진 마늘, 식초, 간장, 참기름과 함께 무쳐내면 제철 굴 무침 완성. 아삭한 사과의 식감과 달큼한 맛이 굴의 흐물흐물한 느낌을 보완해서 완벽한 한 몸을 이루게 된다.익혀 먹는 굴을 좋아한다면 씻은 굴을 간장과 다진 마늘에 버무렸다가 달걀물에 적셔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지진 굴전이 제격이다. 석화를 펄펄 끓는 찜기에 넣고 2분 정도만 쪄서 먹는 굴찜도 맛있다. 살짝 찐 굴 위에 청·홍고추 다진 것만 얹어도 색깔이 예쁘고 화려해진다. 쪄낸 굴은 참기름과 소금만 곁들여도 훌륭하다.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