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첫 문장을 아시나요?”
[타인의 취향] 출판담당기자 곽아람
OTT는 많고, 시간은 없다. 남들은 뭘 보고 좋아할까요. 조선일보 ‘왓칭’이 남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타인의 취향’을 연재합니다. 오늘은 매주 독자에게 다채로운 신간 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북스’ 섹션의 팀장, 곽아람 출판 담당 기자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입사 19년차, 어느 새 ‘모든 업무의 순간, 책을 읽는 여자’가 되었다는 ‘곽아람 출판전문기자’의 취향을 공유합니다.
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곽아람입니다. 내년이면 20년차 기자가 됩니다. 현재 문화부 Books 팀장으로 일하며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문화부에 있을 때는 주로 미술과 출판 분야를 취재했고, 독서 에세이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1970~1980년대 절판 아동도서 수집기 ‘어릴 적 그 책’, 아메리카 문학기행 ‘바람과 함께, 스칼렛’, 책 속 여주인공들의 야망을 탐구한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등의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2) 일주일에 책, 몇 권 읽으세요?
매주 Books 지면을 만들면서 보통 톱 기사 한 건을 쓰기 때문에 한 주에 한 권 이상은 꼭 읽습니다. 업무로 읽는 책 제외하고 심심풀이로 읽는 책까지 하면 보통 매주 1~2권은 읽는 것 같네요.
3) 책 읽는 시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딱히 노하우도 없고,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읽는 게 직업이고 쓰는 것도 직업이라서요.(웃음) 오히려 눈을 아끼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책 안 읽는 시간과 글 안 쓰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기사가 아닌 책의 경우 저는 전업작가가 아니므로, 출판사와 계약이 있을 때만 쓰는데, 쓰는 동안에 주말 이틀 중 하루는 꼬박꼬박 씁니다. 다만 일과 휴식의 균형이 중요하므로, 다른 하루는 글 쓰기에 손대지 않고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하는 것이 직장을 다니면서 책을 쓸 수 있었던 동력이라 생각합니다.
4) 읽기 싫거나 힘든 책은 없으셨나요?
항상 있지요. 일로 읽는 책은 대부분 두껍고, 딱딱해서 읽기 싫을 때도 많고, 읽을 때도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런 책일수록 완독했을 때 보람이 크기도 합니다. 마침내 내가 이 책을 정복했다는 그런 승리감?
5) 책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 하나, 뭐라고 보세요?
일단 쓰고 본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일이 너무나도 대단하다 생각하고, 내 이야기에 누가 귀를 기울일까 두려워서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끝 문장도 없겠죠. 나중에 고칠 생각을 하고 일단 쓰고 보면 글도 생물이라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6) 출판담당기자로 취재하면서 ‘영화로 남길 인물’ ‘영화로 남길 사건’ 같은 게 있으신가요?
출판 담당기자일 때는 아니고, 제가 주말섹션 ‘Why’를 만들 때 있었던 주말뉴스부 기자 시절인데요. 2014년으로 기억합니다. ‘빨강머리 앤’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번역해 소개한 아동문학가이자 번역가 신지식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빨강머리 앤’의 광팬이라 인터뷰 이후에도 선생님을 몇 번 뵈었고, 선생님이 밥도 사주시고, ‘빨강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다녀와서는 기념품을 보내드리기도 했는데… 선생님이 저희 외할머니 뻘이고 연세가 많으셔서 작년에 90세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 부음 기사를 제가 썼습니다.
신지식 선생님은 이화여고 국어 교사로 있던 1953년 봄, 서울 인사동 헌책방에서 일어판 ‘빨강머리 앤’을 발견하고 빨려들어갈 듯 읽었다고 합니다. 전쟁통에 어머니를 잃은 자신의 심경과 고아인 앤의 이야기가 겹쳐서였죠. 이후 1960년대 초 이화여고 주보 ‘거울’에 ‘앤’을 번역해 연재를 하게 되었어요. 전쟁 직후라 부모 없는 아이, 가난한 아이가 무척 많았는데 그 아이들에게 ‘앤’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해요.
일본 NHK에서는 일본에 ‘빨강머리 앤’을 처음 번역해 소개한 무라오카 하나코의 일생을 ‘하나코와 앤’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었죠. 신지식 선생님의 이야기도 충분히 영화나 드라마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 OTT 매체 몇 개 보시나요. 한 달에 지출하는 이용료는?
저는 영화관 가는 걸 싫어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두 시간씩 화장실도 못 가고 붙들려 있는 게 싫어서요. 그래서 영화를 거의 안 보고 집에서 편한 옷차림으로 누워서 볼 수 있는 TV드라마만 주로 보았는데 넷플릭스가 생기고 나서 예전보다 영화를 많이 보게 되었어요. 한 번 시작하면 드라마 폐인이 되는지라 OTT 서비스는 넷플릭스와 쿠팡 와우 회원이 볼 수 있는 쿠팡플레이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달 지출 이용료는 넷플릭스 8.99불(약 1만666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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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금 꽂혀 있는 작품과 꽂힌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지금은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 꽂혀 있습니다. 원래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게 힘들어서 핸드폰으로는 영화나 드라마 잘 안 보는데요. 설상가상 집 TV가 인터넷 TV가 아니라서 쿠팡 플레이를 연결할 수 없는데도 이 드라마는 핸드폰 들여다보며 매일 열심히 보고 있어요.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 이산과 궁녀 덕임의 궁중 로맨스인데요. 사극 로맨스라고 해서 뻔한 왕과 궁녀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일단 영조 역으로 나오는 배우 이덕화씨가 연기를 너무 잘 하고요. 고증을 잘 하면서도 이렇게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구나, 하며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남자 덕으로 성공하려 하는 여자가 아니라 줏대 있게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간다는 설정도 좋습니다.
9)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최애하는 영상, 3개만 골라주세요.
1. 길모어 걸스 : 다소 길지만 책 좋아하는 소녀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 부잣집 딸이었으나 10대 때 임신해 집 나가 딸 낳아 키우는 엄마 로렐라이와 똑똑한 딸 로리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로리가 하버드를 가고싶어해서 사립 고등학교를 가야하는데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로렐라이가 다시 부모를 찾아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죠. 이야기가 따뜻하고, 책 좋아하는 모범생 소녀 로리의 학창생활을 차분하면서도 다정하게 그려내서 좋습니다.
2. 브리저튼: 섭정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귀족 브리저튼 가의 8남매의 결혼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죠. 1편은 큰딸 다프네의 결혼 이야기였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이고 ‘여자들을 위한 포르노’라 불릴 만큼 야한 장면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 소설을 이북으로 구매해서 읽었고, 원작자인 미국 소설가 줄리아 퀸도 인터뷰 했답니다. 하버드에서 미술사 정공하고 예일대 의대 준비하면서 머리 식히려 로맨스 소설을 썼다는 작가는, 의대에 합격했는데도 소설 쓰기가 자기 적성인 것 같아서 로맨스 소설 작가로 나섰습니다.
3. 더 체어: 한국계 캐나다 배우 ‘산드라 오’가 미국 명문대학 영문과의 첫 아시아계 학과장 김지윤으로 나옵니다. 그가 학과장(The Chair)으로 부임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인문학의 위기가 심각한데요. 학과장의 첫 임무가 나이 많고 일 안 하는 교수들을 과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나오죠. 그 과정에서 학문이란 무엇이며, 인문학적 가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해서 좋습니다. 물론 산드라 오의 연기도 좋고요.
10) 혹시 MBTI 유형이?
해본 적은 있지만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I’로 시작한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전형적인 내향인입니다.
11) 책을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가 정말 많은데요. 그중에서 특별히 추천해주실만한 작품이 있을까요?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면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추천합니다. 단, 책을 읽고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많은 분들이 마거릿 미첼의 원작은 안 읽고 영화만 보셨던데요. 영화도 훌륭하지만 책을 읽으면 더 생생한 디테일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Scarlet O’Hara was not beautiful(스칼렛 오하라는 아름답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 주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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