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종전선언 방식은 모순...목적지부터 정확히 밝혀야”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이 지난해 12월 28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북한 문제는 정부의 이념적 성향과 관계없는 국정과제다. 종전선언,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이 촘촘히 연동돼 있고, 각각의 단계마다 이해관계가 다른 주변 강대국들이 영향을 끼친다. 관계 개선이냐, 제재 강화냐의 방법론적 차이는 있지만 생존과 번영의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정부든 차이가 없었다.
2022년 들어설 새 정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전임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보다 분석적 접근이 요구된다. 지난 5년,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내외적 변수를 극복하지 못하며 성과를 남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집권 마지막 국정과제로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초점은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미흡한 점을 보완해야 할 다음 정부에 맞춰지고 있다.
‘플라자 프로젝트’는 2022년 첫 주제로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과 함께 ‘새로운 남북관계’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말, 집권 10주기를 맞은 김정은 정권은 급변사태를 예견한 전 세계의 판단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정 센터장은 “북한을 선악의 감정적 문제가 아닌 객관적 실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8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세종연구소에서 진행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10년 어떻게 평가하나.
정성장(이하 ‘정’) “지난 10년간 세계는 김정은의 북한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대다수 전문가는 김정은 정권이 오래가지 못하거나 장성택 섭정 군부집단체제가 출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괴리된 판단이었다. 장성택은 2013년에 처형됐고, 군부의 위상은 계속 하락했으며 당과 내각 간부들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김정은은 김정일로부터 궁핍하고 낙후된 경제를 물려받았지만,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경제에서 경쟁과 인센티브를 확산시킴으로써 북한 주민들은 절대적 궁핍에서는 벗어나게 됐다. 과거에 김일성에게만 사용했던 ‘위대한 수령’이라는 표현을 김정은에게 사용할 정도로 위상도 높아졌다. 2021년부터는 각종 공식행사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이 노동당 마크로 교체됐다. 할아버지와 부친의 후광에서 벗어나 군사와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노선과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만이 갖는 차별성이 있나.
정 “정치적으로는 김일성 시대와 유사한 집단적 정책 결정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결정 내용을 대외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회의 개최 사실조차 극비에 부쳤다. 반면 김정은 시대는 회의를 개최하면 결과와 사진을 함께 공개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과감하게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체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면서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문만 시장에 의존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는 상업과 무역 등을 통해 ‘돈주(돈주인)’라는 신흥 자본가 계층이 급성장할 정도로 시장경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계획경제와 민간 자본이 공존을 넘어 경쟁하는 시대로 진화한 것이다.”
-‘돈주’는 어떤 사람들인가.
정 “돈주는 주로 지역별 물가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번다. 자신들이 가진 자본을 이용해 가격이 싼 데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 타 지역에서 비싸게 파는 식이다. 이들의 상업활동은 중국과의 무역 확대로도 이어졌다. 과거에도 물류를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다만 그들의 활동은 상당 부분 불법이었다. 김정은은 이러한 돈주들의 활동을 합법화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제는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로 이행한 것이다. 그 결과 김정은 시대에는 빈부격차가 새로운 사회문제가 됐다.”
-민간 자본은 애초에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정 “김정은 집권 이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가 장롱 속 외화를 양지로 꺼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외화의 출처를 묻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장롱 속 외화가 시장에 나오고 내수 시장과 무역이 활성화됐다. 이는 곧 국가 수입 증대로 연결되고 있다.”
-경제발전을 추진한다면 제재해제와 핵무기의 교환 가능성도 커지는 것 아닌가.
정 “북한은 시장이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중국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 이에 따라 시장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다만 북한은 안보에서 딜레마가 있다. 재래식 무기만 놓고 보면 한국에 열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핵개발을 했는데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초강력 제재를 받고 있다. 사실상 준봉쇄 상태에서 김정은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빅딜을 통해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발전을 이어가려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과의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사실상 비핵화 협상은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만 변수는 코로나19 유행이다. 이는 북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접종 가능한 백신을 사올 수도, 치료제를 사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상황은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나 다음 대통령 후보들은 비핵화를 말하는데.
정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현 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실패한 것은 비핵화를 너무 간단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는 비핵화라는 용어의 합의된 정의가 없다. 미국이 이야기하는 비핵화 개념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개념이다. 핵무기, 중장거리 미사일, 생화학 무기까지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비핵화를 생각했다. 핵무기와 그것의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 생산시설의 폐기 정도다. 미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미 간에도 비핵화 정의를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비핵화를 말하면서도 북한에 생화학 무기까지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비핵화 방법도 한국은 단계적 동시행동이다. 비핵화 조치가 시작되면 그에 상응하는 제재완화도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 입장이었다. 한미 간에도 대북정책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가 지난해 12월 27일 개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밝혔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해 12월 27일, 제8기 제4차 조선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정 “전원회의는 북한을 이끌어가는 핵심엘리트 200명 정도가 참가한다. 공식적으로 당대회 다음으로 중요한 비중을 갖는 회의다. 당대회는 수천명의 대표가 참여하기 때문에 자주 소집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당대회는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반면 전원회의는 그때그때의 중요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거나 새로운 노선을 채택하는 식이다. 이번 전원회의의 핵심의제도 경제문제다. 코로나19 보건위기로 국경을 언제 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앞으로 1~2년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화두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종전선언에 호응할 가능성은 있나.
정 “비핵화나 평화체제 구축과 같이 가야지 그것만 별도로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종전선언은 2006년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반대급부로 제안한 것이었다. 이때의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한 입구론적 시각이다. 평화협정 체결까지 시간이 걸리니 초기단계로 종전선언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게 종전선언은 불가침 약속과 비슷한 의미인 것이다. 그들이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정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우리 사회 내부의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지속된다. 종전선언이 왜 필요한지 다수 국민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내부 합의를 이뤄가는 것이다. 반대를 무시하면 설사, 종전선언을 해도 정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 사실 종전선언을 하면서 정전/휴전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평화협정을 체결할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면 ‘잠정적 평화협정’ 체제로라도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입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중간단계’나 ‘출구’는 전혀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되려고 한다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부터 정확히 국민과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한국과 미국, 북한이 생각하는 목적지가 각기 다르면 같은 ‘입구’로 들어가더라도 결국은 중간에 헤어질 수밖에 없다. 핵 문제도 유사하다. 진보 정부는 핵 문제를 북미 간에 해결할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북미가 협상할 테이블만 만들고 양자를 앉게 하면 역할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미 간에는 뿌리 깊은 적대감이 있어 설사 테이블에 앉더라도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을 때 한국 정부는 북미 양자회담의 한계를 인식하고 남·북·미·중의 4자회담으로 전환했어야 했다.”
-북미관계가 먼저 변화될 가능성은 없나.
정 “미국은 전략 부재 시즌2로 가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웜비어 사망, 북핵 등이 전부다. 북한은 악마와 같은 존재로 간주된다. 특히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당 행정부는 더욱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김정은 집권 후에 북한이 과감히 시장을 확대하고,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일단 시각이 경직되면 정책의 유연성 발휘에도 한계가 생긴다. 만약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를 풀고 싶다면 미국이 북한을 보는 시각부터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식의 변화 없이 정책만 바꾸려고 하면 한계가 있다.”
수해 복구로 기뻐하는 북한 주민들 /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에 대한 인식 오류가 어떤 것인가.
정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100명 이상의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의식조사를 한다. 탈북 당시 북한 주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태도 등을 물어보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집권 초기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들 지지도가 대략 60% 이상이 나왔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는 지지도가 70% 이상으로 치솟았다. 북한의 인권상황이 열악하기는 해도 일부 탈북민들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말하듯 지옥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정책적 오판을 야기한다. 당장 바이든은 김정은과 직접 만나 협상을 하기보다 실무진을 활용한 바텀업(Bottom-up) 방식에 의존하겠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상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방식이다.”
-한국에도 비슷한 인식이 있는데.
정 “끊임없이 북한에 대한 오판을 해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김정일이 사망하면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미국과 공동으로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북한의 안보불안만 자극해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에 더욱 집착하는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해 더욱 강한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게 됐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만약 김정일이 사망하더라도 북한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판단했다면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공개적으로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북한도 미국과 협상을 이어갔을 것이다. 상황에 대한 오판이 뿌리 깊은 불신을 초래하는 식이다.”
-한국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북한의 대응전략은 어떨 것이라고 보나.
정 “북한은 코로나19 때문에 대외협상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와도 대화를 거부하는 입장인데 보수정부가 들어서면 대화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대남 무시 정책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후보는 북한에 ‘할 말은 한다’는 입장이고 윤석열 후보는 ‘비핵화 성과가 있을 때까지 대북제재는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북한이 무시 정책으로 가면 둘 다 의미가 없지 않나.
정 “한미와 북한이 서로 위협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는 북한의 핵무기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고,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중요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고 핵감축에 합의하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수 있다고 답을 해야 한다. ‘무기를 같이 내려놓자’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이 지난해 12월 28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다음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정 “우선 한미동맹의 발전적 재조정 방안부터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프랑스나 영국보다 더 많은 군비를 쓰는 세계 6위권의 군사강국이 됐다. 이제는 한미동맹 내에서도 한국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전작권 전환을 조속히 완료하고, 국방개혁도 단행해야 한다. 현재는 각 군 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다. 육군이 무기를 구입하면 공군, 해군에게도 뭔가를 사줘야 하는 나눠먹기식 군비증강이 진행 중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육·해·공군의 미사일부터 통합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전략사령부를 창설하고 미사일을 통합적으로 운용하면 위협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고비용·저효율의 국방체계를 저비용·고효율로 개혁하면 북한과의 군비경쟁도 멈출 수 있다. 상호 안보 불안 해소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한미동맹의 재조정, 국방개혁, 남북군비통제 등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국민과 주변국들에게 제시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politics/north-korea/article/202201011313001/?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_image&utm_content=202201011313001#csidxa709eb8b74dd3ec98be6c70a9037a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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