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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국영수 한국'에 반기 들었다…40억 대박 일군 자퇴남의 일침

'국영수 한국'에 반기 들었다…40억 대박 일군 자퇴남의 일침

중앙일보

입력 2021.12.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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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식당을 예약할 때면 전화 대신 인터넷에 ‘예약’ 버튼이 있는지 찾게 됐다. 영업시간이 아니어도, 직원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예약 가능한 일시를 확인할 수 있고 취소나 변경도 간편하기 때문이다.

최훈민 테이블매니저 대표. IT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제도권 교육을 탈피한 최 대표는 스무살에 창업해 인공지능 기반의 예약관리 솔루션을 개발했다. 김성룡 기자

생활 속 ‘작지만 큰 혁신’을 가져온 주인공은 26세의 최훈민 테이블매니저 대표다. 자사의 예약관리 솔루션을 네이버·카카오·이동통신사와 연동시켜 인터넷 검색으로 식당을 예약하거나 전화를 걸면 실시간으로 예약 상황이 반영되도록 했다.
지난 2015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테이블매니저는 현재 2200여개 식당이 사용하는 온라인 식당 예약관리 솔루션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네이버와 카카오, 벤처캐피털 등에서 유치한 투자금만 60억원. 최근엔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동통신사 KT의 'AI보이스봇' 광고. 인공지능이 사람이 없어도 자동으로 전화를 받아 예약 절차를 마친다. 사진 광고 영상 캡처

“오잉 귀신인가? 아무도 없는데 누구지?” 배우 윤여정과 앨런킴이 목소리 출연한 KT 광고 속 전화받는 인공지능(AI)이 테이블매니저의 시스템이다.
아직 20대 청년이지만 그가 지나온 길은 범상치 않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대학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사회가 정한 ‘모범 코스’를 과감히 깨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젊은 기업가를 서울 성수동 본사에서 만나봤다.

학교는 왜 나와 버렸나.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육청에서 하는 프로그래밍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IT(정보기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IT특성화고에 들어갔다. 그런데 학교 수업은 IT가 아니라 수능에서 중요한 국영수 위주였다. 심지어 IT는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수십 년 전 기술을 가르치고, 전문가를 교사로 채용하는 것도 법으로 막혀있었다. 공부를 안 하겠단 게 아니라 더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나왔다.”

최훈민 대표의 고교자퇴와 맞물린 2011~2012년 교육계엔 유난히 슬픈 소식이 많았다. 한국 최고의 이공계 수재라는 카이스트 대학생들이 과도한 학업경쟁 스트레스 등으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잇달았고 중·고등학생들조차 ‘이 나라 입시경쟁이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최 대표는 교육부가 있는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해주세요’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사진 최훈민 SNS

그는 획일적인 입시 교육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안학교를 만들어 2년 동안 IT 공부에 매진한 뒤 졸업해 바로 창업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대안학교까지 세웠는데 IT도 결국 세상을 더 편리하게 바꾸는 분야라서 통화는 면이 있어요.”

실제 테이블매니저는 식당 예약문화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외식업계는 아직도 손으로 예약 관련 업무를 하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최 대표는 발로 뛰며 ‘디지털 예약’을 전파했다.

 
식당들이 온라인 예약관리를 낯설어 했을텐데.
“제가 딱 하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현장에 정말 많이 가봤단 거다. 지금까지 1000군데가 넘는 식당을 찾아가 ‘디지털 예약관리’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설명하며 설득했다. 설치하고 나선 일주일에 한 번씩 매장에 가서 잘 쓰고 계신지 확인했다. 직감적인 테이블 배치도 등 많은 부분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출근해서 예약 관리하는 게 평생 족쇄였는데 너무 편해졌다고, 이제 이거 없으면 못 살겠다고, 정말 고맙다고 하시는 사장님들이 많아 뿌듯하다.”
정작 소비자들은 테이블매니저를 잘 모른다.
“알림 메시지든 카카오톡이든 모든 예약 상황을 그 식당 이름으로 발송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객은 식당인데 예약 관련 메시지가 테이블매니저 이름으로 가면 식당이 홍보될 기회를 뺏는 거라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고객과 식당을 가장 빨리 연결하려면 사람들이 제일 익숙하고 많이 쓰는 네이버·카카오 플랫폼을 활용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에 자체 앱(애플리케이션)도 만들지 않았다.”

테이블매니저 최훈민 대표가 서울 성동구 테이블매니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최 대표는 지난해 ‘인공지능(AI) 판매 수요예측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식당에 예약이 얼마나 찰지 일주일 전에 미리 알려주는 솔루션인데,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외식 업체들에 큰 도움이 됐다. 수요예측 프로그램을 식당에 실제 적용한 건 국내 최초다.

식당 수요 예측이 왜 중요한가.
“식당도 항공기 좌석처럼 그날 안 팔리고 남는 자리는 그냥 버리는 자리가 된다. 식자재는 이미 사 놓은 상태라 이걸 버리느냐 싸게 파느냐인데, 외식업은 식자재 원가 비중이 20% 정도로 생각보다 높지 않기 때문에 할인해서라도 판매하는 게 매장 입장에선 이익이다.”

대구광역시 한 일식집의 예약 건수를 테이블매니저 ‘인공지능(AI) 판매 수요예측 프로그램’이 예측한 그래프. 실제 예약 건수와 일주일 전 예측치가 94% 일치한다. 사진 테이블매니저

일례로 테이블매니저는 예약할 경우에 해당 식당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예약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예약 수요를 예측해 어떤 요일에 빈자리가 10개 정도 생길 것 같으면 10팀의 예약 상품권을 받고 다 모이면 마감하는 식으로 수요에 따라 가격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현재 300여개 매장이 예약 상품권을 사용하고 있는데, 수요와 연계한 마케팅 덕에 단기간에 수익을 크게 늘린 식당이 많다.

정확도가 중요할 텐데.
“AI가 2000만 건이 넘는 데이터를 분석해 정확도가 94%에 달한다. 개별 식당의 경우 평균 3개월 정도 솔루션을 사용해 데이터가 쌓이면 이 정확도에 가까워진다.”  

온라인 예약 관리 수요가 늘면서 올해 매출은 지난해 대비 약 5배 증가한 30억~40억원 대를 바라보고 있다. 최 대표는 “인터넷 예약이 확산하는 만큼 모든 식당이 쉽고 편하게 디지털로 예약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게 목표”라며 “조만간 의료·레저·공공분야 등으로 기술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최 대표의 또 다른 관심사는 청년세대의 미래다. 직접 ‘살길’을 찾아 제도권 교육을 박차고 나온 만큼 또래 집단에 대한 공감도 남다르다.

세대갈등이 사회적 문제인데 20대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
“또래들을 만나보면 걱정이 많다는 게 공통점이다. 강남도 아니고 궁궐도 아닌데 지금 사는 월셋집을 살 수 없다는 것, 그런 결과가 내 선택에 의한 게 아니라는 것에 좌절한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시키는 대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했는데 문제는 그게 다 획일화된 옛날 입시제도라는 거다. 제 주변 똑똑한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에 매달려 국어보다 영어 문법이 정확하고 발음도 좋다. 그런데 그게 어떤 가치를 창출하나. 지금 젊은 세대의 상당수는 고민 없이 만든 교육제도의 피해자라고 본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제도권이 담아내지 못하는 교육을 개인과 민간이 해야 한다. 국내에 우수한 개발자가 부족한 것도 뒤처진 제도권 교육이 너무 공고해서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대학 진학률은 너무 높고 중퇴율은 너무 낮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권 교육에 시간과 힘을 뺐기고 있으니 경쟁에서 도태할 수밖에 없다. 저도 제도권 교육을 중단한 거지 학업을 중단한 게 아니다.”
창업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까.
“과거엔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 말도 안 된다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례가 꽤 많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대기업을 뛰어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성공 사례가 보이니까 젊은 세대들도 창업에 매우 긍정적인 것 같다. 창업할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예전엔 기존 산업을 IT로 효율화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AI의 등장으로 아예 할 수 없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됐다. 식당 수요 예측도 과거엔 사실상 불가능했다. 새로운 기술이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이 올 거다. 이런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이소아·양수민 기자 ls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