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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난민 싣고와 숲에 뿌렸다? 벨라루스 기상천외 EU 공격

중동 난민 싣고와 숲에 뿌렸다? 벨라루스 기상천외 EU 공격

중앙일보

입력 2021.11.30 18:00

업데이트 2021.11.30 18:15

 

지난 8월 폴란드와 벨라루스 간 국경을 지키던 폴란드 국경수비대가 특이한 현상을 보고했다. 벨라루스 쪽 접경에 난데없이 중동 난민들이 나타나 폴란드로 넘어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즈음부터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지대에 나타나는 중동·중앙아시아 난민 수는 점점 늘기 시작했다. 이들이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들어가려는 시도는 8월까지 1000여건에서 올 10월 총 3만 건을 넘겼다. 폴란드 불법 월경 건수는 지난해 총 122건에 불과했다. 불과 1년 사이에 250배 폭증했다. 위기를 느낀 폴란드는 지난 9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라크 쿠르드족 난민 가족이 지난 9일 폴란드-벨라루스 접경지대 인근 숲에서 20일째 머물고 있다. 이라크ㆍ시리아ㆍ아프간 출신 난민들이 시시때때로 폴란드로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면서 물리적 충돌도 빚어지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온 이들 난민은 8월부터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철조망 앞 숲에 캠프를 차리고 폴란드 진입 허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난민 규모는 3000~1만 명으로 추정된다. 늦가을 추위가 깊어지면서 1살 아기를 포함해 사망자 수도 10명을 넘겼다. 아직 문제 해결 조짐은 없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동유럽 국가다. 슬라브계 백인이 전체 인구의 97%를 차지한다. 중동과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벨라루스에 어떻게 중동 난민들이 갑자기 집결할 수 있었을까. 왜 그들은 낯선 동유럽 숲속에서 버티며 기를 쓰고 폴란드로 들어가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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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북한’ 벨라루스 

이 희한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벨라루스라는 나라를 아는 게 필요하다.  벨라루스는 ‘하얀 러시아’라는 뜻을 가진 국가다. 지난 9월 러시아와 ‘연합 국가’ 창설을 위한 경제적 로드맵에 합의했을 정도로 친러시아적 성향을 띤 나라다. 국경을 맞댄 폴란드, 리투아니아와는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않다. 벨라루스는 유럽연합(EU) 소속국이 아니지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EU 소속 국가다.

 

지난해 8월 벨라루스 역사상 6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그는 1994년 첫 대선 이후 6번의 대선에서 모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중 일부가 부정선거로 드러났지만, 그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시위하는 국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그래서 별명이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다. 사진 AP=연합뉴스

벨라루스의 대통령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Лукашэ́нка·67)다. 소련이 무너지고 벨라루스 의회에서 반부패위원회 임시의장을 맡았다. 구소련 시절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낱낱이 밝혀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인기에 힘입어 루카셴코는 벨라루스 독립 이후 첫 대통령 선거에 당선됐다. 그는 당선 당시 인터뷰에서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다만 국민을 속이고 강탈하는 자에게 맞서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후 다섯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지만 그중 일부는 부정선거로 의심받고 있다.

지난해 8월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선거관리위원이 부정을 폭로했다. 벨라루스에선 연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장기화한 경기 침체와 무관심한 코로나 대응도 분노를 일으켰다. 10만명이 넘는 국민이 수도 민스크에 모여 루카셴코의 하야를 요구했다. 루카셴코는 반정부시위대를 탄압했다. 반정부 언론을 폐간시키고 기자를 잡아 가뒀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 때문에 벨라루스는 ‘유럽의 북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0년 8월 열린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 결과 루카셴코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자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EPA=연합뉴스

벨라루스의 꼼수 ‘난민 떠넘기기’ 

그러다 지난 5월 국민뿐만 아니라 EU까지 적으로 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반정부 언론인이 탄 비행기를 강제 착륙시킨 일이다. 해외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을 비판해 온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Протасевич·26)는 당시 그리스에서 리투아니아로 가는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 여객기를 타고 있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투기를 동원해 아일랜드 국적 여객기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뒤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했다.

이 사건에 경악한 EU 국가들은 언론인 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벨라루스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합의했다. 대선 부정 선거, 언론 탄압, 반정부 인사 체포 등이 일어날 때마다 EU는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 수위를 올려왔다. 강화된 제재 결과로, 벨라루스 국적기는 EU 소속 국가의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게 됐다. 석유·염화칼륨·담배 등 벨라루스산 수입품에 대한 거래가 제한됐다. EU 소속 국가 안에 보유한 벨라루스 주요 인사들의 자산도 동결됐다.

지난 6월 3일 벨라루스 국영방송사 ONT 채널과 인터뷰 중인 라만 프라타세비치. 27세인 프라타세비치는 청소년 때부터 정부와 맞서 싸웠고, 탄압받자 해외로 옮겨 반정부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텔레그램 채널은 200만명이 구독하고 있다. 루카셴코는 그가 탑승한 비행기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 강제 착륙시킨 뒤 체포했다. 사진 AP=연합뉴스

이런 제재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뜬금없이 중동과 아프간 난민들이 벨라루스에 속속 도착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벨라루스의 저의를 의심한 EU 집행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벨라루스 외무부는 지난 8월 이라크 등 현지 대사관을 통해 난민에 대한 비자발급을 대거 허용했다. 이후 여행사와 항공사를 동원해 이라크·시리아·아프간에서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로 난민을 실어날랐다. 벨라루스 당국이 난민에게 철조망 절단기와 도끼를 건네주며 국경을 넘도록 종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벨라루스 정부는 이를 전면 부인하며 오히려 EU가 난민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한다고 비난한다.

EU는 난민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벨라루스에 추가적 제재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에 대항해 이제는 ‘천연가스’ 카드를 꺼내 들었다. EU는 천연가스 사용량의 약 40%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러시아에서 EU 각 국가로 가는 가스관의 5분의 1은 벨라루스 영토를 통과한다. 벨라루스가 가스관을 잠그면 당장 유럽에 에너지 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우리가 천연가스를 끊으면 어떻게 될까. 멍청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지도자가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라고 충고한다”고 위협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군 병력을 결집하면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나토와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려를 표하자 러시아는 근거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연합 군사 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벨라루스의 ‘난민 밀어내기’ 전략은 홀로 꾸민 일일까. EU는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뒷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강하게 의심한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운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10만명 이상의 군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개입할 수도 있는 EU를 다방면으로 흔들 카드가 필요하다. EU는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조종해 EU를 골탕 먹이고 있다고 본다. 푸틴 대통령도 “폴란드 국경수비대의 난민 과잉 진압은 긴장을 고조할 뿐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벨라루스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난민의 파라다이스’ 독일 

그렇다면 난민은 왜 이런 벨라루스의 농간에 손쉬운 희생양이 됐을까. 벨라루스까지 왔다면 왜 그냥 벨라루스에 머물지 않고 한사코 폴란드 입국을 시도하는 걸까.

난민의 최종 목적지는 벨라루스도, 폴란드도 아닌 독일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영도 하에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듯, 난민은 고향을 떠나 독일로 향한다는 얘기까지 있다. 난민들에게 축복받은 땅 ‘가나안’은 독일이다. 한 난민은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적지는 폴란드가 아니라 독일이다. 폴란드가 입국만 허락하면 아무 사고 없이 통과해서 독일로 향하겠다”고 했다.

지난 2017년 독일 베를린 난민보호소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셀카’를 찍은 시리아 난민 모다나미. 사진 트위터 캡처

독일이 ‘난민의 파라다이스’가 된 건 2015년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결단이 결정적이었다. 2015년은 중동·아프리카 국가들 내전이 겹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인 60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시기다. 유럽 해안은 시리아·이라크·아프간 출신 난민들로 홍역을 앓았다. 이해 4월엔 난민을 실은 배 5척이 난파돼 1200여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도 발생했다. 난민 문제를 두고 국가별로 분열했고, 자국민끼리도 갈라졌다. 그러던 2015년 8월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리는 해낼 수 있다”며 난민을 무제한으로 받겠다고 선언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결정이었다. 유럽 다른 나라들은 안도하며 환영했지만, 독일 내에선 독단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호르스트 제호퍼 기독사회당 대표는 2015년 9월 메르켈 총리의 이 결단에 대해 “난민의 전례 없는 유입은 독일을 오랫동안 괴롭힐 실수”라며 “독일이 곧 통제 불가능해질 긴급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자료: EU

이 결단 이후, 난민의 독일 망명 신청 건수는 2014년 20만2645건에서 2015년 47만6510건으로 크게 늘었다. 2016년엔 EU 전체 난민 망명 신청 건수인 126만920건 중 59%인 74만5160건이 독일 몫이었다. 2018년 12월까지 독일이 받은 난민은 180만여명에 이르렀다. 2015년 독일 출생아 수가 73만7575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2년 반 동안 태어난 사람 수와 맞먹는 인구가 유입됐다.

난민 위한 독일의 초스피드 제도 개혁 

난민이 안길 충격파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독일은 신속하게 행정과 제도를 개혁했다. 독일은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난민 관련 국가 시스템을 새로 쓰다시피 했다. 개혁의 세 가지 키워드는 속도, 통제, 통합이었다.

시리아 출신 10대 수영선수 유스라 마르디니는 작은 보트를 타고 내전 중인 고국을 떠났다. 보트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마르디니는 배를 밀고 끌며 그리스 해안까지 사력을 다해 헤엄쳤다. 그는 난민 신분을 인정받아 독일에 정착했다. 독일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파격적으로 개방된 난민 정책을 폈다. 2015~2016년 두 해 동안 독일을 향한 난민은 100만명이 넘는다. 사진은 2015년 11월 마르디니가 독일 베를린에서 연습 중인 모습. AP=연합뉴스

먼저 행정 절차를 일원화해 속도를 높였다. 국경수비대, 외무부, 경찰 등 관할에 따라 제각각이었던 망명 신청 절차를 통일했다. 망명신청 즉시 관할 시설에 수용해 관리하도록 했다.

두 번째로 무분별한 망명을 막기 위한 통제 조치를 시행했다. 망명신청자의 국적 중 내전 등 국가적 위기를 겪지 않는 ‘안전한 국가’ 출신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즉시 본국에 송환했다. 망명신청자 가족의 입국을 2년간 막았다. 망명신청자가 허가 없이 시설을 이동하는 것도 금했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범죄자나 비자만료 등의 이유로 추방 대상이 된 망명신청자는 사전 통보 없이 내쫓았다.

 

마지막으로 난민을 사회에 통합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했다. 망명신청자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독일어 교육을 제공했다. 저숙련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 10만개를 만들어 난민들의 적응을 도왔다. 난민들의 취업 허가와 직업 훈련의 폭을 넓혔고, 영주권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8년 10월 베를린에서 국가통합상 행사에 참석한 모습. 메르켈은 2015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대규모 난민의 독일 정착을 지원했다.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리도록 제도와 정책을 정비했다. 사진 EPA=연합뉴스

3년이 지난 2018년 독일 당국 조사에 따르면 난민의 72%가 제한 없이 독일에 취업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15~64세 난민 중 40%가 실제로 2019년 9월까지 일자리를 얻었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의 비율도 2015년 1%에서 2018년 44%로 크게 올라갔다.

여러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독일의 전무후무한 ‘난민 통합 실험’은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론도 난민에게 우호적이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폴리트바로메터의 2016~201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국민은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결정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정책연구기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2019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독일 이민자들이 국가 발전에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3%가 동의했고, 29%만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자료: Forschungsgruppe Wahlen

독일이 난민의 무제한 유입을 선택한 배경엔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흐름도 있다. 독일은 2004년 8252만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독일 정부는 이민자와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폈다. 고학력자·전문가 이민을 장려하는 한편,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는 ‘투 트랙’ 전략이었다. 독일의 생산가능인구는 2005년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다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2015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독일 연방통계국에 따르면 2020년 독일 인구의 26.7%인 2190만명이 이민자이거나 이민자 출신 가족에서 태어났다.

난민, 우리는 준비됐을까 

인류 역사상 초유의 저출산 문제를 겪는 우리도 독일의 이민·난민 정책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김현정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는 “여러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 단순한 가족ㆍ저출산 정책만으로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며 “이민 정책을 추진하되 단순한 국적 부여를 넘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으로 단계별 입법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대규모 이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기는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많다. 사진은 우리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및 직계 가족들이 지난 8월 26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모습. 정부는 이날 한국에 입국한 이들에게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자격을 부여하고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6주 가량 수용할 방침이다. 김상선 기자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난민에 대한 ‘비우호적’ 여론이 강한 편이다. 지난해 유엔난민기구 조사에서 난민 수용 거부 입장은 53%를 차지해 찬성 33%를 크게 앞섰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 난민 인정률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0~2020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3%로 24.6%인 독일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김현정 교수는 “전통적 민족국가인 독일도 처음부터 난민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며 “2000년대 이후 일관된 이민 친화 정책이 시행됐고 시민 의식이 성장하면서 차츰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외국인 근로자의 일시적 유입을 대상으로 이민정책을 펴고 있다. 다문화정책 역시 결혼이민여성 위주”라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다양성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서 이민·난민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정수경·이세영 PD, 김지현·이가진 인턴
이정봉중앙일보 기자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mo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