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도 털지 않고 먹는 귀한 맛 송이, 라면에 넣었더니[백종원의사계MDI]
입력 2021.11.20 07:30
연산군도 영조도 열광했던 그 맛
황금송이를 먹으러 양양으로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송이는 이미 천 년보다 더 전부터 귀한 별미의 대명사로 불려 왔다. 한자로 송이(松栮, 松茸)라고 보통 쓰고, 송심(松蕈) 혹은 송균(松菌)이라고도 쓴다. 소나무 뿌리 부근에 기생하는 버섯이며, 소나무와 무슨 혈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 환경 때문인지 은은한 솔 향기가 풍긴다. 소나무와 관련 있는 버섯 중에는 송로(松露)도 있는데, 요즘은 트러플을 송로라고 부르는 바람에 이름을 빼앗겼다. 전통적인 국산 송로버섯과 트러플(서양송로버섯이라고 불린다)은 전혀 다른 종이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송이를 유명하게 해 준 임금으로는 두 사람이 꼽힌다. 첫째는 영조. 어린 꿩고기, 전복, 고추장(당시까지 고추장은 아무나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과 함께 송이를 네 가지 별미라고 꼽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 어느 날엔가는 밥상에 송이가 올라오자 ‘전(殿)에 먼저 올렸느냐’고 물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전’이란 당시 궁중에서 영조의 아버지 숙종의 위패를 모셨던 선원전(璿源殿)을 말한다. 내관이 올리지 않았다고 하자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것을 전에도 올리지 않고 나에게 먼저 올렸다니, 이건 너희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도록 평소에 가르치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한탄했다는 기록도 있다.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상으로는 연산군이 한 수 위다. 연산군은 세 번이나 송이를 언급한 것으로 나오는데, 한번은 “빨리 진상하라”, 또 한 번은 “지방 수령들이 송이를 (자기들이 먹으려고) 감추고 진상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그러지 못하게 해라”, 그리고 마지막은 한술 더 떠서 “백운산에서 송이가 난다고 하니 입산금지구역으로 지정하라”고 아랫사람들을 다그치기까지 했다. 조선 땅에서 나는 송이는 혼자 다 먹어치우겠다는 심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은 한 중 일 3국 중에서도 좋은 송이가 나는 곳으로 유명했고, 중국 사신들이 돌아갈 때 주는 선물 목록에 송이가 빠진 적은 거의 없다.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송이가 귀한 것은 아무데서나 자라지도 않을뿐더러 균의 특성상 양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면서 날이 ‘적당히 차갑고, 적당히 습해야’ 쑥 올라온다.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너무 건조해도, 너무 비가 많이 와도 흉년이 든다. 그래서 매년 가을 추석 때가 제철이 된다. 뭘 좀 먹으러 다닌다는 사람들의 속설 중에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평과와는 무관하게 예나 지금이나 버섯 중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것은 송이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버섯 품종이 나올 때마다 양송이니, 새송이니 하는 이름이 붙지만 기본적으로 송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미식가들은 일제히 입을 모은다.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그래서 이날 송이를 먹으러 간 곳은 강원도 양양. 남대천 상류 계곡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예전부터 송이의 명산지로 꼽혔던 곳이라 양양에서 나는 1등급 송이는 ‘황금송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송이를 해 보자는 말을 한 다음, 〈백종원의 사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백종원 대표에게서 “무리하는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 1++ 한우를 가져와도, 영덕 대게로 탑을 쌓아도, 고창 덕자병어며 무안 자연산 전복을 가져다 바쳐도 끄덕도 않던 양반도 송이 앞에서는 눈빛이 달라졌다. “제작비 다 써서 이게 마지막 회 되는 거 아냐?” 아니라구요.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물론 시작하자마자 제작진은 야단을 맞았다. 송이도 대부분의 버섯과 마찬가지로 삿갓이 달렸는데, 그 삿갓이 다 펴지지 않아야 등급 판정을 받는다. 펴질락 말락 하는 것들 중에서 큰 것일수록 높은 판정을 받고, 삿갓이 다 펴진 것은 향도 덜하고 살도 힘이 없다는 이유로 파지로 분류된다(물론 파지도 일반 버섯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급이다). 그런데 그 파지를 다른 요리 재료들과 함께 물로 씻어 둔 것이 백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송이를 씻다니…. 무식해도 정도가 있지, 이러면 향이 날아가잖아.” 산삼과 마찬가지로 송이도 미식가들에겐 물로 씻는 것이 금물이다. 거죽의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먹어야 한다. 고운 흙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씹힐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송이 마니아들에게는 송이 맛의 일부다. 심지어 칼에서 나는 금속 냄새가 송이 향을 해친다는 이유로, 송이를 손질할 때에는 대나무 칼만을 써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 백 대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지, 칼로 아주 얇게 송이 겉껍질을 긁어 벗긴 뒤, 다시마와 함께 끓는 물을 부어 송이차를 만들었다.
그다음 속살은 가늘게 찢어 참기름에, 혹은 그냥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 송이를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연하디연한 송이 살은 입안에서 언제 들어왔냐 싶게 사라지지만, 아무튼 은은한 향과 함께 송이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으로 먹는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백 대표도 “참기름보다 소금만 찍는 게 더 향이 살아난다”고 감탄.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수백 년 동안 미식가들이 개발한 송이의 조리법은 한둘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석쇠에 송이를 굽고 쏘가리 회와 같이 먹는 것(丳灸松菌鱠溪鱖)의 즐거움을 노래한 바 있고, 다시마와 함께 송이 국물을 끓인 송이탕도 별미로 꼽힌다. 쌀 위에 얹어서 송이 밥을 지을 수도 있다. 중국 청나라의 대표적인 미식가 원매는 저서 〈수원식단(隨園食單)〉에서 “송이는 표고와 같이 볶는 것이 가장 좋고, 간장에 담가 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송이 장아찌라니. 아무래도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아 일단 〈백종원의 사계〉에서는 기름에 볶는 쪽을 선택했다. 차돌박이와 함께.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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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를 포함한 버섯류는 본래 기름에 잘 어울리지만, 어떤 기름에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는데 백 대표는 동물성 기름을 선택했다. 넓은 팬에 한우 차돌박이를 굽고, 거기서 나오는 기름에 송이를 지진다. 오래전 서울에서는 불고기 전골에 송이를 넣어 먹는 것을 대단한 호사로 여겼다고들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송이 향을 생각하면 고기의 양념은 적을수록 좋다. 질 좋은 차돌박이를 구워 송이를 싸 먹는데 어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물론 가성비를 따지면 절대 할 수 없는 호사다.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갑자기 쏟아진 우박을 맞으며 차돌박이와 송이를 굽던 백 대표는 흥이 과했는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얇게 썬 송이에 계란 물을 묻혀 송이전을 지진 데 이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평생 한 번 해 보고 싶었다”는 요리에 도전했다. 바로 송.이.라.면.
송이를 전문적으로 채취하는 분들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파지는 가끔씩 라면에 넣고 끓여 먹는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 중에 송이를 라면에 넣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백 대표는 우선 남은 차돌박이를 철판에 지진 뒤 라면에 추가해 농후한 지방 맛을 끌어올렸고, 끓기 시작한 라면에 파지 송이버섯(물로 씻었다고 제작진이 혼났던 바로 그것)을 잘게 썰어 넣었다. 파 마늘 고춧가루 등 향신료의 집합체인 라면 국물에 송이를 넣는다는 것은 송이 마니아들에게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송이 향은 라면 냄새보다 강했다. 그 뚫고 올라오는 송이의 기상은 왜 수천년간 송이가 아시아인의 로망이었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백종원의 사계 MDI. 송이버섯
물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 보겠냐’는 것이 제작진과 백 대표의 변명. 송이는 환상의 식재료라는 그 명성 그대로 훌륭한 맛과 향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럴 만한 돈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송이를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성비를 따지자면 그 돈으로 차돌박이와 등심 안심, 그리고 새송이 버섯을 사서 열번 더 구워 먹는 것이 압도적으로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고급 식재료란 항상 그런 것이지만, 어느 날 송이버섯의 양식 방법이 알려져 대량으로 송이를 생산하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맛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 인간의 간사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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