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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이기홍 칼럼]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고, 함께 단죄될 것

[이기홍 칼럼]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고, 함께 단죄될 것

이기홍 대기자 입력 2021-10-15 03:00수정 2021-10-15 05:08

 

檢, 대장동 어떤 결론 내도 국민 수용 힘들어
유일한 해법 특검 외면하면
중대진실 모른 채 대통령 선택하게 만드는
국민주권 오염 정권으로 기록될 것

이기홍 대기자

대장동 게이트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일까.

이를 파악하려면 현 상황을 청와대와 친문 핵심 그룹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문재인 정권 핵심 그룹은 올봄 거액을 들여 심층면접 여론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결과는 여당의 누가 나가도 윤석열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로 나왔다. 유시민까지 대안으로 넣어봤지만 큰 차이의 패배였다. 대선은 어차피 어려우니 여당 후보가 누가 되든 큰 상관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당권이라도 확실히 쥐자는 생각에서 4월 원내대표 선거 때 외연 확장 대신 친문 후보에게 표를 몰아 줬다.

그런데 윤석열이 정치 입문 후 실점만 거듭하는 걸 보며 이러면 대선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재명 대세론을 뒤집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화천대유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8월 31일 경기지역 인터넷 신문이었고 열흘 뒤 시사주간지가 크게 보도했다. 당시 필자가 만난 여론분석 전문가는 “너무 늦게 터졌다. 일주일만 일찍 터뜨렸어도…”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게 진행됐다. 이재명 후보가 15라운드에 휘청이다 종이 울려 공식 후보가 됐지만 퇴임 후 안전 보장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친문 핵심에게는 여전히 껄끄러운 존재다.

 

청와대는 많은 대장동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수상한 돈 흐름을 포착해 경찰에 알린 게 4월 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3철’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측근이며, 2018년 이재명과 경기지사 공천을 놓고 맞붙었다

청와대는 대장동을 봉합한 채 대선에 임하면 너무 타격이 클 테고, 그렇다고 끝까지 파헤치다 여당 후보 낙마 위기가 오면 대혼돈이 벌어질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 딜레마에서 어정쩡한 메시지가 나왔는데, 일단은 빨리 매듭짓고 여기서 벗어나자는 쪽에 무게중심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만약 철저한 진상·책임 규명을 목표로 설정했다면, “조금이라도 미진한 결과가 나오면 국민적 특검 여론에 부딪힐 테니 검경은 철저히 파헤치라”는 식으로 지시했어야 마땅하다. 그런 정도의 확약이 없는 상태에서 친여 성향 검찰·경찰 간부들이 미래 권력의 목에 칼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 현 정권에 불리한 사안들을 파헤친 검사들을 무더기로 좌천시킨데서도 볼 수 있듯,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인사권 칼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게 좌파권력의 속성임을 일선 검사들도 알고 있다.

일정한 수준에서 대장동을 매듭지으면서 하루빨리 제3의 거대한 모멘텀을 찾는 게 청와대가 모색하는 해법일 것이다. 남북 관계 등의 카드를 동원하려 할 것이다. 이재명도 그런 해법에 기댈 수밖에 없다. 대통령 도움 없이는 대장동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당내 지지를 유지해 가기 어려운 처지다. 임기 말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역학 관계가 과거와 달라지고 퇴임 후 안전 보장 약속도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문-이 면담이 이뤄진다면 그런 수준에서 딜이 이뤄질 수 있다.

이는 문 대통령도 자칫 공멸하는 길이다. 대장동 게이트로 이재명 본인은 무능과 부패의 양쪽 덫 사이에 걸렸고, 주변에 포진했던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지들의 수준도 드러났다. 정권이 대충 덮고 가려면 삼척동자의 눈에도 보이는 사건 본질을 호도해야 하는데, 이는 외연 확장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친문그룹이 후보 교체라는 극단적 상황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걸 알기에 이재명은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감으로 임하고 있다. 만약 후보 교체 상황까지 수사가 진행될 경우 정권은 윤석열 낙마도 함께 밀어붙일 것이다. 사건의 성격상 ‘고발 사주 의혹’도 결코 진상이 덮여서는 안 될 사안이다. 그런데 야권은 사즉생의 자세로 선거전에 임하고 있는지 지지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해법은 특검밖에 없다. 현 검찰을 통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놓는다 해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이 정말 결백하다면 특검이라는 도장을 통해 로켓을 얻게 될 것이다. 2014년 제정된 상설특검법을 적용하면 후보 추천 5일, 임명 3일, 준비 기간 20일 등 법이 허용한 최장 기한을 다 채울 만큼 느릿느릿 움직여도 28일 내에 본격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이번 달 내에 본격 수사 착수가 가능하고 연내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명료한 정도(正道)를 외면한 채, 대충 봉합해서 진실이 미궁인 채로 대선을 치르게 만든다면, 문 대통령은 국민 선택권을 오염시킨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실을 모른 채 치러진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반대편은 ‘가상 범죄자’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라는 임기 내내 갈가리 찢길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