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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한국아파트 60년]⑧ 강남불패의 서막 반포주공… ‘고자촌’으로 불린 사연은

[한국아파트 60년]⑧ 강남불패의 서막 반포주공… ‘고자촌’으로 불린 사연은

고성민 기자

입력 2021.09.02 10:44

 

[한국아파트 60년]

1958년. 한국산(産) 첫 아파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세워졌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전후(戰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로 지어진다. 고급 맨션이 유행하고 ‘건설 붐’으로 여의도·반포·잠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며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표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아파트에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기술까지 담긴 셈이다. [편집자주]

육순 나이에도 불임수술을 해야 하나요….

1977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주택관리과. 60대 이상 노인들의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해 7월 26일자 조선일보에 기록된 내용이다. 정부가 불임시술(정관수술 혹은 난관수술)을 받은 자에게 분양 우선권을 제공하는 청약제도를 도입하자 나타난 웃지 못할 진풍경이었다.

 

 

정부는 이해 청약제도를 역사상 최초로 도입했다. 1순위는 해외취업자로 불임시술을 받은 자, 2순위는 불임시술자, 3순위는 해외취업자였다. 외화벌이와 산아 제한이 정책 목표인 시대였다. 그러자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고령의 노인들이 건교부로 항의하고 나섰다. 손녀딸이 시집갈 나이인데, 청약을 위해 육순에 불임수술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부촌(富村)으로 손꼽히는 반포주공아파트 청약은 불임수술자들의 경쟁이었다. 반포주공이 한때 ‘고자촌’ 또는 ‘내시촌’이라고 불린 배경이다. 실제 1976년말 8만여명에 불과하던 영구 불임시술자는 1977년 8월말 14만여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반포주공은 ‘강남 불패’의 서막을 알린 단지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채소 재배하던 농지를 택지로… 복층형 평형의 이색 도입

반포주공은 대한주택공사가 건설한 최초의 대단지 주공아파트다. 반포주공1단지는 99개동 3786가구, 반포주공2단지는 46개동 1720가구, 반포주공3단지는 62개동 2400가구다. 1~3단지는 총 207동 7906가구에 달한다. 당시 국내 아파트 역사상 가장 대규모 단지로 지어졌다. 1973~1978년 입주했다.

1974년 10월 11일 촬영된 반포주공1단지 전경. 아파트 공사를 완료하고 주변 도로를 공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역사아카이브

반포동을 포함한 강남 전역은 1960년 이전까지 서울시민의 채소공급지였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가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된 날이 1963년이다. 허허벌판이던 이곳은 편입 이후에도 서울로 인식되지 못하고 한강 이남이라는 ‘남(南)서울’,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영동(永東)’이라 불렸다. 1970년 6월 19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이때도 서울의 중심은 단연 강북이었다. 인구비는 강북 76%·강남 24%, 공공기관과 학교, 산업시설 등의 분포 비율은 강북 82%·강남 18%로 강북이 우세했다.

이 농촌지대를 택지로 개발한다는 ‘남서울 개발 계획’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했다. ‘영동만은 개발이 조금 늦더라도 이상적인 도시로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한 고(故)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최초 1961년 화신백화점 창업주인 박흥식에게 강남 개발 계획을 지시했다. 재정 여건상 국비로 택지개발이 여의치 않자, 외자를 유치해 박흥식이 사기업으로서 추진하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토지확보와 자금 등 문제로 박흥신의 개발안은 1965년 무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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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촬영된 반포동 전경. /서울역사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선 도시 빈민과 주택 부족 문제가 심화하고 있었다. 전시(戰時)를 대비해 강남에 주거지를 둘 필요도 커지고 있었다. 이듬해 서울시는 시책사업으로 강남 개발의 닻을 올린다. 이로써 강남은 영동1지구(1968년 착수, 반포·서초·잠원·양재동 등), 영동2지구(1971년 착수, 압구정·논현·역삼동 등)로 나뉘어 개발된다.

영동지구의 땅을 대한주택공사가 매입해 처음으로 지은 단지가 바로 반포주공이다. 여의도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된 신도시였다. 아파트 특성을 살펴보면, 반포주공은 일부 평형을 복층형으로 구성하는 색다른 시도를 한 점이 눈에 띈다. 32평형을 상하로 트고 한 가구가 2층짜리 단독주택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공동구를 도입해 지상에 전선을 두지 않았고,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야외 테니스장과 수영장을 설치했다.

 

◇고자촌으로 불린 사연… 그때도 말 많았던 청약 우선권

반포주공아파트(반포 AID차관아파트) 추첨을 위해 청약자들이 줄을 선 모습. 1973년 7월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분양신청에 8404명이 몰려 5.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반포주공은 ‘고자촌’으로 한때 불렸다는 점도 특징이다. 불임시술자에게 우선 청약권을 주는 요상한 제도는 이후 20년이나 더 이어졌다. 정부는 1984년 단서 조항을 추가해 수술 연령을 만 44세로 제한하는 방법으로 혜택 대상자를 줄이고자 했다. 44세가 넘기 전 남녀 중 한 사람이 불임수술을 해야만 우선권을 준 것이다. 1986년에는 만 34세로 제한했고, 1997년이 돼서야 관련 조항을 삭제했다. 다자녀가구에 청약 우선권을 주는 요즘과 비교하면 시대상이 상당히 달랐던 셈이다. 1977년 9월 15일자 조선일보는 ‘아파트 분양에 불임 인파 반포 현장’ 기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선 순위자가 아닌 김상화(35·회사원)씨는 아침 일찍 신청장에 나왔다가 불임시술자가 예상외로 많자 다시 돌아가 부인을 모 국립병원에서 불임시술을 받도록 한 다음 그 수술증명을 받아와 신청했다. 박모(44) 부인은 5년 전에 일반 병원에서 불임시술을 받았으나 그 병원이 옮기고 없어 적십자 병원에서 진료비를 따로 내고 무난자 증명서를 받아오기도 했다. 임모(71·남) 노인은 할머니가 ‘피 한 방울이 아까운 처지에 무슨 수술이냐’고 말려 수술을 받지 못했다며 늙은 사람은 아파트에 살아보기도 힘들게 됐다고 고개를 떨구고 돌아갔다.

◇강남 불패의 서막, ‘교수아파트’ 별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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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24일 촬영된 영동신시가지 개발사업계획 조감도. /서울역사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반포주공은 1971년 ‘남서울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분양에 나섰다. 분양가는 32평형 기준으로 500만~594만원이었다. 고급아파트의 대명사인 이촌 한강맨션은 1969년 27평형을 340만원에 분양했으니, 반포주공 역시 중산층에게 공급된 최고급아파트 분양가였다.

반포주공1단지는 1971년 최초 분양 때 미분양이었지만, ‘2년 거치 5년 분할 상환’으로 초기 자금을 낮추곤 준공을 몇 달 앞둔 1973년 완판했다. 가구 규모가 크다 보니 여러 차례 나눠 분양을 진행했는데, 1973년 7월 청약 때는 입주신청자가 몰려 경쟁률이 5.6대 1에 달했다. 청약 경쟁의 시작이자 강남 불패의 서막이었다. 이해 32평형의 프리미엄(웃돈)이 180만~200만원에 달했고, 국내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한 부정 청약이 신고됐다. 1974년 2월 9일자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서울지검 감찰부는 8일 과학기술처 산하 중앙전자계산소 업무분석과장 김동효(43) 분석담당관, 김영승(37) 프로그래머, 정여진(37)씨 등 3명을 작년 10월 20일 반포AID보증차관아파트(반포주공1단지) 22평형 150가구분에 대한 2차 추첨 때 이원선씨 등 입주희망자 10명으로부터 15만~30만원을 받고 부정 당첨시킨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미리 컴퓨터에 명령해 돈을 준 입주 희망자의 번호가 당첨되도록 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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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촬영된 반포주공1단지 전경.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반포주공1단지 102~107동 6개동 170가구는 서울대학교 ‘교수 아파트’로 특별분양한 것도 특징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해외 인재 영입을 위해 42평형 18가구와 32평형 5가구를 사택으로 매입해 쓰기도 했다. 작가 피천득, 조각가 윤영자, 김신조 목사, 1983년 아웅산 테러로 사망한 서석준 전 부총리, 박영수 전 서울시장, 오원철 전 경제수석, 연예인 류시원, 싸이, 이미연, 오영실 등도 반포주공1단지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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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촬영된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반포주공2단지 재건축) 전경.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반포주공은 준공 40여년이 지나며 차례로 재건축을 추진했다. 반포주공2단지는 래미안퍼스티지로, 반포주공3단지는 반포자이로 2009년 각각 준공됐다. 반포주공1단지는 1·2·4주구와 3주구로 나뉘어 각각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1·2·4주구는 현대건설이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로 재건축하며, 현재 이주를 진행 중이다. 3주구도 시공사를 삼성물산으로 선정하고 연내 이주를 앞두고 있다. 두 단지가 신축되면 반포주공아파트는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면, 반포주공1단지 전용 106㎡는 지난 8월 9일 45억5000만원에, 전용 140㎡는 지난 7월 55억원에 각각 거래됐다. 부동산 상승기인데다 재건축 사업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집값이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다. 반포주공2단지가 재건축된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는 지난 7월 36억원에 거래돼 역시 서울 최고가 단지 중 하나로 꼽힌다.

반포주공1단지에서 만난 주민(조합원) 강정식(77)씨는 43세이던 1987년부터 30년 이상 반포주공에 거주해 왔다고 말했다. 당시 7000만원을 주고 집을 샀다고 한다. 강씨는 “당시에도 압구정을 제외하면 반포가 서울에서 가장 비싼 동네였다”면서 “학군이 좋다 보니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이 되면 8학군을 찾아 강남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역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 온 뒤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재건축이 진행돼 건물이 철거되다 보니 할 수 없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는데, 고층 아파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오는 10월 방배동 아파트로 이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