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갑자기 저런 선수가…” 놀라운 18세, 노는 물이 달랐다
모든 걸 거스른 수영천재 황선우
입력 2021.07.30 03:00
황선우(18)는 수영 천재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남용되는 요즘이지만 일본 도쿄 현장에서 본 황선우는 단연 천재가 맞았다. 이번 올림픽이 첫 메이저 성인 대회 출전인 열여덟 청춘은 혼자 “빨리 해보자” 결심하고 물살을 휘저었다. 오른팔에 힘을 더 주는 ‘로핑 영법’도 그가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65년만에 아시아 선수가 자유형 100m 결선에… 황선우 5위 - 65년 동안 아시아 선수에게 닫혀 있었던 문을 한국의 18세 고교생이 열었다. 황선우(서울체고)가 29일 열린 도쿄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선에서 5위를 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 출신으로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일본의 다니 아쓰시가 7위를 한 이후 65년 만에 결선 무대를 밟았다. 사진은 그가 경기 전 몸을 풀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연합뉴스
결과는 도쿄 올림픽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7위(1분45초26), 그리고 29일 열린 100m 결선 5위(47초82). 아시아 선수가 가장 취약하다는 자유형에서 월드클래스 전문가의 지도 없이 스스로 이런 성적을 냈다. 특히 아시아 선수의 남자 자유형 100m 결선 진출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의 다니 아쓰시(일본·당시 7위) 이후 65년 만에 처음이다. 그는 예선을 치르면서 200m 한국 신기록(1분44초62), 100m 아시아 신기록(47초56)도 세웠다.
◇황선우가 만든 풍경
황선우는 ‘노 메달’이지만 해외 취재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다들 “갑자기 어디서 저런 선수가 나왔느냐”는 반응이었다. 1984 LA올림픽부터 수영을 담당했다는 스티브 푸터맨 미국 CBS 기자는 “세계적인 자유형 선수는 내가 30년 전부터 꿰고 있는데 ‘황’이란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며 “케일럽 드레슬(미국·100m 금메달) 근육량의 절반도 안 돼 보이는 선수가 어떻게 저런 수영을 하는지 놀랍다”고 했다. 넬슨 몽포르 프랑스 텔레비지옹 기자는 “태생적으로 단거리 수영은 아시아 선수가 불리하지만 ‘황’은 다른 것 같다. 잠영 실력만 더 보완한다면 2024 파리 올림픽을 기대해도 좋겠다. 오늘부터 그의 이름을 꼭 기억해두겠다”고 했다.
황선우 덕분에 한국 취재진 대우도 달라졌다. 당초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한국 기자 티켓은 단 1장 배정됐는데, 황선우가 활약하자 믹스트존 담당자가 “황에 한해서” 문을 열었다. 100m 결선 이후엔 한국 기자 13명이 그의 소감을 들었다. 믹스트존을 달구는 황선우를 본 드레슬이 지나가면서 찡긋 눈인사를 보냈다. “(황선우는)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입니다. 제가 열여덟 때 낸 기록보다 더 빨라요.”
◇천재는 이유를 모른다
황선우는 하얀 도화지처럼 도쿄올림픽에 나갔다. 3m 깊이 수영장에서 하루 여러 번 예선과 결선을 치르는 메이저 국제 대회를 뛴 것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나란히 헤엄친 것도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6번 레인에서 뛴 자유형 100m 결선은 5번 케일럽 드레슬(미국·2019 세계수영선수권 6관왕·금메달)과 7번 카일 찰머스(호주·2016 리우 올림픽 우승·은메달) 사이에서 뛰었는데 기죽기는커녕 “즐겁고 재밌었다”고 생글 웃었다.
전략도 그가 직접 세웠다. 한국 수영의 신기원을 열어젖히는 선수에게 자세한 조언을 해줄 국내 지도자는 없었다. 자유형 200m를 뛸 땐 “초반부터 먼저 치고 나가자”고 스스로 계획했다. 경험없이 오버 페이스가 되면서 마지막 25m를 남겨두고 순위가 밀렸다. 자유형 100m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생각 없이 온 힘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뛰고 나왔어요.”
그에게 수영 잘하는 비결을 묻자 “비결요…?”라며 한동안 말을 못 이었다. “음…. 물 타는 능력이 저한테 있는 것 같아요.” 도쿄 올림픽 내내 빠른 출발 반응 속도를 보였고, 특히 100m 결선(0.58초)에선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한 케일럽 드레슬(미국·0.60초)보다도 반응 속도가 빨랐는데 대답은 같았다. “음…. 타고난 것 같아요.”
◇수영에 관해선 황소고집
겉보기엔 그저 싱그러운 청춘이지만, 황선우는 수영에 관해서라면 벌써부터 확고한 신념과 고집이 있다. 주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입고 먹는 것, 운동 방식 등 수영에 관련한 모든 것을 직접 고르고 판단한다. 유명 브랜드 제품을 후원받아 쓰는 대부분 선수와는 달리 그는 직접 구매한 미국 브랜드 티어(TYR)만 고집한다. 경기 때 입는 검은색 얼룩 바탕 반신 수영복과 모자는 단종됐는데, 황선우가 해외 직구를 왕창 해뒀다. 수영복이 물을 먹어서 적어도 한 달마다 고가의 새 제품으로 바꿔 입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있지만 그는 아랑곳 않는다.
호리호리한 몸매에서도 고집이 드러난다. 자유형 단거리 선수들은 폭발적 스피드를 내기 위해 속근을 단련해 몸매가 우락부락 근육질이다. 반면 황선우는 중장거리 선수처럼 매끄럽고 기다란 잔근육 덩어리다. 그의 체격은 키 186㎝, 체중 72㎏, 발 크기 285㎜. 최근 주변에서 “근육을 키우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이 많았지만 “이번 올림픽은 내 식대로 해보고 오겠다”며 모두 거절했다. 올림픽 경험을 해보고서야 “웨이트 트레이닝을 조금 늘리면 더 빠른 기록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황선우는 그저 수영이 좋아서 한다. 수영 동호회 출신인 부모를 따라 다섯 살 때 처음 수영을 접한 그는 중2 때 “수영을 맘껏 하고 싶어서” 일반 중학교에서 서울체중으로 전학을 왔다. 단거리 자유형은 아시아인에게 불리하지 않냐고 물으면 “100m는 빨라서 재밌고 200m도 재밌는데 왜 안 되느냐”고 반문한다. 한국 수영 선수에게 박태환과의 비교는 숙명이지만 황선우는 “(박태환과) 같이 언급되는 것은 너무 좋은데 나는 나로 기억되고 싶다”고 눈을 빛낸다. 그런 거침없는 매력에 반한 CJ가 가장 먼저 후원사로 나섰고, 나이키가 최근 그와 글로벌 후원 계약을 맺었다.
어떤 질문에도 초연했던 천재는 좋아하는 걸그룹 질문을 받고서야 수줍은 소년의 얼굴을 했다. 그는 제니(블랙핑크)와 예지(ITZY)의 팬인데 최근 두 스타가 인스타그램에서 직접 응원 메시지를 보내왔다. “너무 행복하다. 손이 떨린다”고 하는 발그레한 미소를 보면서 떠오른 질문. 한국 수영계는 황선우라는 천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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