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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태평로] 이런 대법원장 공관이 왜 필요한가

[태평로] 이런 대법원장 공관이 왜 필요한가

대법원장·헌재소장 다 공관 거주
둘 합친 역할하는 美대법원장은 별도 공관 없이 자택서 출퇴근
한·미 중 어느 쪽이 정상인가?

최원규 사회부장

입력 2021.07.26 03:00

 

작년 7월 미국 언론에 존 로버츠 미국 대법원장이 메릴랜드주 자기 집 부근에서 넘어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었지만, 정작 필자의 관심을 끈 건 그가 다쳤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우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합친 역할을 한다. 미 대법원장이 갖는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우리 대법원장보다 훨씬 크다. 미 대통령은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한다. 그런 대법원장이 공관 없이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 법조인들에게 물었더니 로버츠 대법원장은 2005년 취임 이후 줄곧 그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미 정부가 대법원장 예우에 인색하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 우리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따로 공관을 두고 있다. 어느 쪽이 정상인가.

김명수 대법원장과 김 대법원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관.

대법원장 공관이 꼭 필요하다면 못 둘 것도 없다. 공관을 두는 이유는 안전과 외빈 접대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공관에 초청한 외국인은 한 명도 없었고, 연회 대부분은 판사들을 초청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법원장은 ‘외교’를 하는 자리도 아니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외국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는 뉴스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외빈 접대가 필요하다면 대법원 청사 내 공관을 활용하면 되고, 그럴 공간도 있다.

안전 문제의 경우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 2018년 판결에 불만을 품은 70대 남성이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던 김 대법원장의 승용차에 화염병을 던졌다. 뒷바퀴에 불이 붙었지만 금세 진화됐고,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치 않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공관 형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또 우리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이 미 대법원장보다 더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문제가 있어도 공관을 잘 쓴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대법원장 공관은 국가 소유다. 공적인 일에 쓰라고 나라가 매년 2억원 넘는 공관 유지비를 대고 있다. 하지만 사적(私的)으로 쓴다는 잡음만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이 되자마자 공관을 고급스럽게 꾸몄고, 손주들 놀이 시설도 만들었다. 서울 강남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법조인 아들 부부를 1년 3개월 동안 공관에서 공짜로 살게 했다. 그사이 변호사인 며느리는 대법원장 공관에서 자신이 다니는 한진그룹 계열사 법무팀 동료들과 만찬을 했다. 공관 전속 요리사가 스페인식 돼지고기를 만찬 메뉴로 내놨다. 다 세금으로 한 일이다.

공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김 대법원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진 공관 만찬’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이 사안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할 말도 없을 것이다. 2017년엔 김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공관에서 판사들과 가진 만찬에서 한 판사에게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일도 있었다. 전임 대법원장 때 요직에 있었던 판사였다. 공관을 판사들 ‘편 가르기’ 장소로 이용한 것이다. 대체 이런 공관을 왜 둬야 하나.

그러면 상당수 도지사나 시장들도 관사를 두고 있는 마당에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 공관을 없애는 건 예우나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항변이 나올 수 있다. 사실 도지사나 시장 관사도 왜 필요한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굳이 그들과 형평을 따지겠다면 공관을 제대로 이용한다는 전제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처럼 사용(私用)할 거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