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화장실 유구에서 나온 기생충알(편충). [사진제공=문화재청]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 땅에서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에 달하는 좁고 긴 사각 석조 구덩이가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8일 이 석조 구덩이가 물을 흘려보내 분변을 발효시키는 현대식 정화조와 유사한 대형 화장실 유구(遺構)라고 밝혔다. 조선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배치도'(1888~1890년)와 '궁궐지'(1904년) 등의 기록으로 화장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발굴 유구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g당 1만8000건)과 오이·가지·들깨 씨앗이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발굴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1865년 4월부터 1868년 7월까지 경복궁 중건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와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을 종합한 결과,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 때 만들어져서 20여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복궁배치도'와 '궁궐지', '북궐도형'(1907년) 등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 화장실은 최대 75.5칸으로 궁궐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돼 있었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궁 권역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규모와 구조.[사진제공=문화재청]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만들어져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으며 북쪽 입수구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한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를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되어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부패조, 침전조, 여과조로 구성된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조사후 전경.[사진제공=문화재청]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 규모는 4∼5칸으로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 전체 용적량(16.22㎥)으로 보면 하루 150여명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물의 유입과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해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다.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은 "150여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다고 밝혔다. 중국의 경우에는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자세한 처리 방식은 알려진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경복궁 화장실 유구의 발굴은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 시대 궁궐 생활사 복원에 도움이 줄 것으로 보인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발굴조사 결과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12일부터 문화재청 유튜브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