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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나란히 묻힌 백제 귀족은 누구였을까…도굴 안된 무덤서 인골·금동귀걸이 나와

나란히 묻힌 백제 귀족은 누구였을까…도굴 안된 무덤서 인골·금동귀걸이 나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응평리 돌방무덤 발굴조사

    • 전지현 기자
    • 입력 : 2021.07.02 18:19:01   수정 : 2021.07.02 1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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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골 일부. [사진제공 = 문화재청]도굴되지 않은 백제 무덤에서 인골(두개골) 2개와 금동 귀걸이 등이 나왔다.

    2일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충남 부여군 응평리 일원에서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을 발견하고 지난 6월부터 긴급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인골과 금동 귀걸이, 관고리를 포함한 목관 재료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응평리 일원은 백제 사비도읍기(538∼660) 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사비도성의 동쪽 외곽 거점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발견된 고분은 토지 경지 정리 과정에서 천장석이 일부 훼손되면서 그 모습이 드러났다. 내부에서 인골을 비롯한 관재(棺材)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고, 도굴 흔적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 부여군, 토지소유자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됐다.

    조사 결과 고분은 굴식돌방무덤으로 전체적인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구조는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과 연도(羨道·고분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墓道·무덤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로 이뤄졌으며 현실 오른쪽에 연도가 위치한다. 현실 규모는 길이 220cm, 너비 110cm, 높이 115cm이며 단면 형태는 육각형으로 백제 사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석실묘 형태다. 고분은 잘 다듬은 대형 판석(쪼갠 돌)을 이용해 축조됐다.


    금동귀걸이 일부. [사진제공 = 문화재청]이번에 출토된 금동 귀걸이는 피장자의 위계와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귀족무덤으로 추정되는 부여 능안골고분군, 염창리고분군 등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무덤길 토층에서 두 차례 흙을 파낸 흔적이 확인돼 한 명을 먼저 매장하고 뒤이어 다른 한 명의 시신을 안치하는 추가장(追加葬)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인골은 두개골 2점을 비롯해 엉덩뼈와 다리뼈, 치아 등이 출토됐다. 수습된 인골에 대해서는 고고학,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등 관련 전문가와 공동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피장자의 성별, 나이, 사망시점 등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백제 시대 사람의 모습을 복원할 계획이다. 또한 출토된 목관 부속구를 기반으로 목관을 복원하고 입관, 운구 등과 같은 매장습속도 규명할 예정이다.


    현실 내부 인골 및 유물 노출 현황. [사진제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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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사단은 고분 조성 시기가 600년 전후로 추정되며, 규모·축조 방식·유물 등을 보면 백제 귀족이 묻힌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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