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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설왕설래] 김오수 아이러니

[설왕설래] 김오수 아이러니

 

입력 : 2021-05-28 22:28:06 수정 : 2021-05-31 08:57:15

 

다세대주택에 도둑이 들었다. 안방 장롱과 서랍을 뒤지고는 집주인이 아끼던 금반지와 돈을 몽땅 털어갔다. 여러 집의 물건을 훔치던 도둑은 결국 꼬리가 밟히고 말았다. 골목길 CCTV에 얼굴이 찍히는 바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를 받던 도둑은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서민의 애환을 직접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였다”며 범죄행위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막힌 억설이 일어나는 곳이 문재인정부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우리 차관”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지난해 4월 법무차관에서 퇴임한 그는 최근까지 법무법인 화현에서 고문변호사를 맡았다. 그가 수임한 22건의 사건 중에는 라임·옵티머스 관련이 5건에 이른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은 고객 5000여명이 라임자산운용 등의 펀드 사기로 2조원의 피해를 본 대형 범죄사건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김 후보자는 “8개월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국민의 애환을 가까이서 경험했다”고 우겼다. 매월 수천만원씩 자문료를 받고서 가해자 측을 변호한 행위가 국민 애환을 접한 값진 경험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피해자들은 밤잠도 자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같은 날 박범계 법무장관은 야당 당직자의 목을 조른 피고 신분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김 후보자의 논리를 빌면 박 장관의 행위는 폭력의 위험성을 경험한 기회일 뿐이다. 이런 궤변이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시대정신과 균형감각’을 꼽았다. 반칙 인물을 법무부와 검찰의 수장으로 세우는 대통령에게서 시대정신과 균형감각을 느끼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이 한 말을 절대 믿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으면 당황한다.”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샤를 드골의 경구다.

조국 사태를 지켜본 민중가수 안치환은 지난해 7월 신곡 ‘아이러니’를 발표했다. 진보의 위선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노랫말은 거짓 진보에 고하는 작별 인사로 끝난다. “잘 가라! 기회주의자여.”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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