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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김대중 칼럼] ‘김정은’만 보이는 문재인 안보·외교

[김대중 칼럼] ‘김정은’만 보이는 문재인 안보·외교

취임 석 달 바이든에게 이것 하라 저것 하라 주문 쏟아낸 文
동맹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북한에만 올인
대책 없는 대북 간절함 무슨 일 몰고 올지 두렵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입력 2021.04.27 03:20 | 수정 2021.04.27 03:20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한 뒤 서로 포옹하고 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대한민국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의 안보와 외교는 곧바로 생명줄이다. 먹고사는 경제는 나쁘다가도 좋아지고 좋다가도 나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보·외교는 한번 잘못하면 나라 망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게 중대한 대북·대미·대일·대중의 안보·외교가 문재인 좌파 정권 치하에서 회복할 수 없는 퇴보의 길로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5월 말 방미를 앞두고 지난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주문(注文)인지 촉구인지를 했다. 정돈(停頓) 상태에 있는 미·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 북한과 하루빨리 마주 앉을 것을 권하고 중국과는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그 내용이 적절한 것인지는 차치하고 지금 우리가, 그것도 출범한 지 3개월 남짓한 미국의 새 대통령에게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주문할 위치에 있는가? 바이든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실제로 그런 것들이 성사될 여지는 있는 것인지를 계산하고 한 소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 취임 후 첫 한·미 정상 회동에 앞선 인터뷰인 만큼 양국 간의 협력, 즉 동맹 문제, 백신 문제, 경제 협력 문제, 주한미군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예의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그런 것은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북한과 김정은에게만 올인하고 있다. 상대국 대통령에게, 그것도 대면(對面) 회담에서라면 몰라도 사전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이것저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거나 주문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다. 외교 문제를 밑에서 협의·토론해서 올리는 보텀스 업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히고 있는 바이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교를 국가 간의 거래로 보는 시각에서 보더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인도·태평양 안보 기구인 쿼드 참여는 거절하면서 북한 이익을 대변하는 요구를 나열하는 것은 기브 앤드 테이크에도 어긋난다.

문 대통령은 그런 무례한 언급 속에서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언급하면서 “변죽만 울릴 뿐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폄하한 것이다. 재임 3년 8개월 동안 9차례나 만났고 전화 통화도 25번 이상 한 사이에 이제 트럼프가 권좌에서 물러났다고 ‘변죽’ 운운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인간성을 엿보게 한다. 트럼프는 즉각 반발했다. 문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약했다”며,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어쩌면 트럼프가 바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서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모욕을 당하고 있다. ‘삶은 소대가리’라는 표현은 대통령을 넘어 우리 국민 모두를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미 접근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조력이 필요했던 김정은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쪽 대통령’의 무력(無力)을 실감하면서 이제는 ‘문재인’을 용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일체의 대남 접촉도 끊고 오로지 미사일 시험 발사로 미국과 간접 대화(?)를 유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용도 폐기 상황을 되돌려 보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과의 관계는 대한민국의 외교가 발돋움한 이래 이렇게 악화일로로 내리막을 걸은 적이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친일 배격을 정권 유지의 한 축으로 삼고 있는 좌파 정권에서 한일 관계의 복원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지도자라면 국민을 감정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때로는 미래를 보고 국민 감정에 역행할 때도 있는 법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말해 과거 조선 시대의 종속 관계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중국은 한국의 외교장관을 오라 가라 하고, 한·미 관계의 단절을 부추기며 경제 교류를 미끼로 한국을 자기들 발밑에 깔고 있는 듯이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중국에 아부해서 북한을 움직여볼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한다면 북한이 그 갈등을 유리하게 활용하거나 이용하려 할 수도 있다”며 미·중 갈등도 ‘북한’과 연관 짓고 있다. 그는 각종 행사에서 중국을 치켜세우며 시진핑의 방한을 그렇게도 앙망하고 있지만 시진핑은 변죽만 울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안보·외교는 최악의 길로 가고 있다.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길로 가고 있음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그렇게 개무시당하면서도 북한만을 읊조리고 있는 문 대통령의 ‘대북(對北) 간절함’이 또 무슨 일을 몰고 올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