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야인 시절인 2018년 인터뷰 공개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2021.04.25 06:08 | 수정 2021.04.25 06:08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 종료 후 자신의 대승을 예상하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지난 10년을 회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조선DB
오세훈 서울시장은 10년 전 자진사퇴한 서울시장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수차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에서 승리했을 때 그는 울먹이며 지난 10년 동안 느낀 ‘죄책감’을 얘기했다.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가 끝나고 나서 “오세훈이 박영선을 21.3%p 차로 이긴다”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오 시장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지난 10년을 회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야인(野人) 오세훈’은 2018년 11월 12일, 《월간조선》 과의 인터뷰에서 평소와 달리 격정적인 어조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사진=월간조선
그 장면을 보면서 2018년 11월 당시 ‘야인(野人) 오세훈’을 인터뷰한 일이 떠올랐다. 당시 그는 격정적인 어조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내가 소상하게 다 얘기할 수 없다. 정치를 하는 이상 이런 얘기는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오 시장이 밝힌 ‘후임 시장 박원순’에 대한 울분은 ‘비보도’ 약속에 묶여 한동안 밝힐 수 없었지만, 그가 서울시장에 다시 취임한 지금은 이전과 상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에 오 시장 측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후임 시장 박원순’에 대한 ‘인간 오세훈’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등을 공개한다.
“박원순 취임 후 서울시에 일하는 분위기 사라져”
-본인의 시장 재임 시절에 서울시가 확 달라졌다고 자평합니까.
“그건 뭐 자평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서울시민의 평가가 중요한 거죠. 잠깐만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면서) 이게 참 재밌는 게...이게 얼마 전에 누가 나한테 보낸 문자입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오세훈과 박원순 시정 수행 긍정률) 결과인데요.”
-75(오세훈) 대 25(박원순)네요?
“변변치 않게 보일까 봐, 이런 거 절대 누구한테 보여주질 않는데요. 좌우간, 그러니까 무슨 얘기 하다가...”
-서울시가 확 바뀌었다...
“자화자찬하는 게 아니라 나는 공무원들이 제일 잘 안다고 봐요. 공무원들은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원순이) 시민은 속일 수 있지만,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은 못 속여요. 박 시장이 처음에는 공무원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알았다고.”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 요즘으로 따지면 ‘적폐 청산’식으로 자신이 추진했던 사업들을 보류·취소하는 걸 볼 때 그 심정은 어땠습니까.
“생병이 날 정도로 아프지. 그때 병도 나고. 내가 정말 10개월 동안 배 아파서 낳은 자식 같은 정책들이, 다 애착이 가고 정말 자부심이 느껴지는 그 정책들이 새로 들어온 시장에 의해 별 고민도 없이 다 뒤집히고, 취소되고, 무효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 심정이 어땠겠어요? 뭐, 반성을 떠나서 정말 내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던 게 사실이죠.”
-그때 당시에 식사는 제대로 했습니까.
“식사를 제대로 하고를 떠나서, 디스크도 오고, 위장병도 오고, 건강이 망가져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서울시를 위해 정말 이 사업은 계속 추진했어야 한다는 게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서울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투자환경 개선에 예산을 배정하고 추진해야죠. 그런데 그게 ‘표’가 되는 일은 아니에요. 서울에 들어오는 외국인, 서울에 꼭 유치하고 싶은 외국 기업이 있는데 주거비가 비싸요. 그럼 그 사람들한테는 싼값에 임대주택 줘도 돼요. 제가 양재동에 외국인 전용 임대주택을 지었어요. 그거 박원순 시장이 들어와서는 홀라당 가난한 사람한테 주겠다고 해서 분양했어요. 시민 입장에서는 ‘아니, 왜 우리 세금으로 외국인들 싼값에 살라고 집을 지어줘?’라고 반감을 갖겠죠. ‘표’만 따지면요, 박 시장이 옳은 겁니다.”
-‘표’가 안 되는 일을 왜 했습니까.
“이건 서울 경제를 돌리는 데 진짜 도움이 되는, 도시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정책이에요. 서울을 ‘투자 적격지’로 만들기 위해 이런 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했으니까 도시경쟁력 순위가 세계 27위에서 8~9위로 올라선 것 아니에요? 당시 서울시와 서울시민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객관적으로 한번 돌아보세요. 당시 서울시는 세계 최초로 4년 연속 유엔 공공행정상(공공행정 분야 국제 최고 권위 상)을 수상했어요. 서울시 공무원들이 신바람 나서 일하는 분위기였어요. 그게 박 시장이 들어오면서 다 없어진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박원순과의 논쟁 여부 놓고 참모들과 매일 싸워”
-박원순 시장은 2011년 당시에 “이명박(李明博)·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만든 서울은 두 사람의 대권 꿈이 커가는 지난 10년”이라고 깎아내렸는데요.
“그건 자기 기준이죠. 자기 속마음이고요.”
-박 시장은 “오세훈 시장 시절 서울시 재정이 ‘파탄’ 났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 그랬다고 생각합니까. (기자 주: 당시 서울시는 재정자립도, 부채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건전한 재정 상태 유지)
“전혀 그렇지 않죠. 내가 시장을 할 때는 마곡지구를 비롯한 곳곳에 조 단위 돈이 투입되는 시점이었고, 박 시장 때는 이미 택지 개발이 끝나고 자금을 전부 회수하는 단계였어요. 그걸로 ‘전임 시장은 빚을 냈는데, 나는 빚을 갚았다’고 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죠.”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습니까. 인내심이 강한 모양입니다.
“혀를 깨물고 참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내가 매일같이 참모들이랑 싸웠어. ‘입장을 내자’고 하면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참으세요. 지도자는 참아야 합니다. 지금 싸우면 똑같은 사람 됩니다. 그런 걸로 일일이 논쟁하면 격 떨어집니다. 언젠가 다 밝혀집니다’라고 말렸어요. 나는 ‘그때마다 반박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주워 담지 못한다’고 했어요. 백날 그렇게 내부적으로 의견 충돌을 했어요. 나는 절대 그렇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사람이라서 못 참을 때도 있죠.”
오세훈은 왜 2018년 서울시장 선거를 지켜보기만 했을까?
2011년 8월 23일, 소위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루 앞두고 한나라당 서울시당 조찬 간담회에 어색한 표정으로 동석한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조선DB
-‘박원순 시정’에 문제점이 많다고 느끼면서 왜 지난 서울시장 선거(2018년 6월)에 출마하지 않았습니까. 선거 전에 홍준표(洪準杓) 대표가 “오세훈은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하면서 “나와달라”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아는데, 왜 안 나왔습니까?
“그때 마치 대단한 제안이 있었던 것처럼 질문들 하고, 저는 또 적당히 맞춰서 답해 오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제안 다운 제안’이 없었습니다. 홍준표 대표와 통화 한 번 한 적이 없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요. ‘같이 일하자’는 전화 한 통 없었는데, 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 홍 대표하고 싸우자는 얘기밖에 안 되니까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김○○ 의원이 내게 와서 그러는 거예요. ‘홍 대표는 당신에 대해서 아직 떨떠름하다’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면, 박 시장을 이길 자신은 있었습니까.
“단적으로 얘기해서, 내가 박원순한테 지고 싶겠어요? 내가 한 번 붙어서 다 깨버려? 지금까지 엉터리로 한 거 백일하에 다 드러내? 토론하면 그거 다 나올 텐데? 내가 왜 그게 하고 싶지 않았겠느냐고. 그런데 지난 선거는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에요. 피눈물이 나요. 그걸 참고 있으려니 오죽하겠어요. 역사는 승패만 기록합니다. 그 사이에 누가 토론을 잘했다, 이런 건 지고 나면 다 소용없어요. 내가 그때 언제 깨달았느냐?”
-언제 깨달았습니까.
“정세균 의장한테 지고 나서 깨달은 거야. 자기들(새누리당)이 무슨 ‘옥새 나르샤’하고 ‘진박 감별’하고 이렇게 해서 졌는데, 나중에 ‘오세훈도 종로에서 정세균한테 지더라’ ‘자기 행보는 안 하고 밖에 나돌아다니면서 지원유세하다가 졌다’고 하더란 말이야. 아니, 그럼 서울시 선대본부장을 왜 맡겨? 나는 그 의무를 하려고 나가다가 반응이 안 좋아서 사흘 만에 그만두고 내 선거에 집중했는데, 결과적으로 역사에 남는 것은 ‘오만해서 졌다’는 거야. 역사는 그렇게 기록돼요. 내가 그렇게 기록되고 싶겠어요?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입 제안(2018년 서울시장 선거)을 왜 비겁하게 피했느냐?’고 한다는 말이야. 할 수 없어. ‘내가 나가고 싶어 죽을 뻔했다’ ‘내가 팔 걷어붙이고 얼마나 박원순하고 일전(一戰)을 벌이고 싶었겠느냐’, 이걸 다 얘기할 수도 없고. 아마 자서전 쓰거나 죽을 때는 하겠지만, 정치를 하는 이상 이런 얘기는 참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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