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나용 기자
- 승인 2016.12.28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화려한 모습 때문 과거 사람들 시상 떠올리기도
무덤가 심은 이유 정확하지 않지만 어두운 산담 환하게 밝히는 ‘장식’ 설득력 있어
▲ 제주에서는 배롱나무 꽃이 곱고 오래 피기 때문에 무덤가에 심어 조상을 즐겁게 하려고 했다. 사진은 산담에 핀 배롱나무.
▲배롱나무, 가장 오래도록 피는 꽃
배롱나무는 여름 내내 제주의 무덤가에 환하게 핀다. 꽃은 붉은색에서부터 보라색, 분홍색까지 다양하다. 중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문헌 기록에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쯤이라고 한다. 한자명은 자미화(紫微花), 홍미(紅微), 백일홍(百日紅)이다. 붉은 꽃이 여러 겹으로 피면서 백일 동안 핀다는 의미이다. 중국에서의 이름의 기원은 당나라 장안의 자미성에서 많이 심었기 때문에 ‘자미화’라 했다.
즉 자미화는 백일홍(百日紅)을 달리 이른 말인데, 당(唐)나라 때 이 나무를 중서성에 많이 심었던 관계로 중서성을 자미성(紫薇省)이라 이름했고, 백낙천(白樂天)이 일찍이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있을 때 지은 자미화 시에 “황혼에 홀로 앉았으니 누가 내 벗이 될꼬, 자미화만이 자미랑과 서로 마주하였네(獨坐黃昏誰是伴 紫薇花對紫薇郞).”라고 한 데서 온 말이라고 한다. 여기서 자미랑은 곧 중서사인 벼슬의 자신을 말한다.
그러나 강희안은 ‘자미화와 백일홍은 다르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이름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때문이라고 했다. 후에 백일홍을 소리 나는 대로 ‘배기롱’ 나무로 부르다가 지금의 ‘배롱나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옛사람들은 여름에 붉은색으로 찬란한 배롱나무를 보며 시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루 앞에 한 그루 백일홍이 피었는데(堂前一樹紫薇花)
쓸쓸할 사 그윽한 빛 시골집과 흡사하다(寂寞幽光似野家)
번갈아서 피고 지며 백일을 끌어가는데(半悴半榮延百日)
백 가닥의 가지마다 백 개 가지 또 뻗었네(百條仍有百杈枒)
‘산림경제-양화(養花)’조에, ‘자미화(紫薇花)는 흔히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른다. 간지러운 것을 참지 못해 나뭇가지 사이를 손가락으로 긁으면 가지와 잎이 다 움직인다.’라고 했다. 또 배롱나무 잎은 밋밋하고 매끄러운 살처럼 보인다. ‘격물총화(格物叢花)’에 ‘나무 둥치는 반들반들하고 한 길 남짓 큰다. 꽃잎은 붉고(紫) 쪼글쪼글한데 자잘한 꽃들이 모여 주먹만 한 송이를 이룬다. 꽃받침은 밀랍 빛깔이고 꽃은 뾰족뾰족하며 줄기는 붉은(赤) 빛깔인데 잎은 마주난다. 음력 6월에 꽃이 피기 시작하여 대사(代謝)를 거듭하며 9월까지 계속 핀다’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자미화를 기르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 영남(嶺南) 지방 해안 근처 여러 고을에서 이 꽃을 많이 심는데, 비단처럼 아름답고 이슬 꽃처럼 곱게 온 마당을 비춰주어 그 어느 것보다도 유려(流麗)하다. 그러나 영북(嶺北) 지방에서는 기온이 너무 차가워 얼어 죽는 것이 십중팔구이고, 다행히 호사가(好事家)의 보살핌을 받아도 겨우 죽는 것만을 면하는 것이 열 나무 중에 한둘에 불과하다. 이슬비가 올 때 가지를 잘라 꽂아 그늘진 곳에 두어 두면 곧 산다. 새 가지는 해장죽(海竹) 등으로 붙잡아 매어 주고 백양류 꼴로 수형(樹形)을 가다듬으면 아름답다. 갈무리할 때는 너무 덥게 하지 말고 마르지 않게 물을 주어야 한다.’
조선 말기 제주에 유배 왔던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은 신축년 이재수가 일으킨 민란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인물이다. 그는 ‘운주당에 올라 자미화를 감상하고 느낀 바가 있어 짓다(登運籌堂賞紫薇花有感而作)’라는 시에서, 자미화를 보면서 자신의 신세를 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펄펄 눈발 날려 술자리에 떨어지니(絳雪紛紛落醉中)
이십 년 세월 돌아보며 옛 인연 슬퍼하네(回頭廿載悵前因)
승평관에서 단란했던 날(昇平館裏團欒日)
영탑사에서 여위어가던 사람(靈塔寺中枯槁人)
지금도 떠도는 신세 귀밑머리 희었고(漂泊猶今霜鬢冷)
곳곳에 이슬 머금은 꽃봉오리 새롭구나(繁華到處露英新)
정 있어 무정한 사물 바라보다(有情還對無情物)
나무 맴돌며 나직이 읊다가 홀로 상심하네(繞樹微吟獨愴神)
▲ 무덤에 핀 배롱나무.
▲배롱나무를 무덤에 심은 까닭
그렇다면 배롱나무는 왜 무덤에 심을까. 제주에서는 베롱나무를 무덤에 심는 나무라고 하여 집안에 심지 않는다. 여름 내내 화려한 꽃을 오래도록 피우는 베롱나무는 꽃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통상적인 꽃의 수명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통념을 깨버린다. 다른 꽃나무들은 배롱나무에 비하면 그저 짧은 봄밤을 지내는 것과 같다. 배롱나무를 일러 혹자는 귀신 쫓는 나무라고도 하고, 또 부모님의 피와 살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나무의 생김새나 색깔이 그리 보이는 까닭이다. 세간에서 “열흘 붉은 꽃이 없다”라는 말은 어떤 권력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인생의 무상함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왜 무덤에 유독 이토록 아름다운 꽃나무를 심을까’라는 것에 대해서는 속 시원하게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인대학이나 마을의 노인당을 방문하면서 수소문해 다닌 결과 원로들에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말은 “무덤이 보기 좋아지라고!” 라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덤 장식이라는 말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육지는 큰 정원이나 들, 숲 등에 일찍부터 배롱나무를 심어 정원과 숲의 아취(雅趣)를 더했다. 정원수로 최상의 꽃나무였던 것이다. 중국 또한 자미성에 배롱나무를 많이 심은 결과 자미화라는 이름을 얻었지 않았나. 그런데 유독 제주에서만 배롱나무를 무덤가에 심는다는 것은 다른 지방의 장소나 내용을 생각해도 전혀 연관을 지을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후손들이 배롱나무의 꽃이 곱고 오래 피니 어두운 무덤을 환하게 밝혀 조상을 즐겁게 하려는 효성으로 그 꽃을 무덤에 심은 것이다. 즉 그 꽃은 오래도록 피어 볼수록 보기도 좋아 너나없이 무덤가에 심게 된 것이다. 배롱나무는 산담 안에 좌우 한 그루씩이나, 또는 전후좌우로 각 한그루씩 심기도 하고, 또 무덤 밖 산담 귀퉁이에, 또는 산담 앞 밖 중앙에 한 그루를 심기도 한다.
이와 같이 심은 배롱나무는 음력 6월에서 9월까지 약 석 달 동안 찬란한 붉은 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100일 동안 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에 해당한다. 조경은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인공적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새로 만들고 꾸밀 수 있게 되어서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제주 산담 가의 배롱나무는 조경의 원리를 넘어서는 자연미가 있다. 산담을 만들고 배롱나무를 무덤에 심는다는 것은 양택의 조경원리를 음택에도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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