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02 00:00 수정 : 2021-04-02 23:34
경북 고령 블루베리농가 이모씨가 불법인 줄 모르고 묘목을 자가 증식해 키운 블루베리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일부 과수농 분쟁 휘말려
묘목업체와 합의 원하지만 요구 금액 수천만원 달해
농촌지역 관행적 삽목 빈번
법 어기면 징역 또는 벌금형 ‘품종보호권’ 홍보·교육 시급
경북 고령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이모씨(65)는 최근 한 묘목업체로부터 내용증명을 송달받고 깜짝 놀랐다. ‘무단으로 자가 증식한 블루베리 묘목을 전량 폐기하라’는 내용이었다. 꺾꽂이(삽목)를 통해 자가 증식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씨는 3년 전 해당 업체로부터 <수지블루> 블루베리 묘목을 한그루당 9000원에 600그루가량 구입했다. 하지만 불법인지도 모르고 360그루 정도를 삽목해 자가 증식한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이씨는 “당시 주변 농가와 다른 묘목업체들이 ‘묘목을 판매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삽목해 증식해도 괜찮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이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대화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려 했지만 해당 업체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씨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내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씨는 “내용증명을 받고서야 자가 증식이 불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면서 “3년간 공들여 키운 나무들을 차마 베어낼 수 없어 묘목업체와의 합의를 원하지만 요구하는 합의금이 너무나 과도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업체와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씨는 현재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을 이씨 스스로도 갖고 있다. 다만 농사가 걱정이다. 블루베리 수확철이 도래했는데도 삽목해 키운 나무의 열매는 손도 댈 수 없어서다.
이씨는 “혹시나 무단 증식 나무에서 수확한 블루베리를 판매했다가 문제가 커질까봐 아예 해당 나무들에서는 수확을 포기했다”며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돼 마음 편히 농사를 짓고 싶다”고 전했다.
이씨의 사례처럼 과수농가들이 묘목 유통 관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묘목을 자가 증식하면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종자산업법과 식물신품종보호법 등에 따르면 그간 관행적으로 해왔던 농가의 영리추구용 묘목 삽목은 엄연한 불법이다. 특히 식물신품종보호법 제131조에는 품종보호권 또는 전용실시권을 침해한 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리 강화는 요즘의 시대적 흐름. 따라서 국내에서도 육성자의 품종보호권을 엄격하게 지켜주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칫 묘목값보다 비싼 합의금을 치르거나 소송을 겪을 수도 있는 만큼 농가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문제는 아직 농가에서는 품종보호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데 있다. 묘목업계에 따르면 농가들의 묘목 무단 증식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권오영 <엔비>사과농가협의회장(충남 예산능금농협 조합장)은 “<엔비> 사과는 공급업체와 계약을 맺은 충남 예산, 충북 보은, 강원 홍천 등에서만 재배가 가능하지만 무단 증식을 통해 허가된 지역 밖에서 재배하는 농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지적재산권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는 농가가 많은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에 업계에서는 관련 법·내용에 대해 농가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묘목업체 관계자는 “블루베리뿐 아니라 사과·복숭아 등 품종 등록된 과수묘목에 대한 농가의 무단 증식이 아직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면서 “대부분의 농가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삽목을 하는 만큼 품종보호권에 대한 농가 계도·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산묘목조합 관계자는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가소비용이나 실험·연구용 삽목만 품종보호권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무단 증식한 묘목뿐 아니라 수확물, 수확물을 활용한 가공품을 판매하는 것도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농가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상철 한국과수민간육종가협회장은 “십여년 공들여 육종한 묘목을 무단 증식하고 판매하는 행위는 정말 잘못된 일”이라면서 “이제는 농가들도 품종보호 묘목은 엄연한 사적 재산이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김동욱, 예산=서륜, 청주=유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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