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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춘추시대 청백리이자 정책의 달인, 한국 공직자를 꾸짖다

  • 장박원
  • 입력 : 2021.03.31 06:01

▲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가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부동산 부패청산'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이충우 기자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61] 부동산 문제로 문재인정부와 공직 사회가 융단 폭격을 받고 있습니다. LH 땅 투기 의혹이 불씨를 키웠지만 근본 원인은 정책 실패에 있습니다. 현실과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고 이념에 따라 정책을 집행한 것이 집값 급등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한 것이지요. 여기에 공직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져 청렴성마저 의심을 받으면서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만약 초장왕을 보좌하던 손숙오가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한국을 방문한다면 이런 정치인과 공직자들을 심하게 꾸짖었을 겁니다.

손숙오는 청렴했고 순리에 따라 정책을 펼친 공직자였습니다. 백성을 불편하게 만들면 왕의 명령도 바꾸도록 했습니다. 오랜 기간 재상을 지냈으면서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집에 재산이 거의 없었습니다. 몇 가지 일화가 이를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순리에 따르는 정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초장왕은 수레바퀴의 표준을 바꿀 것을 명합니다. 초나라 백성들이 타고 다니는 수레가 너무 낮아 말이 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죠. 이에 왕은 바퀴의 규격을 더 크게 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손숙오에게 명령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바퀴를 교체하라고 하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게 뻔했습니다. 수레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도 심했겠죠.

손숙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럽게 큰 수레바퀴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성문과 관청 문지방 턱을 높인 것입니다. 관리들은 손숙오가 왜 이런 지시를 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장왕이 목표로 했던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지방 턱을 높이자 낮은 수레로는 관청이나 성을 드나들기 불편했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수레바퀴를 큰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큰 저항 없이 정책 목표를 달성했던 것이지요.

초장왕이 이번에는 화폐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초나라 화폐가 너무 가볍다는 것이었죠. 왕은 시장을 관리하는 관리를 불러 화폐를 좀 더 크고 무겁게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관리에게 보고를 받는 손숙오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화폐를 바꾸는 것은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성들의 생업에도 상당한 지장을 줄 게 분명했습니다.

손숙오는 왕에게 달려가 명령을 거두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지금 화폐를 바꾸면 백성들의 불편이 극심해지고 장사를 그만두는 이들도 생길 겁니다. 이 일은 쉽게 결정하고 실행할 사안이 아닙니다." 손숙오의 논리적인 설득에 왕은 화폐 개혁을 포기합니다. 시장의 혼란을 막으려고 왕의 명령을 원점으로 돌린 것입니다.

청백리로서 손숙오의 이야기는 더 감동을 전합니다.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에는 우맹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궁정 배우로 연기와 노래, 춤을 잘 추고 유머와 언변도 뛰어났습니다. 손숙오는 그런 그를 아꼈고 잘 대우해 주었습니다. 우맹은 손숙오가 세상을 떠난 뒤 우연하게 충격적인 현실을 접합니다. 손숙오의 아들이 겨우 먹고살 정도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손숙오의 아들은 땔나무를 팔아 끼니를 잇고 있었습니다. 우맹은 자신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손숙오 말투와 행동을 연습한 뒤 초장왕이 보는 앞에서 연극을 합니다. 우맹은 손숙오가 진짜 살아 돌아온 것처럼 똑같이 연기했고 왕을 비롯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우맹을 진짜 손숙오라고 생각해 왕은 그를 다시 재상에 앉히려고 합니다. 그러자 손숙오로 분장한 우맹은 말합니다. "집에 가서 부인에게 물어보고 와서 답하겠습니다."

얼마 뒤 초장왕은 우맹에게 묻습니다. "부인이 뭐라고 하던가?" 이 질문에 대한 우맹의 답변이 압권입니다. "재상에 오르지 말라고 하더군요. 초나라에서 재상은 할 일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손숙오 같은 사람이 재상이 돼 초나라 왕을 패자로 만들었는데도 그 아들은 손바닥만 한 땅도 없어 땔나무로 끼니를 잇고 있다더군요. 그래서 다시 손숙오처럼 살라고 하면 못살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끝낸 뒤 우맹은 청백리 손숙오를 기리는 노래 한 곡조를 뽑습니다.

우맹을 보고 있던 초장왕은 자신이 소홀했던 것에 사과하고 손숙오의 아들에게 땅을 하사합니다. 손숙오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죽기 전에 아들에게 왕이 땅을 주면 가장 척박한 지역을 청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좋은 땅을 차지하면 다른 귀족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죠. 한두 세대는 좋겠지만 멸문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멀리 내다본 손숙오의 혜안 덕에 그의 가문은 10대가 넘도록 번창했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손숙오처럼 청렴하면서 순리에 따라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공직자가 있고, 이런 인재를 중하게 쓴 초장왕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국가가 됐을 겁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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