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 기자 입력 2021-03-30 03:00수정 2021-03-30 03:46
2018년 7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문민화 가속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국방개혁2.0을 발표하는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 뉴스1
신규진 기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말 한마디가 올해 초 군 내 장교와 부사관 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지난해 12월 주임원사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을 쓰는 문화는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하자 일부 원사들은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것.
육군 수장에 대한 주임원사들의 사상 초유의 진정 제기는 지난달 인권위 기각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해당 발언의 맥락이 군 구성원의 책임과 예의를 강조하고 계급 존중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라 인격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것. 실제 남 총장은 당시 회의에서 “경험이 적은 상관을 무시하면 안 된다”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해야 한다” 등의 지극히 상식적인 말들을 했다. 물론 논란이 커졌을 땐 그가 이런 말도 했다는 건 주목받지 못했다.
사실 군만큼 다양한 출신이 한데 뒤섞여 있는 조직도 흔치 않다. 그만큼 조직 내에 구성원들의 갈등이나 반목이 생겨나기도 쉽다. 그간 표출되지 않았던 갈등도 어떤 계기만 있으면 곧바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십상이다. 이번 장교와 부사관 간 논란을 지켜본 많은 군 관계자들은 “출신 간 갈등은 이뿐만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문민화 기조와 맞물려 군인과 공무원의 관계에도 우리가 주목해봐야 하는 이유다.
오래전부터 국방부에선 군인과 공무원 간 서열 문제와 이에 따른 직위의 ‘비대칭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쉽게 말해, 동일한 예우를 받는데도 공무원의 직위가 군인보다 높다는 것. 둘 간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한 현행 법령은 없으나 그간 군 예규에 따라 서열이나 호봉 등을 따질 때 소령은 4급(서기관) 대우를 받아왔다. 그런데 국방부에선 각 부서의 과장을 공무원 3급(부이사관)이나 4급(서기관)이, 군인 중엔 대령이 맡고 있다. 3, 4급 예우를 받는 중령, 소령이 4급 과장 밑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에 따르면 현재 국방부 내 과장급 직위는 87개. 이 중 공무원 3급과 4급은 각각 13명과 54명, 대령은 20명이다. 2017년 671명이었던 국방부 내 공무원 수는 고위공무원 직위를 포함해 지난해 697명으로 늘었다. 군인들 사이에선 공무원보다 직위가 낮은 문제나 국방부 내 핵심 보직에 진출할 기회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공무원들은 이런 기형적 구조가 군 계급의 상향 평준화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한다. 전두환 군부 정권 시절 군인의 예우가 과도하게 격상됐지만 문민정부 등을 거치며 ‘정상화’가 이뤄져 이제는 그런 예우를 주장하는 게 맞지 않다는 것. 다만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많은 영관급 장교들이 상대적으로 군인의 지위가 낮게 평가되는 데 대해 극도의 반발심리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방부 내에 군인과 공무원이 한데 모여 있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대우의 차별도 생겨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국방부는 정부 방침에 따라 출퇴근 시차제와 집약 근무형 탄력근무제를 실시했다.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평일 중 하루를 쉬되 1일 10시간씩 주 4일을 근무하는 방식인데, 대상은 공무원에 한정됐다. 당연히 주 52시간 적용을 받지 않는 군인들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대다수 군인은 공무원이 상대적으로 군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소령 기준으로 10년 넘게 야전 등 현장에서 군 시스템을 몸소 체득한 군인과 공무원의 업무 이해도가 같을 수 있겠냐는 논리다. “군 용어 등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공무원이 수두룩해 업무에 불편이 많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국방부 장교는 “현장 경험에 대한 군인과 공무원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본 교육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출신에 따른 갈등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다만 구성원들의 이 같은 불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갈등과 반목이 깊이 뿌리내리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야 갈등이 커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남 총장의 말 한마디가 해묵은 장교-부사관 갈등에 불을 지핀 일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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