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3.24 03:00
영화 <올드 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는 15년간 사설 감옥에 갇혀 살다 풀려난다. 그는 자신이 왜 그곳에 오랫동안 감금됐는지 몰랐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매일 먹은 만두의 냄새였다. 그는 만두 냄새를 쫓아 중국집을 돌며 그를 감금했던 원수를 찾아 나선다. 그의 추적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종성 논설위원
오대수는 자신이 감금됐던 이유를 알아냈다. 그가 학교에 다닐 때 퍼트린 소문 때문이었다. 치기 어린 시절에 장남 삼아 자신이 보았던 장면을 떠들고 다녔다. 남동생과 누나 간의 사랑 장면이었다. 소문으로 인해 누나는 자살했고 동생은 복수를 결심했다. 오대수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떠벌린 말이었지만 남동생에게는 파탄의 시작이었다. 오대수는 그런 말을 한 것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개의 기억이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선배에게 들은 말이다. 군대에서 하도 심하게 괴롭힘을 당해 복수하고 싶던 상관이 있었다. 그를 사회에서 만나 “왜 그렇게 괴롭혔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관은 오히려 거꾸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선배를 특별하게 아껴주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사건을 사람이 똑같이 기억하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샥터는 <기억의 7가지 죄악>에서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의 일곱 가지 속성을 분석했다. 그것은 일시성, 방심, 차폐, 오귀인(誤歸因·misattribution), 피암시성, 편향, 집착이다. 사람은 종종 남이 볼 때 사소한 일도 중요하게 기억하며(집착), 지금의 삶이 고달프다면 자신의 삶에서도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일들을 더 잘 기억해내는 경향(편향)이 있다. 사람의 뇌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은 휘발성이 있으며(일시성),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모르고(방심), 막상 기억하려면 생각이 나지 않고(차폐), 실제로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하고(오귀인), 보았다고 암시를 받으면 본 것으로 기억(피암시성)한다.
그리고 때론 자신의 기억을 왜곡하기도 한다. 잘 알려진 인생연구(1937년 하버드 남학생 대상 사례연구)에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1946년 사례연구 대상자 가운데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34%가 “적군의 포탄 아래에 놓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25%는 “적군을 죽여본 적이 있다”고 했다. 42년이 지난 1988년 똑같은 질문을 했다. “포탄 아래에 놓여봤다”는 40%로 늘었고, “죽여본 적이 있다”는 14%로 줄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기억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 벌어진 일이 소환되고 있다. 수년에서 수십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학교에 다닐 때 심한 폭력을 당했다거나 성적인 괴롭힘, 따돌림으로 고생했다는 내용이다. 가해자들이 성공해서 방송에 나오는 것을 참기 힘들다고 했다. 과거의 끔찍했던 일들을 상기시켜 괴롭다는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대응도 다양하다. 반성문을 쓰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법정투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나도 교사가 학생을, 선배가 후배를, 동료가 동료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했던 시절을 살았다. 존경하던 선생님이 학생에게 도를 넘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격하며 경악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서 사회생활까지 수십년을 살았다. 기억은 상대적이다. 대수롭지 않다고 여긴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상처일 수 있다.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가 소환되는 일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거가 다르게 기억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벌어졌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일이라는 이유로 ‘누가 알겠냐’며 모른 체하는 것은 잘못이고, 더 나쁜 행동은 과거의 기억을 조작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주변인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유도하거나 매수하는 일들이다.
지난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여비서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2차 가해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해는 계속됐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한 단체는 “여비서가 박 전 시장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기억은 주관적인 것이다. 시장과 비서 사이에서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다. 주변인들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주변의 반대 증언이 수백 수천 건이 쌓인다 해도 당사자의 증언에 비하면 한 줌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을 조작하려는 모든 시도는 2차 가해일 뿐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240300045&code=990100#csidxd8371833e1563b8a55c503a3f2bcb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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