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21-03-01 03:00수정 2021-03-01 03:05
불평등의 상징이 된 한국인의 부동산
일관성-신뢰 잃은 정부 정책 백약 무효
‘집’에 대한 국민의 복잡한 심리 읽어
유연한 대책 내놓아야 시장 안정될 것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 집값을 잡으려고 후속 조치를 내놓을수록 계속 뛴다. 부동산 3법, 임대차 3법 등 백약이 무효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와 있지만 각종 규제 속에서도 시장에 뛰어드는 참여자들의 심리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집은 개인의 생활양식과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며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집은 거주 공간이자 개인의 생애주기마다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곳이며 가족 경제의 최후의 보루로 기능한다. 인생에서의 성장과 성취를 집과 더불어 하며, 따라서 집은 우리에게 저마다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경제적, 상징적 결정체가 된다.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9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집을 살 때 어디에 사는지, 어떤 이웃과 함께 살게 될 것인지, 투자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 근린 환경과 교육 여건은 어떠한지, 노후의 안정은 가능할지 모두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특히 투자를 통한 경제적 이득 창출 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부동산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집=거주’라는 이해 방식에 묶여 규제를 통한 규범적 강요만을 할 것이 아니라 집에 대한 한국인들의 심리를 해부해 적절한 대응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집은 거주지이자 자산이다. 여기에서 출발해야 해결 가능성이 열린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정책 변화와 시장의 움직임을 관찰해 대응하고 그 결과를 학습한 합리적 행위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사실 주거 정의를 실현하려는 문재인 정권의 의도도 수긍이 간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아파트는 상향 이동의 도구이자 성공의 상징이 되었고, 이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의 내러티브는 국가 발전이 곧 개인과 가족의 풍요로 이어진다는 신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파트’라는 중산층 유토피아에 진입하지 못한 대다수의 아우성이 은폐되어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파트의 높은 벽은 사회 불평등을 심화하고 지역 간 교육격차를 유발하며 계층 간 이동을 막는 좌절과 절망의 벽이 되었다.
아쉬운 점은 문재인 정부도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주택 문제에 대해 수요를 잠재울 막대한 공급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투기 수요를 근절하고,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며,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규제와 더불어 공급 확대를 유일한 해법으로 내세우지만, 가격은 계속 천정부지다. 국민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정부의 정책이 계속 실패하는 것을 목격하며 정책에 대한 불신을 체화하고, 가격 상승의 신념을 갖는다. 학습효과다. 가격 상승의 신념 강화는 결과적으로 여건만 된다면 주택시장 참여를 결정하는 유인으로 작동한다. 또한 국민은 가격 폭등의 물결에 동참하지 않으면 벼락 거지가 되는 현실을 봐왔다. 당장 뛰어들지 않으면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는 강한 규제 속에서도 아파트 구매 열풍이 이어지게 만든다. 편승효과다. 집을 소유와 자산으로 이해하는 국민이 빨라야 5년 뒤에야 시작될 공급이 두려워 투자를 멈출 리 없다.
정권마다 달라지는 부동산정책도 문제다. 국민은 현재의 기조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현 정부도 이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전면적으로 뒤집은 바 있다. 자신들은 쉽게 바꾸면서 다음 정권은 이 기조를 계승하리란 가정은 얼마나 무모한가? 5년 뒤에도 현재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겠는가? 부동산시장은 기본적으로 심리로 작동한다. 상술한 것처럼 시장 참여자들은 학습 경험과 기대를 바탕으로,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마음으로 부동산만 한 게 없다고 여긴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과세, 물량 공급이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라고 여기겠지만 국민이 그 취지에 공감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현재 내놓는 어떤 정책도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과감하고 단순한 공급 확대 정책은 오히려 자산 불평등의 심화와 주변 집값의 동반 상승이라는 레벨링 효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여러 번 배운 바 있다. 공급만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투명하고 일관적인 부동산정책을 통해 학습효과와 편승효과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집에 부여하는 국민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국민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보자.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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