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박원
- 입력 : 2020.12:18. 18:07
▲ 문화재청이 보물 지정을 예고한 김천 직지사 대웅전. 그 현판 글씨를 이완용(李完用.1858-1926)이 썼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사진=연합뉴스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46] 몹쓸 짓을 하고서도 천수를 누린 인간을 보면 "과연 정의가 있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매국노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완용만 해도 그렇죠. 그는 명석했고 명필이었으며 시대 흐름을 간파하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습니다. 1905년 일본이 러시아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 것을 보고 그는 철저한 친일파로 변신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는 미국과 러시아 등 힘 있는 외세를 기웃거렸는데 일본이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쪽으로 갈아탄 것입니다.
그 후 그의 친일 행각은 잘 알려진 바 입니다.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을 주도했고 1907년엔 내각총리대신으로 있으면서 고종의 강제양위와 정미7조약 체결, 한국군대 강제해산 등에 개입했습니다. 의병을 잡아 중벌을 내리는가 하면 각종 이권을 일본에 넘기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매국 행각의 절정은 1910년 국권을 일본에 넘긴 경술국치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그 대가로 그는 부와 명예를 누리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불의와 패륜을 저질렸는데도 행복하게 살다가 천수를 누린 사람은 이완용뿐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인간들은 아주 많았죠. 사마천은 '사기'를 저술하다가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어진 사람이었던 백이와 숙제는 굶어죽었고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 안회는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는데 잔악한 놈인 도척은 평생 유복한 삶을 살았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래도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복을 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천도(天道)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기원전 634년 위나라 군주에 오른 위성공도 요지경 세상을 일깨우는 인물입니다. 그는 무능했고 무정했으며 무책임한 인간이었습니다. 불의했으며 패륜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랬는데도 그는 35년간 위나라를 통치하고 자기의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폐위되거나 살해당할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변 사람과 하늘이 도와 주었습니다.
그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중원의 패자였던 진문공이 초나라의 공격을 받고 있는 송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송나라에 빨리 도착하려면 위나라에 길을 빌려야 했는데 위성공은 진나라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다른 군주였다면 진나라 요청을 수용했을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보복을 당할 것이고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게 확실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위성공은 제 기분대로 판단했습니다. 아버지 위문공이 천하를 유랑하던 진문공을 박대했었는데 똑같은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진문공은 일단 송나라를 구한 뒤 위나라를 쳤습니다.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었는데도 위성공은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위기에 직면하자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생 숙무에게 권력을 넘기고 다른 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정세 파악에 어두웠던 무능의 결과였습니다. 숙무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은 잠시 권좌를 맡았을 뿐 주인은 형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위성공이 귀국하면 언제든지 자리를 넘길 생각이었고, 이 뜻을 신하들에게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위성공은 천견이라는 간신의 말만 듣고 숙무를 의심합니다. 사람을 위나라로 보내 염탐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제거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결국 숙무를 억울하게 죽게 만듭니다. 위성공이 위나라로 다시 들어올 때 천견이 먼저 숙무의 집으로 가서 그를 살해했던 것입니다. 대부 원훤은 숙무가 권력에 욕심이 없고 형이 돌아오면 즉시 군주 자리를 넘기겠다는 진정성을 전하려고 위성공에게 아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위성공은 원훤의 아들을 간첩으로 몰아 죽였습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무도한 인간이었죠.
숙무를 죽인 일로 위성공은 다시 제후들 앞에 불려 갔고 주나라로 끌려가 감금됐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원훤은 새로 군주를 세웠습니다. 진문공은 사람을 보내 은밀하게 위성공을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주나라에서 위성공을 보좌했던 영무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때 죽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저지른 악행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권선징악'에 딱 맞는 스토리가 될 뻔 했습니다. 그러나 독살 시도를 영무가 먼저 알게 됐습니다. 그는 진문공의 독살 명령을 받고 온 의원을 매수해 독을 약하게 타 달라고 합니다. 그 덕에 위성공은 목숨을 부지했고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대부 원훤 등 반대파를 제거하고 권좌에 오릅니다. 실제 역사는 이렇게 '권선징악'과 정반대로 결말로 끝납니다.
지금도 정의가 불의에 밀리고 선행이 패륜에 가려지는 일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 눈 속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의 티끌을 보고 그것을 빼는 게 정의라고 외치는 위선자가 부지기수입니다. 부모에게 더 많은 상속을 받으려고 친형제를 정신과 병원에 넣는 인간 말종도 있죠. 이런 현실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길게 보면 세상이 요지경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그대로 남아 결국 평가를 받게 됩니다. 천수를 누리고 죽은 이완용과 위성공은 역사의 심판대에서 불의와 패륜을 저지른 형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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