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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12월에 만난 풍경들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0.12.05 03:00

 

 

 

 

 

지난 10월 서울 중구 한 식당 입구에 코로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 식당 주인이 그동안 감사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내 붙였다./뉴시스

한 친구가 올해는 ‘살았다’기보다 ‘견뎠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계획대로 된 것 하나 없이 한 해가 가는데, 전 국민에게 한 살씩 빼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중년의 그는 실직 중이다. 많은 브랜드를 성공시키고 승승장구하던 그의 입에서 결국 자신은 브랜드가 되지 못했다는 말이 나왔다. 명함이 사라지니 인맥도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했다.

영화 ‘풀몬티’의 뜻은 몽땅 벗은 사람들이다. 영국 대처 총리 시절, 철강 산업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중년 남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여성 전용 클럽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이야기이다.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입은 옷을 스스로 벗어야 했던 남자들 이야기는 유쾌하게 그려지지만, 모든 장면에서 슬픔이 함께 밀려온다.

코로나 시대, 직장인도 어렵지만 자영업은 정말 어렵다. 요즘 거리 풍경이 더 그렇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번화한 상가를 며칠 만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임대 게시판이 붙어있는 곳들은 봤지만, 최근처럼 여섯 가게에 연달아 폐업과 임대 표지가 붙어있는 건 처음이었다. 자주 가던 식당 앞에서 “그동안 아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폐업 인사와 마주쳤다. 인테리어를 뜯어낸 식당 내부는 사라진 주인의 가슴속처럼 보였고, 유리창엔 바람에 흔들리는 폐업 인사말이 간신히 붙어있었다. 이 추운 겨울, 그 많던 사장은 어디로 간 것일까?

늦은 밤 번화가에서 뛰어오며 길을 묻는 남자들은 십중팔구 대리 기사다. 언젠가 만난 대리 기사는 양복을 입고 일하면 불편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존중받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취객을 상대할 때도 양복을 입고 있으면 갑옷을 두른 듯 무장이 된다는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귀천을 나누려 하는 누군가에게 양복은 최소한의 대항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힘내라고 말하기도 미안한 세상이다. 하지만 견디느라 수고한 우리 모두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다. 참으로 기이했던 올해의 달력이 이제 한 장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