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다스르기

여의도 떠나는 금배지들…불출마한 안영근 의원의 요즘

여의도 떠나는 금배지들…불출마한 안영근 의원의 요즘

드럼 치고 색소폰 불고…"벌써 정치가 낯설게 느껴져"
직장인 밴드 결성… 매일 아침 연습실 셔터 열며 하루 시작 정치인 한 명도 안 만나… 미술품 유통회사에 일자리 구해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0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황성혜 기자 coby0729@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종합문화예술회관 근처의 한 작업실. 이곳에 가면 아침 일찍 셔터 문을 올리고 앞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안영근 의원(무소속)이다. 한 달 반 전 ‘음(音)과 락(樂)’이라는 5명으로 구성된 직장인 밴드를 결성한 그는 이곳에서 드럼과 색소폰 연주 연습을 하고 지낸다.


 

색소폰과 드럼은 1월 말 불출마 선언을 한 뒤, 처음 손에 잡아봤다. 하지만 하루에 네댓 시간씩 레슨 받으며 맹연습을 한 덕분인지, 벌써 ‘창밖의 여인’ 같은 유행가를 연주하는 솜씨가 제법이다.


 

“같은 음을 내는 데에도 그때그때 전혀 다르데요. 약하게 부는지, 세게 부는지, 어떤 느낌을 내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더라고요.”
국회와 지역구, 당사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그의 동선(動線)도 바뀌었다. 요즘은 작업실에 주로 있고 서울로도 잘 안 나온다. 정치를 그만두니 같이 지내는 사람들 면면도 바뀌었다. 과거 그의 주변엔 정치인, 공무원 아니면 기자들이 들끓었다. 그런데 요즘 그와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30~40대의 식품회사 납품업자, 건설회사 사장, 미술학원 교사이다. 이들과 신문지 깔아놓고 자장면과 군만두를 먹으며 지낸다.


 

정치를 그만두고 밴드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나니까 남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팔자 좋다”고 한다. 물론 그에겐 월급 봉투를 못 가져다 줄 때에도 가장(家長) 역할을 했던 약사인 아내가 있다. 그렇다고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하는 책임이 면해지는 건 아니다.


 

그는 최근 돈벌이를 위해 일자리도 구했다. 한국, 중국, 인도, 베트남 등지의 미술품을 사고파는 ‘EM 아트’라는 미술품 유통 회사라고 한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내가 미술에 대해 무얼 아느냐’고 했는데 생계도 생각해야 하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몫이 있다기에 다니기로 했어요.”

▲ 인천 구월동의 작업실에서 직장인 멤버와 색소폰을 연주 중인 안영근 의원(가운데) /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12월 말, 안 의원은 대선 때 도와준 지역민들을 만나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여당을 견제할 힘을 우리에게 몰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게 아니구나’ 싶어졌다. “제가 변명만 늘어놓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어요. 솔직히 총선에 나와 당선될 자신도 없었고요.” 이로부터 얼마 후인 지난 1월, 그는 통합민주당을 탈당한 뒤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음악을 시작한 게 심심풀이 차원은 아니었다. “불출마 선언을 한 뒤 그동안 읽고 싶어도 바빠서 못 읽던 책들을 꺼내 들었어요. 그런데 20~30쪽을 읽어도 도무지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마음 둘 곳을 찾다가 라이브카페에서 ‘음악을 한번 해보자’ 결심하게 된 거예요.”


운전하고, 1000원도 따지고…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안 의원은 “정치란 것은 다분히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욕을 먹어가면서도 기를 쓰고 하는 건 정치의 다이내믹하고 흥미진진한 특징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라는 게임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런데 그걸 막상 직접 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안 의원은 “얼마 전까지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인데, 신기할 정도로 모두 낯설게 느껴진다”며 “마음이 떠나서 그런 건가 싶다”고 했다. 여의도 국회를 지날 때에도 이렇다 할 별다른 생각이 안 든다고 한다.


불출마 선언을 한 뒤로 만난 동료 정치인이 한 명도 없다. “국회의원 아닌 사람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서 국회의원한테 만나자고 하는 것도 좀 그래서”라고 했다. 그는 “일부러 조용히 지내려고 한다”며 “당선된 사람들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주변에서 “공이나 한번 치자”고 하면 “요즘 골프 안친다” 고 한다. “끈 떨어진 사람을 잊지 않고 챙기는 분들에게야 고맙지요. 하지만 이젠 공을 쳐도 내 돈을 내고 칠 겁니다.”


안 의원은 “이제 갑으로 살다가 을의 입장이 된 것”이라면서 “국회의원일 때와 아닐 때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고 했다. “운전을 해도 제가 직접 해야 하지요. 그러려면 발레파킹 값이 2000원인지, 5000원인지도 알고 있어야 하고요.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회의원은 대접을 받으며 사는 직업이에요.” 그는 요즘 낙원상가에 가서 악기 줄이나 악보를 살 때 1000원, 2000원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안 의원은 “이제 제가 제자리로 되돌아온 것 같다”고도 했다.



돌아보면 배고픈 국민들 놔두고 싸우기만


그는 “제가 정치한다고 어깨에 힘 주는 사람은 아닌데도, 알게 모르게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며 “그 힘을 빼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안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 청와대나 당 내부를 많이 비판했었다. 특히 ‘안개모(안정적인 개혁을 위한 모임)’를 주도하면서 당내에서 욕도 많이 들었다. 그 면에 있어선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돌아보면 안개모의 본뜻을 더 밀어붙이지 못했던 게 아쉬운 면이 있어요. 결국 사학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안 처리를 욕심만 내다가 하나도 못 했잖아요.” 그는 “배가 고픈 국민 앞에서 한가롭게 이데올로기 얘기만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맷집 좋은 안 의원에게도 나름의 상처가 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만날 욕하고 싸운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줄 아는데 안 그래요. 특히 말로 인한 상처는 남아요. 지금도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라’ ‘출신이 저러니 어쩔 수 없다’ 같은 말을 들었던 게 떠올라요.”(안 의원은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한 ‘독수리 5형제’ 중 한 명이다.)
2000년, 2004년 두 번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던 그는 낙선도 두 번 해봤다. 1993년 민중당 소속으로 시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져봤고, 1996년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1993년엔 강원도 횡성으로 가서 3년간 농사를 지었고, 1996년엔 ‘모란각’이라는 냉면집도 운영해봤다.


가족들 환영… 또 다른 목표 향해 한 걸음씩


정치를 그만둔 그를 가장 반기는 사람은 가족들이다. 인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아내 김말숙씨는 영등포의 선교회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만났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기저기서 욕을 먹더라도 저 한 명만큼은 남편 편”이라고 한다.


장애를 갖고 있는 첫째 아들 지우는 요즘 공장에 취직해 일한다. 17대 총선 후 ‘나는 아빠가 국회의원이 된 게 참 부끄럽다’는 글을 안 의원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둘째 아들 신우는 얼마 전 “현수막에 아빠 얼굴이 없으니까 좀 이상하다”고 했다고 한다. 신우군은 대입 재수생이다.


안 의원은 “무엇이든 몰두해서 1년 정도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며 “음악적으로 목표한 만큼 성취할 것”이라고 했다. 2000년 선거를 앞두고 그는 매일 달력을 한 장씩 뜯어가며 ‘하루에 50명 만나기’라는 목표치를 달성했었다. “무엇이든 벼락치기는 안돼요. 계획을 세워서 한 걸음씩 걸어가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드럼과 색소폰 연주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 “연습실 셔터 문을 올리는 것이나 출입구를 빗자루로 쓰는 것이나 순간순간 어색하게 느껴져요. ‘사람들이 날 보면 뭐라고 할까’ 싶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게 자연스러워져야 하는데….”


그는 “국회의원 한다는 게 다분히 운칠기삼인 면이 있으니 연연해할 것 없다”며 웃었다. “고스톱을 친다고 합시다. 패가 잘 돌아야 하고, 내가 설사를 하지 않고 상대방이 설사를 해주고, 내가 그걸 먹어야 해요. (웃음) 그 모든 게 박자를 맞춰줘야 되는 일 같더라고요.”

민주당 이계안 의원, 미 하버드대 유학 영어공부 삼매경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정치인생 회고록 낸 후 휠체어 탄 아내와 여행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대학 안 돌아가고 집필활동에 전념


민주당 임종석 의원, 하반기에 영미권 1년 일정 연수 계획


민주당 최용규 의원, “고려인 돕겠다”  우크라이나로



18대 국회의 막이 오르면서 정치권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곳엔 처음 정치권에 입문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낙선·낙천됐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를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지난 4월 29일 오전 서울 신문로의 한 사무실에서 대통합민주당 이계안 의원이 영어 과외를 받고 있었다. 영어 강사는 한국에서 특파원으로 20년간 일한 마이클 브린씨. 이 의원은 “내 인생에 처음 받아보는 사교육”이라며 “일주일에 한두 번씩 글 쓴 걸 교정받고 주제를 정해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그는 오는 가을 학기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떠난다. 사실 이 의원의 꿈은 신학대 진학이었지만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주위 만류로 그만뒀다. 그는 요즘 새벽 잠에서 깨면 성경책을 읽은 뒤 큰 소리로 영자 신문을 읽는다. 그는 “기업은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하지만 정치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래서 완전한 승리도 없는 것 같다”며 “행정 등 여러 일에 관심이 많지만 국회의원은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총선 물갈이는 한나라당의 거물급 인사나 민주당의 386 의원이나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1월 불출마 선언을 한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굿바이 여의도’라는 책을 썼다. 김 의원은 “내가 원조 보수주의자로 살아온 이력을 증언하고,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하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바람도 전하려고 썼다”고 한다. 김 의원은 자신의 선거 운동을 하다가 199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아내의 휠체어를 10년 만에 바꾸기로 했다. 그런 뒤 함께 여행을 다닐 계획이라고 한다.

“살면서 보니까 물러설 때 뒷모습이 중요하다는 말이 맞습디다. 그래서 마음먹고 떠나기로 했어요.” 그는 “정치하다 보면 눈치도 보게 되고, 줄도 서야 하는 게 현실인데 나는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지내서 아쉬운 게 하나 없다”고 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자신이 교수로 있던 동아대에 돌아가지 않고 국가 전략 등을 모색하며 집필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 통합민주당 이계안 의원이 특파원 출신 마이클 브린에게서 영어과외를 받고 있다. /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실세’로 통했던 사람들도 각자 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무소속 이해찬 의원은 3월 말 친노그룹의 연구재단인 ‘광장’을 꾸렸다.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 데도 낙선 사례 중인 무소속 유시민 의원은 경북대에서 강의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지난 2월 불출마 선언을 했던 염동연 의원은 “당분간 정치권에서 비켜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퇴임한 노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에 가서 언성을 높이고 제동을 걸어보긴 했지만 제가 대통령을 인간으로 비판한 적은 없어요. 왕고집인 대통령을 끝까지 꺾지 못한 걸 보면 저도 진정한 충신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을 벌이는 과정에서 빚이 늘었다면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했다.


통합민주당 소속의 386 의원들은 백원우·조정식 의원을 제외하고 이번 18대 국회에서 전멸하다시피 했다. 최근 이들의 맏형 격인 신계륜 전 의원의 소집으로 일부가 모였지만 전대협 의장 출신인 우상호·임종석·오영식 의원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시대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집단적으로 반성하겠다”고 한다. 임종석 의원은 올 하반기에 미국이나 영국 쪽에서 1년 정도 공부를 하고 올 계획이다.

우상호 의원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쉽고 편안한 길만을 걸어온 건 아니었다”며 “이제 다시 초심으로 되돌아가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최용규 의원은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국적 회복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봉사를 하겠다는 평소 의지에 따라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이미현지에  한·우크라이나 문화교류 재단을 세웠고 앞으로 10년 정도 농업 등 다양한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 weekly chosun 바로가기

입력 : 2008.05.02 21:14 / 수정 : 2008.05.04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