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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삶의 애환을 같이 했던 가마솥 과 부엌

 

 

 

 

 

아낙내들에게 삶의 애환을 같이 했던 부엌  


이제는 한 시대를 마감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우리들의 부엌 문화에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불현듯이 떠오른다.

하루의 시작은 어둠이 체 지워지지 않은 이른 새벽에 부엌문이 열리면서 이낙네들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하루에 대한 삶의 신호가 되었다.


부엌의 규모와 솟이 걸려 있는 부뚜막의 규모가 그 집의 가세를 읽을 수 있는 징표가 되기도 하였다. 보통 서민들은 큰방을 향한 부엌에 가마 솟 하나와 이에 딸린 부두맏이 있었다. 여유가 있는 살림집에는 보조 작은 부엌이 있기도 했다.

부엌은 땔감의정도와 난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서민은 작은 솟으로 사용되는 보조 부엌을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솟 하나 사용된다는 것은 불목하나가 더 사용 된다는 이야기가 됨으로 건축적인 면과 연료사용 측면에서 이것은 대단한 일이 되었다.

솟을 몇 개 걸어두고 살림살이하는가하는 것은 당연 부의 정도를 말해주었다.

요사이 비유한다면 자가용 몇 대가지고 생활하는가에 해당되는 이야기 일 테지요.


보통 아내들은 큰방 부엌에서 주로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지어며, 밥 간식거리 누룽지가 제공되는 곳이고 식사를 끝내고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구수한 숭늉을 제공되던 가마솥이 있었다,


남편은 작은방이나 사랑채 방에 있는 부엌에서 소를 먹이기 위한 소죽을 끓였다.

추운 겨울이면 목욕물을 끓이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빚기 위해 술밥을 빗고 집안 제삿날이나 행사가 있는 날이면 동네 어른들을 대접을 하기 위해 큰방 부엌에 짓고 있는 밥의 양에 따른 보조음식인 국을 끓이고, 모내기를 할 때 수많은 일꾼들의 밥을 해내고, 행사 때 사용될 돼지를 삶고, 명절이면 떡국을 끓이고, 메주콩을 삶아 냈던 가마솥이 사용되었다.


오래 쓰다 금이 가면 땜질을 하고 쓰고 또 쓰다 결국 깨어져 못쓰게 되면 엿장수에게 가져가면 엿을 듬 북 주던 가마솥은 생명이 다하는 모습이기도 하였다.



이 땅에 살아간 우리들의 할머니와 어머님들이 천년을 두고 그렇게 사용하며 살아온 우리민족의 애환이 함께 했던 가마솥이 이제 우리시대 역사 속으로 살아져 가고 있다.


우리의 전통 속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먹거리에 관련된 부엌에 있던 가마솥에 대한 아쉬움 은 우리들의 소중한 삶의 모습도 바꾸게 한 편리한 오늘의 주방을 쳐다보면서도 왠지 그리움이 더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흐르는 세월 속에 쓸쓸함이 더해 오는 것은 내 나이 탓도 있겠지만, 우리의 소중한 삶의 모습이 너무도 변해버림에 대한 그 시절의 그리움 같은 것 때문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