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에 대한 사랑
우리 가족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어린애들을 보면 귀엽고 예뻐서 견딜 수 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목동에 사는 남동생이 집안 행사 때마다 조카 녀석을 데리고 가끔 큰집에 들리는 날이면 온 가족이 매달려 방안이 떠들썩하며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항상 어린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보다. 이 녀석이 중학교 입학 후로는 사내 여석이 변성기에 접어들어 제법 의젓하여 지고 재롱은 커녕 말수도 줄어들어 성인 같은 행세를 한다. 큰집에 웃음거리가 하나 살아진 허전한 기분이다.
우연히 나는 요사이는 새로운 대상을 찾아내었다.
고모 회갑이라고 친정 조카가 찾아와서 온 가족들을 참석한 행사에서 찍은 사진 속에 방실거리는 조카의 딸애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고 살가움에 찍어둔 사진을 보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어린애 생각이 날 때면 처조카 딸의 사진을 자주 본다. 누가 미운 다섯 살이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오뚝한 눈에 동그란 얼굴 하얗게 빛나는 이마에 초승달 같은 엷은 눈썹, 눈썹아래 해맑은 신비를 머금은 동그란 두 눈이 귀엽기만 하다.
처조카의 딸 지만 내가 아기의 사진을 아침마다 보는 것은 아기의 눈을 바라보면서 내 눈빛도 아기를 닮아가고 세상을 보는 눈이 아기를 닮아갔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다. 내 눈 속에 엉킨 과거의 흔적들과 사물을 바라보는 내 눈이 만드는 색깔과 굴절을 지워 보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편견, 무지, 고정관념, 그리고 감정의 색깔마저도 아기의 맑은 눈 같이 내 눈도 이 아기를 닮아가고 싶다. 굴절이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 내가 아기의 눈을 바라보고 마음을 가다듬으면, 내 눈썹 부근의 근육이 땅겨지는 느낌을 가진다. 나도 모르게 일그러진 눈 주위의 잔주름이 펴지는지 느낌이 들게 된다.
어린 아기의 눈을 보고 있으면 아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수 있지 아니할까 싶다.
어린 것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세상은 모두가 신비하고 사랑스럽고 살만한 세상 일 테지. 어린 것의 눈에는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기만하고 세상에 어느 것 하나 경이롭지 않은 것이 있을까? 자기를 대하는 사람마다 살갑게 대하여주고 기뻐해주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가지고 감사함의 눈빛으로 바라보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 괴롭고 험한 세상이 아니라, 밝고 맑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여 질 것이다. 험한 눈을 가진 이에게는 세상이 험하게 보여 질 테지만 저 착하고 선한 눈을 가진 어린것의 눈엔 선하고 아름답게 보여 지는 세상이 아닐까?.
내가 자녀들을 기를 때는 삶이 너무 고되고 바쁘기 만하여 애들을 기르는 재미는 고사하고 딴 곳에 신경 쓰느라고 즐거움보다 그저 그렇게 지냈는 것이 몹시도 후회된다. 이제 손자를 보고도 남을 연륜을 훌쩍 넘기고 보니 자라나는 애들의 모습이 얼마나 신기롭고 부러운지 모르겠다. 손자를 본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닌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주위에는 딸네 집에 와서 아기 봐주는 할머니들이 많고 친손자 봐주는 할머니도 많은데 그들 중에는 애기 돌보는 비용 때문에 종종 다투는 일도 있음을 주위에서 보고 듣고 있다.
아기를 돌보며 아기와 같이 웃음을 지닌 노인들을 본다. 일하고 집에 오면 아기와 어울려 노는 할아버지, 아기가 없었다면 집에 와서 다른 일로 웃음과 아기가 있음으로 웃음에 의미를 계산하면 그 차이는 어떠할까?
젖은 귀저기를 갈아 채우고 나면 시원해서 손 과 발을 바둥리며 벌쭉벌쭉 웃는 애기의 자애로운 눈길로 내려다보는 노인의 얼굴 속에 퍼지는 평화로운 웃음은 모성애로 표현되는 사랑의 본능을 나타내는 계기가 되어 여성들 내분비 활성에도 좋은 역할을 하지 아니할까?
웃음이 인간 면역체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상식화되었는데, 사정이 허락한다면 아기 보는 고생을 사서라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아는 손자보기 하는 친구 내외의 모습에서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받을 것을 계산하고 베푸는 것이 아닌,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랑, 고생이 되는 일이기에 희생이 따르는 사랑, 신음하는 모습에서 애태우며 밤을 지새우는 아픔을 감수하는 심정, 딸의 수고를 대신 해주는 봉사, 끝없이 퍼주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마음, 이런 속에 웃음과, 평화와, 자비로움을 베푸는 것이 사랑임을 옆에서 본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것으로부터 굴절된 나의 고정 관념이 아기의 눈을 바라보면서 맑아질 수 있으리라 싶다. 아기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눈 속에 천사가 내려와 내 눈을 통해서 천사가 세상을 보고, 나도 천사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 할까 싶다.
한 생명의 존귀한 인격체로 타고난 어린 것에 대한 사랑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며 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되고 우리들의 삶이 때로는 육신은 힘들게 하지만 사랑을 배풀므로서 내 마음이 더 젊어지고, 평화로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