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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문후보의 열정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문후보의 열정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현실 정치학자가 문국현 후보에게
정대화 (seoul)
 
  
해안환경 오염과 최근 정세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 양김진웅
문국현
 
문 후보님 안녕하십니까?
 
온난화 때문인지 동지를 앞둔 겨울이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습니다. 선거운동하기에 좋은 날씨지만 마냥 반기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편치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부터 느껴지는 냉기를 감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느낌을 고생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답답한 심경이 묻어나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 답답함과 노고가 어려운 조건에서 직접 선거를 치르시는 문 후보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처음 치르시는 선거인데다 무엇보다도 후보의 부담이 가중되는 대통령 선거이니 하룬들 마음 편할 날 없으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 시절에 제가 몇 차례 문 후보님을 뵐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격동기에 치러지는 대선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선거와 무관하게 다른 분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뵌 적도 있습니다만 미래구상을 하면서 기회가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미래구상을 구상하던 자리에서 귀한 말씀을 청해 들을 기회도 있었고 지난 1월 조계사에서 시국토론회 할 때도 없는 시간을 쪼개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도 몇 차례 더 공·사간 뵐 기회가 있었고 저희가 창당선언을 한 후 미래창조연대를 만들어 창당을 준비할 때는 기회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창당 이후에도 그런저런 만남의 기회가 지난 가을까지 이어졌으니 결과적으로 올해 대선국면에서 다른 어떤 분들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패배주의 속 밋밋한 대선... 개혁진영이 자초한 사필귀정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가 상당한 고심과 토론 끝에 미래구상을 만든 후 참여정부의 실정과 열린우리당의 무능을 비판하고 강화되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더욱 심화되는 사회양극화를 우려하면서 "새로운 정당, 새로운 정치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주장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진보개혁진영의 연대를 통한 단일국민후보로 올해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공약 아닌 공약을 국민들 앞에 던졌습니다.
 
그 후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 오늘 이 시점에 이르렀습니다만, 돌이켜보면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올해 대선처럼 쟁점이 없는 선거, 감동과 흥분이 없는 밋밋한 선거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인물에도 관심이 없고 정책에는 더욱 관심이 없는 무미건조한 선거 그 자체입니다. 그 배경에는 대선결과에 이변이 없을 것이라는 패배주의적 자포자기 심정이 작용하는 것 같고, 더 깊숙한 배경에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심판하겠다는 유권자의 보상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상황을 보면서 국민의 열광 속에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 5년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 반복적으로 실감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개혁정권의 어처구니없는 한계와 오류를 수구부패세력이 전사회적으로 활용한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진영의 안이하고 나태한 대응이 자초한 사필귀정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대선이 이렇게 진행되면 민주화 시대를 넘어 패러다임적 전환이 요구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정치의 싹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원초적 의문이 제기됩니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정치는 고사하고 앞으로 부패수구동맹체제가 맹위를 떨치며 구축해갈 강고한 특권의 성채를 어떻게 허물어나갈 것인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지방정치를 이미 완벽하게 장악한 부패동맹체제의 힘으로 대통령 선거를 압도하고 나아가 내년의 국회의원총선거까지 파죽지세로 공략할 경우 과연 어디에서 진보와 개혁을 창조적으로 조합한 새정치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 고심참담한 마음입니다. 가도가고 끝이 없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길을 잃은 형국이자 망망대해에서 방향과 동력을 상실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감성을 배제하고 이성과 합리성에 천착해야 할 학자로서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일까요?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이 열린우리당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한 그 순간부터 저희의 고민은 시작되었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 고민의 일단이 연합정부론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저희가 제안한 연합정부론은 오래 전에 미래구상에서 제기했던 진보개혁진영의 단일국민후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저는 이 구상을 최근 "부패동맹에 맞설 4자연대론"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제 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연합정부에서 후보단일화까지, 민주세력 연대에서 4자연대까지 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평범한 장삼이사가 고안해낼 수 있는 지혜들이 대부분 안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대로라면 속수무책으로 선거일을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거가 끝난 다음에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지레 걱정이 앞섭니다.
 
결국, 저희는 소박하게나마 책임을 지기로 했습니다. 미래구상을 통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전파한 '진보개혁진영의 연대'를 실현하지 못한 사회적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저희가 기획하다시피 해서 주도적으로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을 저희가 공언한 새로운 정당으로 만들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선거과정에서 제기한 연합정부론과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전략상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통합을 완성하지도 못하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보여드리지도 못한 대통합민주신당의 중앙위원직을 집단적으로 벗어던지는 것이 특별히 책임지는 행위가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는 합니다만,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이 그것뿐이라면 그것마저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도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결코 피해가지 않을 작정입니다.
 
혹자는 당신들에게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정한 사회적 역량을 모아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을 실현하지 못했으니 허위사실 유포나 유언비어 날조는 아닐지언정 책임이 없다할 수 없을 것이며, 더구나 열린우리당의 구각을 탈피하지 못한 대통합민주신당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결코 면책을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입니다.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준비하자
 
개인적으로, 저는 학자로서 또한 시민운동가로서 87년 이후의 대통령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감정의 기복을 체험하였지만 올해처럼 힘든 선거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말리는 '포기한' 선거에 직접 개입했으니 그 정도가 더욱 크기도 합니다만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낼 국민적 공론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국민들 앞에 호소할 공통의 가치와 슬로건, 국민들 앞에 내세울 유일한 대안이 명료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논쟁거리가 되어 길게 이어지면서 그 역효과로 국민적 공분이 소멸되어 버리는 상황이, 심판의 주체와 심판의 대상이 혼재되어버림으로써 주적이 사라져버리는 전선의 이완 현상이 공론의 부재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 반동화의 차단을 주장해야 할지, 새로운 가치의 착근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해야 할지 모호한 상황입니다. 위기 앞에서 '역사적 대타협'을 통해 국민적 연대를 강화해야 할지,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자도생을 도모해야 할지 모호한 상황입니다. 이것을 연대론과 가치론으로 구분한다면, 당면한 현실의 과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고 추후 미래를 도모하는 단계론과 현실에서 미래의 싹을 틔우는 맹아론의 관계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기억에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는 군사독재의 뒤를 이은 수구부패세력의 변형적 부활과 현존하는 개혁정치권에 대한 분노의 생생함이 병존하는 가운데 전략의 초점을 구악 심판론과 신악 심판론의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혼란스런 상황이며, 참여정부의 행태론적 실정이 산업의 구조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다수 계층의 경제적 어려움과 중첩되면서 심판론적 성격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연대론과 가치론의 충돌이라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미래의 새 생명이 현실의 어머니의 모태에서 자양분을 받아 태어나는 것처럼 미래의 가치는 현실의 연대 위에서 동력을 얻는 것이어야 하는 것 아닌지,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주화의 토대 위에서 첫 동력을 얻고 궁극적으로는 그 민주화를 극복함으로써 실현되는 것 아닌지, 이것을 철학의 용어로 지양(Aufheben)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민주화의 유산을 승계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의 극복을 준비해야 할 단계가 아닌지...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편지글이 주소를 제대로 찾아 배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애틋한 마음을 담은 한밤중의 연서는 쓰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별반 아쉬움은 없습니다.
 
남은 선거기간 문 후보님의 건투와 건승을 빕니다. 어렵고 힘든 선거과정에서 많이 지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마지막까지 건강을 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 한해 절망한 국민들을 향해 문 후보님께서 던지셨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정이 현실정치에서 반드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정대화 드림
덧붙이는 글 |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대통합신당 전 중앙위원을 지냈습니다. 
2007.12.14 15:48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