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밤, 깊이 못잔 밤
4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찾아왔다. 최근 한 달 동안 부쩍 꿈을 많이 꾼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이기도 하고,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누군가에게 쫓기기도 하고, 전날 있었던 일이 고스란히 꿈속에서 재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잠을 깬 후에도 꿈 내용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서 기분이 찜찜하다”면서 “꿈을 많이 꾸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하던데…”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꿈을 많이 꾸어서 힘들다는 사람들이 있다. 꿈의 내용이 좋지 않다면 꿈꾸는 것이 더욱 달갑지 않다.
정상인이 8시간 잠을 잔다면 2시간 정도는 꿈을 꾼다. 그런데 왜 어느 날은 꿈꾸고 다른 날은 전혀 꿈을 꾸지 않는 걸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꾸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꿈의 내용이 매우 인상 깊다면 그 꿈을 기억할 확률이 높아진다. 또 꿈을 꾸는 중간 중간 깨면 꿈을 기억할 확률이 높다.
꿈꾸는 동안 경험한 것은 뇌의 단기기억 창고에 저장된다. 꿈 내용을 기억하려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따라서 꿈을 많이 꾼다는 것은 잠을 자면서 자주 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잠에서 깼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힘들고 정상인은 수면 중에 자주 깨지 않는다.
수면무호흡증이나 자면서 다리를 떠는 ‘주기성사지운동증’처럼 수면을 방해하는 질환이 있을 때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주 깨고 꿈도 더 잘 기억한다.
또 꿈꾸는 상태인 ‘렘수면’의 비율이 늘어나면 그만큼 꿈을 더 자주 기억하게 된다. 우울증이 있거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렘수면이 늘어나고 꿈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그로 인해 수면 중에도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얕은 잠을 자고 꿈도 자주 꾸게 된다.
꿈을 자주 꾸어 힘든 사람은 수면을 방해하는 질환이 있는지 검사해 봐야 한다. 잠들기 전 30분간의 반신욕을 통해 근육과 교감신경을 풀어 주면 숙면을 취할 수 있어 꿈을 줄일 수 있다. 침실을 건조하지 않게 하고 온도를 18∼22도 내외로 조절하여 쾌적하게 만든다.
특정 내용의 꿈이 반복되면 정신분석학 전문의를 찾아 그 심리적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다. 진찰을 통해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수면검사를 통해 수면구조를 분석해 볼 수 있으며 약물 처방을 통해 꿈을 줄일 수 있다.
신홍범 을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국제수면전문의
동아일보 입력2007.11.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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