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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의 전말 선조 22년(1589)에 일어난 정여립의 난과, 그것의 사후처리 과정에서 나온 기축옥사에 관하여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정여립은 조선 중기의 끔찍한 모반자로서 성격이 포악 잔인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을 간추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자는 인백(仁伯)이고 본관은 동래(東萊)로 전주 출신이며,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에 통달하였고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583년 예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수찬(修撰)으로 퇴관하였다. 그는 이이ㆍ성혼의 문인으로서 원래 서인이었으나 집권한 동인에 아부하였고 스승인 이이가 사망한 뒤 그를 배반하였으며, 박순ㆍ성혼 등을 비판하여 왕이 이를 불쾌히 여기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고향에서 점차 이름이 알려지자 정권을 넘보아 진.. 더보기
기축옥사(己丑獄事) 조선선조 때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의 인물들이 모반의 혐의로 박해받은 사건 1589년 조선에 ‘기축옥사’라는 사건이 있었다. 명분은 ‘정여립 모반 사건’ 가담자 처벌이었지만 사실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부족한 선조가 입지를 강화하고자 동인을 토벌한 대참극이었다. 3년간 사형이나 유배를 당한 동인 선비가 1000여 명에 달했고 조정에는 일할 관리가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4대 사화 다 합쳐도 희생자가 5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축옥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인 세력을 절멸시킨 서인들은 1623년에는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광해군과 북인마저 제거하면서 바야흐로 서인 세상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왕비는 서인 출신으로 간택하고, 조정은 서인들로 채우면서 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