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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김창균 칼럼] 감옥 안 가려고 출마, 슬기로운 대선 생활

트럼프, 대선 불복 등 기소… 복수 혐의 이재명 닮은꼴
거짓말 논란, 등 돌리는 측근… 일반인이면 이미 철창 신세
대선 주자 신분 덕 보호받아 죄짓고 대선 방패 선례될라

입력 2023.08.10. 03:10업데이트 2023.08.10. 14:59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AP 연합뉴스·뉴시스

“재검표를 해라. 나를 찍은 1만1780표를 새로 찾아내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같은 공화당 소속 조지아주 국무장관과 통화한 내용이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1만1779표 차로 패배한 조지아주 선거를 1표 차로 뒤집으라는 주문이었다. 미시간주와 펜실베이니아주 공화당 지도부에도 비슷한 요구를 했다. 승부처였던 이 세 곳 개표 결과를 바꾸면 트럼프가 승자가 됐을 것이다.

트럼프는 개표 조작이 뜻대로 안 되자 펜스 부통령에게 “대선 결과를 승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펜스가 의장을 맡을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대선 승자를 확정하는 의사봉 방망이를 두드리지 말라는 거였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고 펜스는 거부했다. 트럼프는 최후 수단으로 열성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상하원 합동 회의장 습격이 그렇게 벌어졌다. 표 바꿔치기와 폭력배 동원이 극성이었다는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불복 혐의로 기소된 내용들이다. 미 전직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형사 피고인’ 딱지가 붙은 게 벌써 세 번째다. 포르노 배우에게 성관계 입막음용 13만달러를 준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된 게 시작이었다. 지난 6월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핵 프로그램을 비롯한 국가 기밀 정보를 사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들에 대한 재판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공화당 예비선거도 2024년 1월 15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시동이 걸린다. 트럼프는 양쪽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보내야 한다. 세 혐의 모두 최종 재판 결과는 2024년 11월 5일 대선 본선전까지 나오기 어렵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압도적 선두다. 본선을 치를 바이든 현 대통령과 가상 대결에서는 지지율 43% 대 43%로 팽팽하다.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 혐의를 셀프 사면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생기고, 트럼프는 실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예고해 왔다.

트럼프가 처한 상황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많이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지난 대선에서 박빙 격차로 패배했고 다음 대선에서 재도전을 노리고 있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기소돼 있고,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과 백현동 및 정자동 특혜 개발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두 사람이 거짓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패배한 대선을 뒤집으려는 무리한 시도로 참모와 측근 대부분이 등을 돌렸다. 트럼프가 지난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주장에 여전히 동조하는 여섯 명만이 공범자로 남아 있다. 이재명 대표의 각종 혐의를 공모했거나 뒷받침했다는 사람 중 유동규를 비롯한 대장동 일당, 대북 송금에 관여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등은 이 대표의 범죄를 증언하는 위치로 돌아섰다. 몇몇은 괴로움을 못 견디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용과 정진상 두 사람만이 이재명의 마지막 방패로 남아 있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까지 정치를 계속하는 이유가 뭘까. 실은 바로 그런 처지 때문에 정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공화당 군소 주자인 윌 허드는 “트럼프가 출마한 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공약 때문이 아니다.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해결사였던 코언 변호사는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나오면 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에 대선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내가 대선에서 지면 없는 죄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구속 심사를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0.73%p 차로 갈린 지난 대선을 떠올리면 아찔해진다. 12만명만 반대 선택을 했어도 결과가 바뀔 수 있었다. 그랬다면 대장동, 백현동, 정자동 공모 사기꾼들이 수천억 원 특혜를 꿀꺽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라고 우겼을 것이다. 쌍방울을 통해 김정은에게 건넨 수십억 원을 종잣돈 삼아 ‘더러운 평화’도 거래했을 것이다.

법적, 도덕적 결함이 심각한데도 국민 절반 가까이가 표를 던졌다. 일반인이었으면 철창 신세를 졌을 사람이 유력한 대선 주자라는 정치적 신분 때문에 보호받고 있다.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덮어씌우기까지 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이재명의 ‘슬기로운 대선 생활’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까 걱정스럽다.

김창균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