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에 대해 깊이 알아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 수 있어요"
"주체적 핵 개발" "연방제 통일, 그게 불가능한 게 아니에요"
"북한 실상이라는 것들이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지 않나?"
女빨치산 장기수·남파간첩 등 목소리 담은 만화책 '빨간약' 논란
남편 주호민씨, 장애 아들 담임교사 고소하자 '가족 활동' 주목
한수자 시아버지 주재환씨는 '사드 반대' '이석기 석방' 촉구
文, 페이스북서 '빨간약' 출판사 출간도서 두 번이나 추천해
조문정 기자
입력 2023-07-30 12:00 | 수정 2023-07-30 12:00
▲ 웹툰작가 주호민 씨의 아내인 만화가 한수자 씨가 공저자로 참여한 만화책 <빨간약: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하여>의 표지. 한씨는 간첩죄로 체포된 여성 장기수들의 이야기인 '두 할머니'를 다루며 "빨치산', '간첩', '종북', '빨갱이' 이런 이름이나 명칭에 갇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자"고 호소했다. 민중의소리에 따르면 해당 장기수들은 "김일성 수령에 대해서 깊이 알아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 수 있어요"라고 주장했다. ⓒ이미지 출처=보리출판사
'신과 함께'로 잘 알려진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9세 아들의 담임인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아내인 만화가 한수자씨와 아버지인 주재환 전 민족미술인협회 대표의 과거 활동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한씨가 공저자로 참여한 만화책 <빨간약: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하여>가 국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만화책에서 남파간첩, 빨치산 출신 여성 비전향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 할머니'를 그렸다.
'엠엘비파크'(MLB PARK, 엠팍)에는 <주호민 부인 한수자 작가 의외의 작품 jpg>,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에는 <주호민 아내 한수자 책 "빨간약" 에 나오는 내용.. ㄷㄷ...>, 국민의힘 갤러리에는 <주호민 와이프 한수자씨 인터뷰인데.. 국정원 신고해야 하는거 아냐??>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빨간약'의 공저자인 만화가 6명을 인터뷰한 인터넷 매체 '민중의소리'의 8년 전 기사도 함께 공유됐다.
지난 2015년에 출간된 이 만화책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이야기인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김성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의 이야기인 '나의 전교조 선생님'(김수박) ▲일베(일간베스트)를 분석한 이야기인 '일베는 우리 동무'(마영신) ▲남파간첩, 빨치산 출신인 여성 비전향장기수들의 이야기인 '두 할머니'(한수자) ▲비전향장기수의 이야기인 '진짜 간첩'(김홍모)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의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이야기인 '최선의 선택'(권용득) 등 6편의 에피소드가 담겼다.
작가들은 '르포 만화' 속에 캐릭터의 모습으로 등장해 자신의 의견을 대사의 형식을 빌려 전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두 할머니' 에피소드에서 한수자씨 캐릭터는 여성 비전향장기수 캐릭터들을 찾아가 그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의견도 개진한다.
'두 할머니'에서 여성 장기수 캐릭터들은 한씨 캐릭터에게 ▲"김일성 수령에 대해서 좀 알아요?... 그분에 대해서 깊이 알아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 수 있어요"(2015년 9월 12일 자 민중의소리 기사) ▲"그거 아우? 윗집(북한)에서는 지금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상교육을 12년으로 늘렸다더군. 여기서는 어린이집 보내는 것도 힘든데 말이야" "핵도 그래. 외세에서 얼마나 견제를 해. 자기들은 이미 몇천 개씩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압박 속에서도 자주적으로, 주체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고…….참 대단하지. 우리 민족이 참 똑똑해. 연방제 통일, 그게 불가능한 게 아니에요"(2015년 10월 19일 자 미디어펜 기사)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을 들은 한씨 캐릭터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얘기를 너무 확신을 갖고 하시니까……. 뭐랄까…….우리가 북한의 실상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지 않나?"라고 대사를 통해 말한다. 주간경향은 2015년 9월 9일 자 기사에서 "인터뷰가 아닌 르포 만화답게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표정을 과감히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한씨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빨치산 출신이고, 평생 결혼도 안 하시고 두 분이 자매처럼 아흔이 넘은 나이까지 함께 살아오셨다는 이야기에 어떤 분들일까 관심이 들었다. 빨치산이라고 하면 전투적이고 무서운 이미지인데, 여성의 몸으로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인터뷰하면서 만난 두 분 할머니는 마치 소녀와도 같은 분들이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른 할머니들보다 더 순수한 면도 많았다. 마치 우리 옆집에 사는 할머니들 같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만화 "빨간약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있는 그대로를 보자'다. '빨치산', '간첩', '종북', '빨갱이' 이런 이름이나 명칭에 갇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자는 것"이라며 "모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벗고, 본 얼굴을 바라본다면 저들이 씌워놓은 이미지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모두들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빨간약'의 논란은 '두 할머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파간첩 출신 비전향장기수 박종린씨가 캐릭터로 등장해 북한을 찬양하는 대사를 읊는 '진짜 간첩' 에피소드(김홍모 작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만화에서 박종린씨 캐릭터는 "북은 해방 뒤 친일 청산을 철저히 하고 미국 놈들의 공세에도 자주성을 굳세게 지켜왔잖아요. 이런 힘의 핵심은 지도자와 인민의 단결력에 있어요"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캐릭터로 등장한 작가 김홍모씨는 "으아, 이거 만화로 그리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가겠다"라고 말한다.
'진짜 간첩' 박종린씨는 2021년 1월 사망할 때까지 끝내 전향하지 않은 실존 인물이다. 그는 1959년 남파돼 '모란봉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복역 중이던 1976년에 교도소 안에서 북한 방송을 청취하다가 '붉은 별' 조직활동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러나 34년을 복역한 뒤 1993년 병보석으로 출감했다. 이후 통일 전문 월간지 '민족21'을 창간하고 범민련경인연합, 통일광장 등에서 활동했다. 그의 딸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 주재환(오른쪽)·주호민(왼쪽) 부자가 2021년 5월 18일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2인전 '호민과 재환'을 열었다. ⓒ연합뉴스
주호민씨의 아버지인 주재환 전 대표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통진당) 의원의 석방을 위한 구명활동까지 벌인 사실도 아울러 재조명되고 있다.
주재환 전 민족미술인협회 대표는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민중미술 1세대 서양화가'로 꼽힌다. 아들 주씨에 따르면 주 전 대표는 불혹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1980년 등단)해서 환갑 때(2000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을 늦게 시작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한 학기 만에 중퇴하고 행상(창경궁 아이스크림 장사꾼), 피아노 외판원, 파출소 방범대원, 민속가면 제작자, 공민학교 미술강사, 누드미술학원 경영, 민속극회 남사당 단원, 한국민속연구소 연구원, 월간 '미술과 생활' 기자, '독서생활' 편집장, 한국자수박물관 연구원,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2016년 3월 3일 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 전 대표는 1979년 현실참여 미술운동 그룹 '현실과 발언' 창립과 이듬해 창립전 출품을 계기로 미술계에 등단해 주로 역사, 정치 분야와 연관된 작품을 선보였다.
주 전 대표는 작품활동을 하며 정치적인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첫 개인전을 연 지 2년 뒤인 2002년에도 ▲부시 미국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한 700인 평화선언 ▲300인 선언 ▲8.15 특별사면에 즈음한 각계 3000인 선언(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에 이름을 올렸다.
▲ 웹툰작가 주호민씨의 아버지인 주재환 전 민족미술인협회 대표가 2018년 참여한 '815대사면추진위원회' 명단. ⓒ815대사면추진위원회
주 전 대표는 ▲문화예술인 474명 민노당 지지선언(2004년) ▲평택미군기지확장 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각계각층 평화선언(2006년) ▲통진당 강제해산반대 원탁회의(2014년) ▲사드 배치 강행 중단 촉구 비상시국회의(2017년) ▲통진당 강제해산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대책위원회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과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석방 촉구 시국선언문(2018년) ▲815대사면추진위원회(2018년)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문(2021년) ▲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본부 3지대장 양회동씨의 분신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를 규탄하는 항의서한(2023년) ▲'건설노조 탄압 중단! 경찰청장 파면! 윤석열 정부 사과 요구' 기자회견문(2023년)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꾸준히 정치활동에 나섰다.
한편, '빨간약'을 출판한 보리출판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추천한 <짱깨주의의 탄생(부제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과 <보리 세밀화 큰 도감>의 출판사이기도 하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5월 19일 페이스북에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이 보리출판사가 펴낸 <보리 세밀화 큰 도감> 10권을 보내주셨다"고 책 사진을 올리면서 "워낙 방대한 역작이라, '잘 팔릴까?'라는 걱정이 오히려 들어서 추천의 글을 올려본다"고 적었다.
문 전 대통령이 언급한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는 2018년 11월 21일 자 전북일보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교육철학으로 강조해왔다고 한다. 그는 시험 성적에 따른 평가를 '실적 강요'에 비유하며 1995년 대안학교 '변산공동체학교'를 설립했다.
변산공동체학교와 관련해 윤 대표는 2017년 5월 1일 공개된 전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로 가르치는 것은 몸으로 살아가는 법, 농사짓고 사는 법"이라며 "'공동명의'의 땅에 농사를 지어서 생산물로 '자급자족'하고 판매 수익금은 필요한 만큼 나눠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몸' 놀리고 '손발' 놀려야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에 필요한 것을 마련할 수 있는데, (도시에서는) 머리만 굴리도록 만들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제 앞가림도 해야 하지만 '여럿이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데 도시에서만 살면 그걸 익히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뉴데일리는 한수자씨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추후 한씨가 입장을 밝힐 경우 이를 기사에 반영할 예정이다.
조문정 기자 supermoon@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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