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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제주 4.3사태의 진실

해방 당시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글이 있어 옮겨 왔으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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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에 대하여

1945년 해방 당시 한반도는 북쪽엔 조선공산당조직이 활동하고 남쪽엔 인민공화국조직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미 공산주의에 의해서 거의 장악된 상태.

1945년 11월 미군정이 시작되었으나 소련의 공작과 북한김일성의 지령과 남쪽의 남로당조직의 적화공작으로 미국은 제대로 남한을 통치할 수가 없었음.

자유민주주자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은

전국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자유민주주의로 건국을 해야하고 공산주의는 결국 백성이 굶어죽는 체제임을 역설하는 국민계몽을 해나감.

유엔의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하기로 하였으나

북한의 김일성이 반대하고 북한만의 괴뢰정부를 만듬.

남한은 1948년 5.10일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위하여 총선거를 실시함.

결국 북한에는 김일성이가 공산주의 괴뢰정권을 만들고 남한에는 이승만대통령에 의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되어 유엔은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함.

이 과정에서 공산당들은 남한의 대한민국 건국을 막으려고 9월총파업, 대구폭동, 제주4.3폭동, 여순반란등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파업과 폭동과 테러를 일으킴.

1921년 제주 일본 공산당에서 활동하던 김영식이 제주도공산당을 만듬.

제주도는 지역의 고립된 특성으로 80%이상이 공산주의에 현혹됨. 남로당조직이 광범위하게 완성되어 공산주의 활동을 함.

1947년 3.1 제주, 경찰기마대의 말의 눈을 누군가 건드리고 말이 근처에 있던 어린애에 부상을 입혔다고 함. 경찰의 사과후에도 일련의 군중들이 의도적으로 경찰서로 몰려가고 경찰의 발포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함.

이후 제주도 남로당은 5.10 선거반대. 대한민국 건국 반대. 스탈린, 김일성, 박헌영 만세를 주장하며 파업과 시위와 테러를 함.

1948년 4월 3일 새벽2시~4시 사이에 제주남로당 무장유격대가 경찰서 12곳을 습격하여 경찰과 경찰가족 선거관계자 및 인근 주민 27명을 무참히 살해함. 또 많은 경찰가족을 산으로 납치함.

결국 남로당의 공격과 방해로 5.10 선거에서 제주도 3개 투표소중 2개가 무효투표가 되는 지경이 됨.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 되었으나

전국적인 공산주의 세력의 파업과 시위와 테러는 계속됨.

이승만대통령이 선언함,

1. 자유대한으로 전향하라

2. 아니면 재산정리해서 북한으로 가라

3. 그렇치 않으면 소탕하겠다

9만명이 재산을 정리해서 북으로 가고 서울대교수 50%가 북으로 갔습니다. 전향하지 않은 이들은

지리산 태백산 소백산 월악산 등으로 숨어 들어가서빨치산이 됩니다.

제주도에는 1948년 11월 21일 계엄이 선포되고 남로당무장유격대 소탕작전이 시작됨.

제주남로당유격대는 산위에 있고 산중간에는 민간인이 거주함.

남로당이 산중간에서 보급을 받고 활동함으로 소탕에 어려움이 있고. 남로당이 산중간 민간인으로 숨어서 활동하는 일이 생김.

이후 산중간의 민간인 분산작전이 실시되어 해안가 5km이내로 이주하도록 조치하고 남아있는 민간인은 남로당폭도로 간주 소탕함.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 희생이 발생. 당시 제주도내 인구의 80%정도가 남로당의 영향을 받고 있던 파악되는 상황.

제주도는 공산주의 남로당이 장악한 섬이 되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제주도가 아니고 북한 김일성 괴뢰집단의 제주도가 되었을 것이라면. 이후 6.25 한국전쟁 때 제주도에는 더 큰 비극이 발생했을 것임.

1949년 6월 제주남로당 총사령관 이덕구가 잡힘. 체포된 남로당폭도들의 증언에 의하면 몇개월내에 인민공화국을 건설한다고 들었다고 함.

1949년 10월 미군이 철수하자

1950년 6.25에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발발

1948년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한것은 한마디로 기적임.

만약 그 당시 이승만대통령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건국이 실패했다면, 현재 우리는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되어서 자유와 인권과 희망을 빼앗기고 , 아마도 거대한 정신병원같은 체제에서 거짓역사를 외우고 믿으며 살고 있을 것임.

때문에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건국 공로를 폄훼하고 매도하는 역사공작이 끊임없이 진행중임.

그럼에도 북한과 달리 피해자에 대해 이유불문 민주화유공자로 보상하고 국가적으로 예우하였으나.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로당의 부활적 영구 집권과 공산적화의 수단으로 삼음.

 

48년 4월 3일 자정을 기해 한라산 중턱의 수산봉, 고내봉, 파군봉 등 오름에서 봉화가 올랐다. 제주 4.3사건 피의 역사가 시작 된 것이다. 사령관에는 김달삼 이었다.

이들은 인민유격대를 조직하여 제주 24지서중 12개 지서를 골라 320명을 배치 하였다.또한 제주시내 우익단체 대표들을 공격 하기 위해 죽창부대 200여명 정도를 조직 하였다.

새벽2시 이들은 일제히 행동개시에 들어 갔다. 신엄지서 송원화 순경이 칼과 죽창으로 8군데나 찔렸으나 구사일생으로 구출 되었고 그 부친은 폭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남원지서에서 경찰을 돕던 방성화는 현장에서 즉사 하고 김덕훈이라는 사람은 도끼에 팔이 잘리고 고일수 순경은 칼에 목이 잘렸으며 폭도들은 무기고에서 총과 실탄을 탈취하였다.

화북지서는 협조원 이시성이 불에 타 죽었고 김장하 경찰부부는 폭도들에게 대창으로 찔려 죽었다. 지서를 불질렀다. 외도 지서에서는 선우중태 순경이 폭도들의 총에 맞아 즉사 했다.

48년 4월 3일 자정 애월면 구엄마을 우익인사 문영백의 집에 폭도 100여명이 들이 닥쳤다. 문영백은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은 큰딸 숙자(14세), 둘째딸(12세)는 잠옷차림 상태에서 죽창으로 찔려 죽었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 어린 애들이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는데도 잔인하게 현장에서 살해한 것이다.

새벽2시 한림면 한림리 한림여관에서 묵고 있던 경찰을 폭도 40 여명이 기습하여 김록만 순경이 죽고 경찰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제주 감찰위원장 현주선(46세)은 폭도들의 칼에 세군데 찔렸으나 기적적으로 살았고 그 외 간부들도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다.

그 다음날 연평리에서는 대한청년단원(이후 대청) 오승조(36세)를 대창으로 찔러 죽였고 4월6일 대청 총무 이도연(37), 단원 양남호(32)를 "5.10선거에서 손을 떼라"며 살해 했다.

4월7일 김구원 외 2명이 살해 당했고 4월13일부터 18일까지 화북에서 임선길 순경, 선흘리 대청단원 부동선, 부용하, 고평지, 신촌에서 경찰관 김성호와 그 부친이 칼로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다.

폭도들은 밤마다 적기가를 부르며 5.10선거 반대를 외치며 선거관리위원과 우익인사를 골라 죽였다.

이들을 민주화 운동한 애국자라고 칭송을 하며 제주도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중고등 학생들은 물론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김대중 국민의정부, 노무현 참여정부, 그리고 문재인 현정권에 이르러도록 민주화의 가면을 쓰고 세습독재에 머리 조아리면서도 신성불가침 민주주의로 포장하여 세뇌하고 있다.

이제 헌법개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체성을 뿌리채 적화하려고 한다. 넋놓고 좋은게 좋은거라는 안이함으로 진리를 상실한 북한같은 그릇된 인식의 감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멈추어야 한다. 이제 더이상 한민족공멸의 오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온국민이 읽은 페북》중에서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