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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태평로] 국민을 쓰레기통 뒤지게 하는 무책임한 권력자

국가에 대한 리더 책임 끝없어
해야 할 개혁 과제 넘쳐나는데
박수 받을 욕심에 외면한다면
가난의 쓰레기통이 기다릴 뿐

입력 2023.02.01 03:00
 
 
30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교사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수개월간 노력했으나 지난해 11월 이후 볼리바르화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급등했다. 이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수주째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순전히 책임감 때문에 남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다. 서기 4세기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그런 사람이었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사촌 동생 율리아누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응징에 나섰다. 그런데 도중에 중병에 걸리자 율리아누스를 제거하려던 마음을 바꿔 후계자로 지명한 뒤 죽었다. 당시 로마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침략에 시달렸다. 제왕에게 나라를 보전하는 것보다 더 큰 책임이 있나. 로마를 지켜야 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황제는 비록 반란군 수괴였지만 군사적 재능이 탁월했던 율리아누스에게 권좌를 넘긴 것이다.

제위에 오른 율리아누스도 주어진 책임을 온전히 떠안았다. 외적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황궁의 사치를 금하고 재정 지출을 줄여 국고를 채웠다. 전쟁터에선 늘 선봉에 섰다. 그러다 마지막 전투에서 적병이 던진 창에 맞아 병사들 보는 앞에서 전사했다. 그가 제위에 머문 기간은 고작 20개월이었다. 하지만 책임 있는 통치가 남긴 효과는 오래갔다.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는 100여년간 로마를 건드리지 않았다.

조직 경영 관련 용어 중 하나인 ‘스킨 인 더 게임’은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에 따른 실패 위험과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뜻이다. 저명한 경영 이론가 나심 탈레브는 동명의 저서에서 리더를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전문 경영인을 리더라 부르지 않는 것은 책임감의 깊이가 오너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 5년간 ‘이러고도 나라가 존속할 수 있나’ 걱정할 정도로 무책임한 정책 결정이 반복됐다.

국민연금이 존속하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이치다. 그 뻔한 개정 건의를 지난 정권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그 결정을 한 대통령은 박수와 지지율이란 열매만 따 먹고 국민 부담 증가에 따른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권좌를 떠났다. 교육·노동 개혁도 외면했다. 제기되는 여러 비판에는 통계 조작으로 대응했다. 마치 5년 후엔 세상이 없어지는 것처럼 행동했다.

번영의 꽃을 찬란히 피워낸 나라들엔 공통점이 있다. 리더가 국가의 현재와 미래까지 무한 책임진 나라는 흥했고 외면한 나라는 망했다. 리더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한 사례도 있다. 고대 아테네의 공금 악용 죄는 나랏돈 횡령이나 유용을 다스리는 법이 아니었다. 잘못된 정책으로 공적 자원을 헛되이 낭비했을 때 적용했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미숙한 일 처리로 국가에 손해를 끼치면 처벌했다. 정책 입안자는 먼 훗날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결과까지 신중히 살펴서 정책을 짜야 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은 ‘눈에는 눈’ 같은 복수법이나 만든 인물로 알려졌지만 오해다. 함무라비 법전에 ‘건축업자가 집을 잘못 지어 입주자가 죽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다. 집을 지어 팔기만 하면 끝이 아니란 뜻이다.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했다. 건축가는 붕괴를 초래할 모든 위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국가 정책도 다를 게 없다.

아옌데 대통령 시절 칠레는 구두끈 값까지 나라가 정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는 무장 군인과 함께 전자상가에 들어가 제품에 낮은 가격표를 붙였다. 이런 쇼나 했지, 공장을 더 세워 생산을 늘릴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민(愛民) 대통령을 자임했지만 정작 국민을 데려간 종착지는 낙원이 아니라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는 쓰레기통 앞이었다. 쓰레기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나라의 미래에 눈감는 리더, 그런 지도자에게 박수 치는 국민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