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펜앤
- 최초승인 2022.12.31 10:34:41
- 최종수정 2023.01.01 08:59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으로 사면·복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MB귀환, 잔칫집 같았다는---!>
많은 사람이 MB집에 갔다고 한다. 그들은 엠비의 귀환을 환영하면서 서로 악수를 하고 손등을 쓰다듬고 옥고의 아픔을 위로하고 보스를 그리워 하던 마음들을 나누었다고 한다. 차례로 집안으로 초대되어 김윤옥 여사의 다정다감한 미소를 보면서 내어주는 차를 마시고 집주인의 귀환이 가져다주는 평화로움과 자유와 여유를 함께 느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오고 그 내용이 알려지고 박수를 치고---.
박근혜 대통령 달성 사저 풍경과는 너무도 대조되어 참으로 아쉽고 딱하고 이 시대에 우리가 안고 살아야 하는 아픔이랄까, 온갖 감정들을 가슴 속에서 밀어내는 그런 스토리다. 박 대통령의 미소는 부드러웠으나 한번 집으로 들어간 이후로는 서릿발 같은 침묵만이 흘러넘치는 을씨년스런 장소가 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 집에 넘치는 따사로움과 박근혜 대통령 집의 얼음장같은 분위기의 차이는 우리를 심각히 우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고 있을까. 얼마 전에는 김기춘 전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대통령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결국 발길을 돌렸다는 루머만 나돌고 있다. 박 대통령은 왜 그리하였을까.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은 달성 사저로 귀가한 이후 유영하 변호사의 대구시장 출마로 잠깐 유튜브 영상을 통해 얼굴을 비쳤으나 유 변호사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박근혜라는 긴장된 이름에 맥이 풀리게 된 그런 상황이다.
무엇이 박 대통령을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을까. 탄핵과 구속과 재판이 너무도 엄청난 극단적 시련으로 다가왔던 바로 그 연쇄적 사건의 본질에서부터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믿었던 당으로부터의 처절한 배신과 어떻든 자신이 헌정 질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그리고 바로 자기에게서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는 자괴감은 그 누구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바로 그 역사적 사건 그 자체 말이다. 헌법재판이라는 제도, 사법부의 긴 재판 그 어느 것도 사실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했다. 재판은 각본대로 진행되었고 검찰측은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십여명의 고위직 판사를 사법 농단의 피고로 법정에 세운 터였다. 공포가 검은 안개처럼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것이다. 사법부는 조용히 엎드렸고 박근혜 피고는 치욕스런 파면에 이어 유죄를 받았다. 백성들은 울부짖었지만 종북세력처럼 조직화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긴 감옥생활 동안 수십명의 박근혜 정권 사람들이 관련된 재판 기록을 모두 직접 읽어봤다는 말도 있다. 재판정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진실보다는 거짓말이 난무하고 우선은 살고 보자는 지옥도가 펼쳐진다는 것은 부인키 어렵다. 그 지옥도를 봤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그를 침묵으로 밀어 넣었다는 말인가. 누가 그 지옥의 이야기를 대통령에게 전달했을까.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에게 어떤 존재일까. 지금 유 변호사와 그의 부인이 박 대통령을 곁에서 모시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유영하 변호사의 대구시장 출마와 박 대통령의 지지 호소는 정말이지 모든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고 실망시켰다. 그 차이는 컸다. 4.15 총선 당시 감옥으로부터 나온 박 대통령의 한국당 지지 호소와 유 변호사의 비례의원 신청도 실로 초라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연이은 헛발질이었고 정치 감각이라고는 없는 노출이었다. 최순실 농단에 이어 유영하 농단이라는 말까지 입방아에 올랐다. 그것이 가져온 사단일까. 박 대통령은 달성 사저로 돌아온 이후 다시 긴 침묵 상태로 들어갔다.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것과 살아 있는 정치인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긴 침묵이 오히려 극단적인 '의미'로 읽힌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햇살이 비추고 온기가 살아나는 그런 정치적 함의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음습하고 기이한 긴 침묵이다.
MB대통령은 역시 짧지 않은 영어 생활에서 벗어났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정치적 승리를 나누어 갖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들겠지만 지금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당 소속 인사 대부분이 MB계이고 이런 사정은 용산의 실무자들에게조차 마찬가지다. 어떤 의미에서는 MB는 윤석열 정권의 어른이 된 셈이다. MB 사저의 분위기는 아무래도 이런 사정 덕분일 것이다.
근본적인 차이는 있다. MB의 죄는 개인의 문제였다. 자칫 부끄러울 수도 있는 주제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죄는 달랐다. 같은 뇌물의 죄를 뒤집어 썼지만 박 대통령은 결코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뇌물죄는 조작된 것이고 감찰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마녀 사냥이었다. 묵시적 청탁을 받았다는 말은 직접적인 청탁의 언변이 없었다는 것을 윤석열 검찰조차 시인하고 실토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재판정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이런 시대였고 이런 민주주의요, 이런 정의의 순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와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달랐다. 그래서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귀가는 잔치집을 방불케 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집은 실로 비극적 분위기가 완연했다. 그리고 긴 침묵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할 때는 언어가 같거나 비슷한 수준에서라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말하게 될 때 무언가 어긋나고 있는 그런 지점을 종종 만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비정치적이며, 전통 문화적이고, 음산하게 도사린 민중의 깊고 어두운 무속적 심연같은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독신이며, 부모의 비극적 죽음이 얽혀있고, 독재의 시대가 배경적 커튼을 깊이 드리우고 있다는 점 외에도 거친 남성 위주인 민중들의 오랜 여성비하와 여혐이라는 추잡하고 더러운 취향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성적 언어들이 그토록 난무했던 것이고 세월호 7시간은 더러운 정사 사건으로 둔갑하여 소설적이며 전설같은 그런 줄거리가 되어 온통 한국인들의 마음을 휘감았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광란의 민중적 저주가 되고 말았다. 남편도 가족도 없는(아니 거부한) 사정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남편이 있었더라면 여혐의 광란과 난동은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탄핵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차이였을 수도 있다.
어떻든 두 사람 전직 대통령 그것도 보수진영에서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그런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감옥 생활을 우리는 잇달아 두 번이나 또 통과하게 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는 논리적 귀결이라는 면을 배제할 수 었었다고 하겠지만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재판절차라는 형식 혹은 외피가 드러나지만 내부에는 굿판과 다를 바 없는 비정형의 에너지가 끓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위험하다, 한국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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