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공원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진행된 '전국 노래자랑' 첫 녹화에 나선 새 MC 김신영(39)은 "고향에 오니 금의환향 한 것 같다"며 첫 관객을 맞았다. 뉴스1
“일요일의 막내딸이라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국 노래자랑’ 마이크의 새 주인 김신영(39)은 두 시간에 걸친 녹화를 끝낸 뒤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구서 첫 진행 김신영 "금의환향한 기분입니다!"
3일 오후 대구 달서구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새 MC 김신영의 ‘전국 노래자랑’ 첫 녹화, 대구 달서구 편 녹화가 진행됐다. 대구는 김신영의 고향이자 직전 진행자 송해가 묻힌 곳이다.
오후 2시로 예정된 녹화 시작시각이 다가오자 장내 정리에 나선 제작진은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MC 바뀌고 첫 녹화가 대구 달서구 편입니다”라고 관중들에게 강조했다. 제작진의 안내가 끝나자 김신영의 부캐인 ‘다비 이모’의 노래 ‘주라주라’가 흘러나오며 장내 분위기가 고조됐다.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며 김신영이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신영은 “오늘 제가 처음 녹화하는 뜻깊은 날입니다”라고 말문을 연 뒤 “제가 대구사람입니다. 대구직할시 중구 남산동! 직할시 시절부터 함께했는데 대구에 와서 고향 분들을 만나니 금의환향한 기분입니다”라며 “송해 선생님 뜻을 받아서 이 한 몸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사투리로 친근감, 어린이에게도 존댓말 하는 다정한 진행자
김신영은 출연자가 노래 부르는 내내 리듬을 타며 리액션을 했고, 춤추며 등장하는 출연자에 맞춰 춤을 추며 질문을 하는 등 맞춤형 진행을 보였다. 어린이 출연자와 대화할 때는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이에게도 꼭 존댓말을 썼다. 뉴스1
‘전국~ 노래자랑!’ 함성을 지르는 법을 관객들에게 안내할 때도 김신영은 사투리를 사용해 친근감을 더했다. 그는 “전국~ 하면 선생님들은 시원하게, 신영아 잘해라 대구의 이름을 알려라 하는 마음으로 ‘노래자랑~!’ 해주시면 됩니다. 뒤에 잔디(에 앉아있는) 선생님들도! 함 해보께요~”라며 함성을 유도한 뒤 “딱 요렇게만, 딱 요까지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고최고 우리 슨생님들 증말 히트다 히트!”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김신영은 “예전에 아버지랑 대구 노래자랑에 참가했을 때는 개다리도 제대로 못 떨었는데 MC가 돼서 왔어요”라며 “아 신영이 예쁘지요. 대구사람 아인겨, 대구사람 말해 뭐합니까 손예진 있고요, 김신영 있고요, 둘째이모 김다비가 있습니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달서구에 따르면 3일 오후 대구 달서구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KBS 1TV '전국노래자랑' 녹화에 약 3만명이 모였다. 연합뉴스
‘딩동댕동댕~’ 실로폰 소리에 이어 김신영이 외치는 “전국~”에 관객들이 “노래자랑!” 화답하며 시작한 녹화는 2시간가량 이어졌다. “반갑습니다 대구의 딸 김신영이가 먼저 큰 절 올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가 김신영의 첫 발언, "일요일의 막내딸이라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가 그의 마지막 발언이었다.
어린이부터 80대, 외국인까지 다양한 출연진에도 김신영은 원래 자기가 하던 프로그램인 양 자연스럽게 좌중을 끌고갔다. 출연자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아 진행하거나 어린이 출연자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등 수평적인 진행을 선보였다. 춤을 추며 등장하는 출연자에 맞춰 함께 춤을 추고, 노래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으며 분위기를 살렸다.
이날 약한 비가 예고됐지만,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갈수록 인파가 늘어났다. 녹화가 끝날 때쯤엔 광장 뒤쪽까지 사람들이 가득 찰 정도였다. 새 MC의 ‘전국 노래자랑’ 녹화를 지켜본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공연장을 나섰다.
이인기(55)씨는 "이질감이 없다. 아무래도 나이가 젊어 약간 어색할 줄 알았는데 넉살 있게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고, 나경숙(55)씨는 "젊어서 활기차고 좋은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발굴을 잘했나 싶다. 맞춤형 MC 같다"고 말했다. 이모(71)씨도 “진짜 잘하더라. 재미있고 안 지루하고 무엇보다 귀여웠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태자(62)씨도 “처음 발탁 소식 들었을 때부터 잘할 것 같긴 했는데 너무 분위기도 잘 채우고 좋았다”고 했다.
시민들이 주차장 주변에서 김신영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비이모~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는 팬도 있었다. 김신영은 자신을 기다린 시민들을 향해 손 흔들고 웃으며 인사를 한 뒤 차에 올랐다.
"드디어 변한 KBS" 가능케 한 건, 데뷔 20년 차 김신영 내공
김신영은 데뷔 초 소년 분장으로 인기를 끌었고, 통통한 외모를 이용한 개그를 많이 했지만 건강을 이유로 살을 빼며 과거의 개그를 과감하게 그만뒀다. 최근 몇 년간은 외모를 이용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웃기는 코미디를 해왔다. 부캐인 '다비이모'로 그의 디테일한 묘사와 친근한 사투리를 살린 캐릭터를 이용해 가수 데뷔도 했다. 사진 비보웨이브
올해 서른아홉인 김신영은 1988년 61세에 ‘전국 노래자랑’ 진행을 시작한 송해보다 20년 이상 젊은 나이에 MC를 맡게 됐다. 34년간 MC를 맡아 ‘단일 TV 프로그램 최장수 진행’ 기록으로 기네스에 등재된 송해만큼 진행해도 73세다. ‘95세 남성 코미디언’이 잘하던 일을 ‘39세 여성 예능인’으로 대체한 KBS의 결정은 파격적이면서도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예능인들이 각종 방송 프로의 주축인 경우가 많았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며 "시청 연령대가 기본적으로 높은 편인 데다 플랫폼 자체가 기성세대에 맞춰져 있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KBS도 드디어 사회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으로 앞으로 프로그램의 연령대를 낮추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신영은 ‘전국 노래자랑’ MC 발탁 소식 직후 발표된 9월 예능방송인 브랜드평판 빅데이터(한국기업평판연구소) 순위에서 유재석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신영의 개인 경쟁력도 파격 발탁의 원인으로 꼽힌다. 김신영은 스무 살에 데뷔해, 또래에 비해 경력이 폭넓고 탄탄하다. 본업인 코미디는 물론 예능·가수 활동도 했고, 2012년부터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을 10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2020년 MBC 라디오 ‘브론즈 마우스’상을 받기도 했다. 늘 친절한 성격인 데다, 라디오를 진행하며 다양한 연령층의 사연, 새로운 게스트들을 접하며 단련한 붙임성이 최고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프로그램 살리기 위한 선택, 그러면서도 좌중 휘어잡는"
김신영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며 배우로 대중에 눈도장을 강하게 찍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김신영에 대해 "사람들의 특징을 포착해서 자기 것으로 모사하는 걸 보면, 안 시켜봐도 연기를 당연히 잘 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촬영할 때 보니 정말 타고났더라.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듣고 뉘앙스를 잘 살린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사진 CJ ENM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조연으로 출연해 다시 한번 자기중심이 있고, 스스로 확장하는 연예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웃찾사'에서 '행님아'를 외치는 남장 연기로 인기를 얻었지만,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이전 시대의 '외모 중심 개그'를 벗어던지는 등 늘 자신만의 선택을 선보여왔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전국 노래자랑'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만큼 MC가 권위가 있어야 한다. 김신영은 데뷔 때부터 소년·아줌마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낸 데다 현장에 강해 세대를 뛰어넘어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MC의 이미지가 강한 프로그램은 대개 MC가 바뀌면 프로그램이 죽는데 ‘전국 노래자랑’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면서도 존재감 있는 MC를 찾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날 김신영은 첫 녹화 진행에 집중하기 위해 별도의 언론 인터뷰나 간담회를 하지 않았다. 그는 17일 경기도 하남시 편 녹화 전 간담회를 통해 소감 등을 밝힐 예정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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