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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매경시평] 벌거벗은 임금님과 공유지식

만인이 기본 가치 공유할 때
그것은 `공유지식`이 되어
쓸데없는 의혹·갈등을 예방

온갖 가짜뉴스·확증편향에
그나마 남은 공유지식도 소진

  • 입력 : 2022.07.18 00:04:02
     
동화 가운데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벌거벗은 임금님'은 그런 동화 가운데 하나다. 이 동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핵심적인 사항 세 가지를 환기하자면 강력한 권력을 가진 왕이 새 옷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허영에 빠져 있다는 점, 사기꾼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옷은 매우 섬세하기에 어리석은 사람이나 현재의 지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덫을 놓은 점, 그리고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는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사기꾼들이 놓은 덫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옷이 제작되는 과정을 점검하러 갔던 신하들은 모두 이 덫에 걸려 왕에게 훌륭한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고한다. 자신들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꼼짝없이 어리석거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그리 보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왕 또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기꾼들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옷이 정말 훌륭하다고 칭찬해야만 했다.

그런데 왕이 벌거벗은 채 거리를 행차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군중 가운데 있던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에게 왕이 벌거벗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왕이 벌거벗었다고 크게 외칠 수 있었고, 그 순간 군중과 신하들 모두 왕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차렸을 뿐만 아니라, 모두 그리 생각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가 외치는 순간 왕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은 공유지식이 되었던 것이다.

공유지식은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두 사람의 경우 공유지식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A라는 사실을 상정할 때 내가 A를 안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 당신이 A를 안다는 것을 내가 알고,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는 사실을 서로 아는 상태'라면 A는 공유지식이다. 여러 사람이 관련된 경우도 마찬가지로서 누구도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취할 수 없다. 예컨대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한다고 발표한 것은 공적 정보다. 그런데 갑은 이 정보를 알고 있으나 을은 이 정보를 몰랐기 때문에 갑이 을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기준금리 인상은 공적 정보일 뿐 공유지식은 아닌 셈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에서와 같이 공유지식의 상태에 이르면 쓸데없는 의혹과 갈등이 해소되므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 모든 것이 공유지식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불가결한 기본 가치는 공유지식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일반 대중은 난무하는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에 휘둘리고, 정체불명의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그나마 남은 공유지식 재고마저 소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로 2020년 총선과 올해 대선을 둘러싸고 일부 논객들과 유튜버들이 제기하고 있는 부정선거 문제를 들 수 있다. 부정선거 여부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임을 고려한다면, 일부 불순 세력의 음모론으로 매도하기에 앞서 그동안 치러진 선거가 공명선거였다는 것이 공유지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 소모적인 논쟁 대신 인공지능을 이용해 그간 축적된 선거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특정한 패턴을 확인하는 데 인공지능이 전문가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최근 치러진 모든 선거가 공정했다는 것이 공유지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순진한 아이 역할을 할 것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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