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늙어서 망하나, 비겁해서 망하지"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
입력 : 2022.07.10 09:05:04 수정 : 2022.07.10 09:40:28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자 입 있는 사람들은 다 한마디씩 하고 있다. 그중에선 동의하기 어려울뿐더러 위험해 보이는 생각들도 있다.
예컨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당원권을 정지시킨 당 윤리위원회 결정이 국민의힘을 난파시키리라는 주장 같은 것은 그게 비록 보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충정이라 봐주고 싶어도 ‘도대체 보수는 왜 하나’ 하는 의구심을 먼저 일으킨다.
‘저쪽은 전과 4범을 당 대표 시키겠다는 마당에 이쪽은 확증도 없이 당 대표를 쫒아낸다’는 주장이 그렇다. 그런데 물어보자. 둘 중 어디가 정상인가. 전과4범을 당 대표 시키는 것은 보수와 진보 이전에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로 판단할 문제다. 저들은 ‘전과 4범 당대표’를 따라가야 할 표준으로 여기고 ‘똥’을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는 ‘된장’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리분별이 안되면 그 또한 정상이 아니다.
이준석 대표가 수년 전 성접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나는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의 측근이 7억원짜리 투자 각서를 써준 것이 성접대 과거를 덮기 위한 것인지, 성접대는 받지 않았지만 잡음이 생기는 것이 싫어 무마조로 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기가 하지도 않은 사실을 덮기 위해 7억원을 약조하는 사람은 희귀하다. 재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썩 맑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협박당하고, 굽신대고, 그걸 다 녹취 당하고, 투자 약속으로 사태를 모면하려 했던 것이 드러난 사실이다. 이건 성접대를 입증하는 확증은 될 수 없지만 공당 대표의 부적절한 자질과 품위 훼손을 입증하는 확증으로는 충분하다. 따라서 당 윤리위원회는 할 일을 한 것이다. 그걸 가지고 아직도 ‘똥이냐, 된장이냐’ 하고 있으면 그건 상식도 아니고 정상도 아니고 하물며 보수는 더욱 아니다. 억지가 어떻게 보수인가.
혹자는 이 대표가 쫓겨나면 이대남도 떠나고 당 지지율은 폭락하고 지도부는 다시 꼰대들이 차지하고 당은 윤핵관들의 난투장이 될 것이란 걱정을 한다. 이들은 마치 이준석 시대가 보수혁명의 시대나 되었던 듯 과장하고 있다. 이준석 퇴진과 더불어 이 모든 것이 ‘도로’가 될 것처럼 겁을 준다.
그가 대표로서 두 번의 선거를 이겼다고 하는데 형식론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다만 이준석이 있어서 이겼다는 주장에는 강한 반론이 따를 것이다. 그 때문에 선거를 질 뻔 했던 때는 몇 번 있었다. 다른 걸 떠나 그는 대선 중에 두 번 자리 이탈을 했고 그것은 결정적인 이적행위였다. 그는 그런 식으로 보수에 자해공갈을 했다. 그가 이후 ‘인격적으로’ 도야 되었다는 증거가 있나. 인격은 그렇게 쉽게 도야 되는가.
이준석이 보수 혁신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당대표에 당선됐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때 그는 싹수가 있어 보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노랗게 됐다. 그런 그를 그대로 대표 자리에 앉혀 놓으면 보수의 콩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리란 기대는 헛되다. 죽은 아들 00 만지기다.
이준석 사태는 단기적으로 당과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혹자가 우려하는 대로 보수 분열과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모든 가능성이 다 있다. 몸에 암이 발견됐을 때 치료를 하는 것과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중에서 무엇이 결과적으로 최선일지 알기는 어렵다. 치료를 하다 사람이 죽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치료라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치료 가능성이 있는데도 기적을 바라고 암을 방치하는 의사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수가 늙어서 망한 경우를 알지 못한다. 타락하고 비겁해서 망한 보수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타락을 못본척 해서도 안되고 후유증을 겁내 치료를 회피할 만큼 비겁해서도 안 된다. 보수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보수 걱정을 하는 시대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文정부 때 늘린 공무원 조직 감축 나선다… 각 부처 정원 1% 감축 (0) | 2022.07.12 |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토트넘 선수단 마중나간 손흥민 (0) | 2022.07.10 |
갤럭시에서 카톡 못쓸수도?…카카오 vs 구글, 무슨 일[뉴스 쉽게보기] (0) | 2022.07.09 |
점점 치밀하고 은밀하게…‘070’→‘010’으로 보이스피싱 발신번호 바꿔 준 조직들 검거 (0) | 2022.07.07 |
'개 식용' 종식 논의, 결국 무기한 연장…"종식 시기에 대한 이견 커" (0) | 2022.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