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2.07.02 05:00
아래는 한 국가의 지도입니다. 어느 나라일까요?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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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에 면한 북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 입니다. 라트비아·에스토니아와 함께 '발트3국'으로 불립니다. 세 나라 중 인구(280만명)가 가장 많아 세계 141위이고 국토 면적도 가장 넓죠(122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절대 면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30%에 불과한 작은 나라입니다. 국내총생산(GDP)도 622억 달러(약 80조 원)로,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세계 75위였죠. 참고로 한국의 GDP는 1조8238억 달러(약 2368조 원)로, 리투아니아의 30배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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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소국, 러시아와 맞짱
이렇게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가 최근 러시아와 연일 충돌하며 국제 뉴스의 중심에 섰습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17일 러시아 본토와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를 봉쇄해 러시아를 격분케 했는데요. 러시아 본토에서 출발해 벨라루스~리투아니아를 거쳐, 칼리닌그라드로 이동하는 철로를, 중간 거점인 리투아니아가 막아버린 겁니다. "유럽연합(EU)이 제재한 품목이 선적된 열차를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게 리투아니아의 설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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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러시아는 "국제법 위반" "전례없는 적대 행위"라고 강력히 항의하며 "화물 운송을 복원하지 않으면 행동을 취할 것"이라며 엄포를 놨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무차별 침공한 세계 2위 군사 대국, 국토 면적 260배에 인구는 50배나 되는 러시아의 위협에, 리투아니아는 눈하나 깜짝 않습니다. 오히려 운송 제한 조치를 차량 화물로 확대한다고 나섰죠. "EU 회원국으로서 제재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뿐"이라고 차분한 반응만 보이면서요.
중국 눈치도 안봐…경제 보복에도 대만과 교류
리투아니아에서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로 향하는 화물 열차. [AP=연합뉴스]
강대국에 맞서는 리투아니아의 심상치않은 '기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엔 중국과 맞붙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리투아니아는 수도 빌뉴스에 대만의 외교공관인 '대만대표부'를 신설합니다. 유럽 전역을 통틀어 18년 만에 등장한 대만대표부였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자치권을 부정하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에 대한 결과는 리투아니아의 책임"이라며 보복을 예고합니다. 당시 중국 관영매체와 평론가들은 리투아니아를 '쥐', '쥐똥'에 비유하는 모욕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사실상 단절하고 리투아니아산 공산품과 농산물은 물론, 리투아니아 부품을 사용한 제품 수입까지 금지하는 경제 보복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아랑곳 않고, 오는 9월 대만에 '리투아니아대표부' 설립을 차근차근 준비 중입니다.
리투아니아는 유럽 민주 투사들의 은신처이기도 합니다. 지난 2020년 친(親)러시아 독재 국가인 벨라루스에서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 후보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도 생명의 위협을 받자, 리투아니아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태림 국립외교원 교수는 "리투아니아는 권위주의 체제와의 대척점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나라"라고 설명합니다.
유럽 최대국의 기억, 러시아와 악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리투아니아의 두둑한 '배짱'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과거 14~15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 당시엔 오늘날 루마니아·몰도바·우크라이나 영토까지 장악해 발트해부터 흑해까지 드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유럽 최대국이었습니다. 이때 러시아·폴란드·독일·스웨덴 등 강대국과 끊임없이 충돌·대립하며 민족적 정체성과 독립의식이 분명한 국가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다 17세기 '대홍수'로 불리는 국가적 대혼란을 겪은 뒤 쇠퇴기에 접어들고, 이후 18~19세기엔 러시아제국의 압제를 받습니다.
이 시기에 대해 러시아 측은 표트르 대제(1672~1725)의 북방 영토 확장으로 설명합니다. 당시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어 출판 금지 등 엄격한 러시아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리투아니아 측은 이에 ‘강력 반발했다’고 자국 역사를 설명합니다. 현재도 전체 인구의 79%가 가톨릭 신자인 리투아니아에선 러시아 정교를 강제하는 러시아제국의 동화 정책이 역효과를 낳았다고들 얘기합니다. 이후 2차대전 나치 점령기, 소련 합병 등을 거치며 정치적 탄압도 숱하게 겪었습니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소련 붕괴 후 발트3국 중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적극적으로 친서방 노선을 타며 러시아와 긴장을 높여왔습니다. 2004년엔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도 가입했습니다.
EU 안에서 반러 정서가 강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나라답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앞장 서서 '분노'를 표출해 왔습니다. 지난 5월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일을 민간인 대상 대량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러시아를 '테러국'으로 지정했습니다.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 전면 금수 등 강도 높은 대러시아 제재를 실시한 EU 최초 국가이기도 합니다.
발트3국으로 전선 넓히려는 러시아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또 다른 유럽 국가로 전선 넓힐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러시아의 다음 타깃으로 꼽히는 곳이 몰도바·조지아, 그리고 리투아니아가 포함된 발트3국입니다. 최근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의 갈등 격화에 미국과 EU가 긴장하는 이유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침공 이전부터 발트3국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서방이 나토 회원국인 발트3국을 발판 삼아 언제고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발트3국에 거주 중인 러시아인들도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간 러시아는 러시아인이 어디에 살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왔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도 '러시아어 사용 인구 탄압'을 명분으로 내세웠고요.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인 비중이 4.8%로 발트3국 중에서도 가장 적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지난달 27일 외무부 등 공공기관 서버가 친러 성향 해커들의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하기 직전에도 사이버전을 감행한 바 있죠.
하나의 소국 아닌 거대한 동맹의 일원
하지만 리투아니아의 거침 없는 행보에 러시아·중국이 대놓고 보복하긴 힘들 거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리투아니아가 EU와 나토 가입국이기 때문이죠. 리투아니아는 하나의 '소국'이 아닌, 거대한 동맹의 일원으로 중·러 대국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스웨덴·핀란드까지...나토의 동진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특히 나토는 '집단 방위 동맹'으로,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대응한다는 '나토 조약 제5조' 아래 똘똘 뭉친 강력한 방위 공동체죠. 러시아가 나토 비회원국이었던 우크라이나처럼, 리투아니아를 섣불리 공격하긴 어려울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티모시 애쉬 선임 전략가는 CNBC에 "푸틴은 리투아니아에 대한 지상 공격이 나토와의 전쟁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의 갈등 국면에, 미국은 적극적으로 리투아니아를 감싸 안았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에 대한 리투아니아의 조처를 환영한다"고 했죠. 또 러시아가 리투아니아에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에 "우리는 나토와 리투아니아를 지지한다"며 "나토조약 제5조는 철통같이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나라이지만 큰 동맹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주권 행사. 리투아니아의 당당한 행보가 격변기 ‘신냉전’ 시대에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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