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2.06.05 15:32
업데이트 2022.06.05 16:13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5일 오전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무더기 발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빠르게 공고해지는 한ㆍ미ㆍ일 대북 공조를 시험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코로나19라는 내부의 어려움과 외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핵 무력 고도화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기조의 확인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북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이날 회의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렸다. 대통령실.
한ㆍ미ㆍ일 공조 '틈새' 겨냥
이날 북한의 도발은 한·미·일 고위급 당국자들이 잇따라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3국의 북핵 수석대표(3일), 차관(8일), 국방장관(10~12일 예상) 간 대면 회담이 이미 이뤄졌거나 예정돼 있다. 한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뒤 3국 간 안보 협력은 급격하게 강화하는 모양새인데, 북한의 도발은 이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특히 북한은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3박 4일의 방한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을 떠나는 날이자,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6~8일)하기 전날을 노렸다.
성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예정대로 출국하기에 앞서 오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외교부 청사로 와 김건 한반도본부장과 급히 만났다. 이미 귀국한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ㆍ대양주국장도 유선으로 연결했다. 3국 수석대표는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고 깊은 유감을 표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처럼 북한은 북핵 관련 외교적 이벤트가 한창 진행 중일 때보다는 직후를 노리곤 했다. 기본적으로는 자체 시간표에 따른 것이지만, 한ㆍ미ㆍ일의 대북 경계 태세가 높아져 있는 시점은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달 25일에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ㆍ일본 순방(20일~24일)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에 도착하기 약 2시간 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SRBM을 섞어 쐈다. 이보다 앞서서도 북한은 한ㆍ미 전반기 연합훈련(4월 18일~28일) 내내 침묵하다 엿새 뒤인 5월 4일 ICBM을 쐈다.
이번 도발도 몰아치던 한ㆍ미ㆍ일 협의가 한 템포 쉬는 시점인 동시에 핵 추진 항공모함을 동원한 한ㆍ미 연합훈련(2일~4일)이 끝난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슷한 양상이다.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논의하는 모습. 외교부.
중ㆍ러 믿고 핵실험까지 가는 北
이번 한ㆍ미 핵 항모 동원 훈련은 임박한 북한 핵실험에 대한 사전 경고용이었다.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을 경우 전략 자산 전개 등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다. 앞서 지난 3일 성 김 대표도 "(한ㆍ미ㆍ일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장ㆍ단기적으로 '적절한 군사 태세(military posture)'를 갖출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훈련 종료 이튿날 곧바로 도발로 응수한 건 압박에 굴하지 않고 결국 핵실험까지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지난달 25일 장ㆍ단거리 미사일 '섞어 쏘기'를 통해 한ㆍ미ㆍ일을 동시에 위협한 것과 달리, 이번엔 평양 등 네 곳의 장소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여덟 발을 35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 발사해 한국에 집중적 위협을 가했다.
대북 선제 타격을 시사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경고이자, 다양한 방식의 도발로 연합 방위 태세를 떠보려는 의도다. 한·미·일 3국이 연일 대북 공조 강화를 외치지만, 특정 국가가 집중적 위협을 받을 경우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가늠해보려는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전술적 다양성을 과시해 '한ㆍ미ㆍ일이 아무리 확장 억제를 강화해도 북한을 막을 순 없다'는 주장을 거듭하는 것"이라며 "결국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ICBM 발사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신규 대북 제재 결의를 부결시키며 뒷배를 봐주는 것도 북한으로선 호재다. 과거 북한이 ICBM을 쏘거나 핵실험을 할 경우에는 여지 없이 안보리가 추가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이제는 중ㆍ러가 안보리에서 표결에 부쳐진 대북 결의안까지 사상 처음으로 '비토(Veto)'를 놓으며 이런 공식마저 깨졌다. 북한으로선 고강도 도발을 감행해도 안보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나쁜 교훈'을 얻은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로나에도 '마이웨이'
이는 내부적 시련에도 아랑곳 않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난달 12일 북한 내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당일 오후에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이날이 세번째다. '역병이 돌아도 미사일은 쏜다'는 '마이웨이' 행보다.
한ㆍ미 및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제안을 거부하고 중국에 의존해 방역 위기를 돌파하겠단 의지도 굳건하다. 실제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방역 물자를 지원받는 정황은 꾸준히 포착되고 있다. 국제 백신 공급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는 북한이 최근 중국산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고 지난 2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와 관련, 모내기 철이라 농민 등 일반 인민의 방역이 비상인 와중에도 '군인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이 이뤄진다'는 보도(자유아시아방송, 지난달 25일)가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19에도 끄떡없는 국방 우선시 기조에 따라 당분간 북한이 국내외적 상황에 개의치 않고 도발 수위를 높일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방역'과 '핵'이라는 두 가지 전쟁에 대한 복합적인 위기 관리 시험대에 올랐다"며 "다만 김정은 정권이 코로나19와 먹고 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핵 무력 만으로는 민심을 달래기 쉽지 않아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5일 방역 위기 관련 "일꾼들의 분발"을 강조하며 공개한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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