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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국방

용산 집무실 앞 집회 막은 경찰 또 졌다…'의문의 3연패' 왜 [그법알]

 

중앙일보

입력 2022.05.24 05:00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 새로 집무실을 마련했죠. 주말이면 청와대 정문에서 100m 떨어진 청와대 분수대에서 열리던 집회·시위 '단골 장소'도 용산 시대를 맞아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주말에도 대통령실 도로 맞은편 전쟁기념관에서 각종 집회가 열렸는데요.

[그법알 사건번호 35] '청와대 100m내 집회 금지'…용산 시대엔 왜 적용 안 될까 

청와대 시대에도 그랬지만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앞 집회·시위는 사전에 금지하려는 경찰과 헌법 21조의 집회의 자유권을 주장하는 주최 측 사이에 언제나 법적 다툼의 대상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앞 집회 역시 경찰과 주최 측 사이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해석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였습니다. 일단 1차전 스코어는 3대0. 법원은 현재까지 집회를 여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각종 시민단체가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을 멈춰달라며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사건에서입니다.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도로에서 경찰버스들이 집회 및 시위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관련 법령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는 다음과 같은 장소의 경계 지점에서부터 100m 이내에서 열리는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집회·시위가 금지되는 장소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장소는 아래 3항입니다.

3.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여기서 질문!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은 법에서 정한 '대통령 관저'일까요, 아닐까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대 이승만 대통령 관저의 이름이던 경무대 시절을 포함해 청와대 시대엔 대통령의 주거와 집무실이 같은 구역에 있었다 보니, 법에서 대통령 집무실만을 별도로 지정해두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해석이 엇갈리는 건데요.

일단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입장입니다. 집무실 100m 이내에 신청한 각종 집회·시위를 사전에 금지한 이유이기도 하죠.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도로에서 경찰버스들이 집회 및 시위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법원의 판단은!

지난 11일 성 소수자 차별 반대무지개 행동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한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관저의 사전적 의미에 주목했습니다. 관저는 '장관급 이상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살도록 마련한 집'이라는 겁니다. 집시법에서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주거 공간만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지난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강동혁 부장판사) 역시 같은 이유로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기존 청와대 경호 구역도 살펴봤습니다.

청와대 내에서도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는 별도의 담장을 통해 구분돼 있었고, 경호 구역도 다르게 관리돼왔다는 건데요. 결국 대통령 관저에 대한 집회 금지 효과를 대통령 집무실이 부수적으로 누리고 있었을 뿐, 원칙적으로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기념하며 행진하고 있다. 뉴스1

"어쨌든 이제부터 대통령 집무실과 주거지가 분리됐으니, 기존 법을 확대 해석해 집무실 앞 집회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하는 주장도 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법률을 확대 해석해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참여연대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들의 거주지는 법에서 집회 금지 장소로 정하고 있지만, 이들이 일하는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집회·시위 개최를 원칙적으로는 허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경찰 주장대로 대통령은 집무실 인근 집회도 금지한다면,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다만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이 일하는 공간에서 열리는 집회·시위에도 조건은 있죠. 이들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거나, 대규모로 확산할 우려가 없을 때 100m 이내 개최가 허용됩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시간과 장소 제한을 뒀습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는 지난 21일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국방부 정문과 전쟁기념관 앞 등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는데요. 법원은 낮 12시부터 저녁 5시까지 전쟁기념관 앞 인도와 하위 1개 차로에서만 집회를 허용했습니다.

법원이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에 대해 이렇게 엄격한 판단을 내리는 건, 우리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3년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집회 장소가 바로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이죠. 헌재는 지난 2018년에도 '국회의사당 앞 100m 이내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물론 헌재도 "집회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평화적' 또는 '비폭력적' 집회"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집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난 2003년 헌재는 조건부로라도 집회를 허용할 수는 없는지 충분히 살피고, 그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야 집회 금지나 해산을 고려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일단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최관호 경찰청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까지 나온 법원 결정이) 집시법 해석에 대한 사법부 판단으로 보기는 어려워서 본안 소송을 통해 해석을 받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집행정지 사건 외에도 집회 금지 처분 취소 본안 소송이 남아 있으니, 이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충분히 다퉈보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