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여행

“대통령 걷던 길을 내가”… 청와대 ‘시크릿 가든’도 개방

“대통령 걷던 길을 내가”… 청와대 ‘시크릿 가든’도 개방

靑, 국민 품으로
일반인도 관저와 주변 관람 가능
미남불·오운정 등 유적 볼수있어
54년만에 북악산 등산로 완전개방
춘추관·칠궁 뒷길 통해서도 산행

입력 2022.05.11 03:48
 
10일 오전 11시 38분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정문이 열리자, 맨 앞줄에 선 국민대표 74인을 비롯한 시민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첫날 방문자는 2만6000여 명으로, 11일부터는 2시간마다 6500명씩 매일 3만9000여 명이 청와대를 관람하게 된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마침내 비밀의 정원이 열렸다. 10일 청와대 경내가 국민들에게 개방되면서 26만㎡(7만8650평) 규모의 공원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도 청와대 경내 관람은 가능했지만, 인솔자의 안내하에 투어 형식으로 정해진 곳만 관람할 수 있어서 구석구석 둘러볼 수 없었다. 특히 대통령 생활 공간인 관저와 관저 뒤편 산책로는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 따라서 관저 뒤편에 모여 있는 문화 유적도 일반인이 보기 힘들었다.

◇'미남불’이라는 보물

서울 종로구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된 10일 오후 관저 뒤편 언덕에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미남불)이 전시돼 있다. 2022.05.10 /인수위사진기자단

“이런 미남(美男)을 뵙다니 높은 곳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습니다. 청와대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었네요.”

10일 낮 12시 22분. 청와대 관저 뒤편 언덕길 산책로 꼭대기. 관람객 정은수(55·서울 은평구)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석조 불상이 단정한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불상 곁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멀리는 남산 타워, 아래로는 경복궁이 한눈에 보였다.

74년 만에 개방한 청와대

이 불상은 실제로 ‘보물’이다. 2018년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됐다. 원래는 경주에 있다가 1913년 무렵 일제에 의해 서울 남산 총독 관저에 놓였다. 1930년대 총독 관저가 지금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왔다. 석굴암 본존불을 계승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으로 ‘미남불’로도 불린다. 그간 비불(祕佛)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청와대 개방으로 중생과 함께하게 됐다. “부처님 그동안 홀로 외로우셨겠네” “이제 시끄러워서 도가 안 닦아지겠다” 불상을 찾은 아주머니 관람객 둘이 나눈 대화다.

◇흐르는 물을 베고 풍류를

[서울=뉴시스] 인수위사진기자단 =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일인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경내 문화유산인 침류각을 둘러보고 있다. 2022.05.10. photo@newsis.com

‘미남불’에서 관저 쪽으로 내려오면 ‘오운정(五雲亭)’이 있다. 원래 고종 때 경복궁 후원에 있었던 정자 ‘오운각’ 이름을 딴 건물. 광복 이후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9년 청와대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현재 위치로 이전했으며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다.

청와대 자리는 예로부터 최고의 명당. 오운정 인근 암벽에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최고의 명당)’라고 새겨진 암벽이 있다. 300~400여 년 전에 새긴 글씨라 추정되며 중국 남송(南宋) 시대 서예가 오거(吳琚)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다.

관저에서 상춘재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침류각(枕流閣)은 1900년대 초의 전통 가옥이다. ‘침류’란 ‘흐르는 물을 베개 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즐기는 곳이었다.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종 때 현재의 관저 자리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9년 관저를 신축할 때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청와대 자리는 고종 때 경복궁 후원 권역이다.

 

◇王의 공간, 관저

[서울=뉴시스] 인수위사진기자단 =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일인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관저를 둘러보고 있다. 2022.05.10. photo@newsis.com

“이 자체가 하나의 공원이네!”

관람객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인수문(仁壽門)이라 적힌 현판이 달린 솟을대문 너머, 푸르른 잔디밭이 펼쳐지고 팔작지붕의 한옥 건물이 서 있었다. “꼭 옛날 왕이 살던 곳 같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대통령의 생활 공간이었던 관저. 노태우 전 대통령 때인 1989년 8월 착공해 1990년 10월 완공했다. 생활 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로 나누어 지었다. 관람객 김준범(24·서울 용산구)씨는 “대통령이 살았던 공간에 실제로 와 봤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건물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이날 개방에서 건물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건물에 있던 자료 정리 등이 끝난 이후에 내부를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경내 관람에 소요되는 시간은 2시간가량. 서측 영빈문으로 나와 담장을 끼고 걸어가면 조선시대 후궁 일곱 명의 위패를 모신 칠궁(七宮)을 관람할 수 있다. 모두 왕을 낳은 여인들이다.

◇북악산 등산로 전면 개방

북악산 등산로가 54년만에 전면 개방된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문이 열리고 등산객들이 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 장련성 기자

“북악의 새 아침 열어갈 새 길!” 함성이 터지고 문이 열렸다. 10일 오전 7시 청와대 춘추문 앞. 한 무리의 등산객이 일제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북악산 등산로도 완전히 개방됐다. 1968년 ‘김신조 사태’ 이후 통제가 시작된 지 54년 만이다. 새로 개방된 구간은 춘추관 뒷길~청와대 뒷편 백악정~칠궁으로 이어지는 2km가량.

하이라이트는 백악정 뒤 철책문 개방. 북악산을 지키던 군인이 굳게 잠긴 자물쇠를 열자 등산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진입했다. 이어 삼청동으로 통하는 대통문이 열리며 이날 모두 세 개의 문이 열렸다.

북악산 등산로가 54년만에 완전히 개방된 10일 오전 시민들이 잠겼던 백악정 뒤 철책문을 지나 북악산으로 향하고 있다. 2022. 5. 10 / 장련성 기자

새로 개방된 구간을 다 도는 데는 1시간가량 걸렸다. 가장 높은 지점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롯데타워, 가운데 남산타워, 오른쪽 63빌딩이 펼쳐지며 서울이 한눈에 보였다. 신윤진(60·서울 혜화동)씨는 “완벽한 대한민국을 돌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22일까지 열리는 청와대 관람 행사 기간엔 관람을 예약한 사람만 춘추문을 통해 입장할 수 있고 그 외 등산객은 춘추관 뒤편 금융연수원 인근 진입로를 이용해야 한다. 경복고등학교 건너편 칠궁 뒷길(대경빌라 D동) 진입로를 통해 춘추관 뒷길로 거꾸로 짚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북악산 등산로가 54년 만에 전면 개방된 10일 오전 시민들이 신규 개방된 등산로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 장련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