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 ‘영욕의 역사’… 743살 이 나무는 알고 있다
[아무튼, 주말]
청와대 옛 본관터에 우뚝
고려 충렬왕때 태어난 주목
청와대 옛 본관 터에는 파란만장한 권력의 흥망을 오롯이 지켜본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朱木)이다. 고려 충렬왕 때 태어나 생물학적 나이가 무려 743살로 추정된다. 청와대가 고려 남경(南京)이던 시절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욕의 역사를 지켜봤다. 대통령 경호처가 2019년 펴낸 ‘청와대의 나무와 풀꽃’에 의하면 “청와대에서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 나무”다.
◇금단의 땅 지킨 ‘영욕의 나무’
다음 달 10일 청와대가 전면 개방되면 고려 시대부터 굳건히 청와대 터를 지킨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대통령 경호처 의뢰를 받아 청와대 경내의 나무를 조사한 ‘나무 박사’ 박상진 경북대 임산공학과 명예교수는 “주목은 원래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며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고, 그늘에서 잘 견뎌 극음수(極陰樹)라고 한다”며 “조용히 기다릴 줄 아는 인고의 나무”라고 했다.
주목은 이름 그대로 나무껍질이 붉은 빛을 띠는 나무다. 지구상에는 3억년 전부터, 한반도에는 200만년 전부터 둥지를 틀었다. 혹독한 빙하기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아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으로 통한다. 목질의 붉은색이 잡귀를 쫓아내고 영원한 내세를 상징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일찍부터 권력자 무덤의 관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경주 금관총의 목곽 일부, 백제 무령왕릉의 왕비 베개도 주목으로 만들었다.
박상진 교수는 “산림청에서 지난 2007년 청와대 고목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생물학적 나이가 올해 기준 743년으로 측정됐고, 이는 고려 25대 충렬왕 9년(1283), 11년(1285)년 임금이 남경에 행차했다는 기록과도 거의 일치한다”며 “남경을 찾은 왕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조경의 일환으로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 기록과 나무의 생물학적 나이가 이렇게 일치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고 했다. 박 교수는 “700년 넘게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나무라는 의미에서 가치가 높다”며 “천연기념물로 곧바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기념식수도 대통령 닮았다?
청와대 경내에선 역대 대통령들이 심은 기념식수도 볼 수 있다. 대통령 식수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가이즈카향나무. 중국 남부에도 자라지만 일본 오사카 남부 가이즈카 지방에 자라는 향나무에서 유래한다. 영빈관 옆에 박 전 대통령이 1978년 심었다는 가이즈카향나무 한 그루가 지금도 살아있다. 박 교수는 “친일 논란에 시달려온 박 전 대통령이 나무의 특성을 알았다면 아마 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춘추관 쪽 잔디밭과 녹지원 사이의 작은 숲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80년 4월 기념식수한 독일가문비 나무가 자라고 있다. 박 교수는 “독일가문비 나무는 곧은 줄기가 아름답고 햇빛이 약해도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잘 버티지만, 잔가지가 흔히 아래로 처지는 경향이 있어 최 전 대통령이 5공 세력의 압박에 금방 굴복한 것과 비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청와대 밖 백악정 앞에는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서어나무는 꽃이 아름답지도 않고 목재로도 쓰임새가 거의 없는 평범한 나무라 대통령 기념식수로 거의 쓰이지 않는다. 박 교수는 “대통령 기념식수로는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던 노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한 대구 달성에서 이팝나무를 가져다 2013년 청와대 경내에 심었다. ‘이팝나무’ 이름에는 여러 설이 있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옛사람들은 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모습에서 수북이 올려 담은 흰쌀밥 한 그릇을 연상했다고 한다. 조선왕조 임금의 성이 이(李)씨이므로 벼슬을 해야 이씨가 주는 귀한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해서 쌀밥을 ‘이(李)밥’이라 했고,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모습이 이밥 같다고 ‘이밥나무’라 하다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이다. 꽃피는 시기가 대체로 양력 5월 5~6일경인 입하(立夏) 무렵이라 ‘입하나무’로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박 교수는 “나무에 무슨 귀족 나무가 있고 서민 나무가 있겠냐만, 굳이 따진다면 이팝나무는 배고픔의 고통을 아는 서민 나무의 대표라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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